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상어는 해양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크리스토퍼 본 존스

상어는 전 세계 바다 생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해 멸종위기종 레드리스트에서 세계 상어종의 3분의 1 이상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선언했다. 가장 심각한 위협은 혼획이다. 상업어업에서 표적어종(목표어종)이 아닌 생물이 어획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르면 2024년부터 중서태평양 해역에서는 혼획에 따른 상어 폐사를 막기 위해 조업 중 낚싯바늘에 걸린 상어를 물속에 둔 채로 어구를 제거한 뒤 방류하는 보호 조치가 시행된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는 지난달 27일 부터 이달 3일까지 베트남 다낭에서 제19차 연례회의를 열어 이 같는 내용의 상어 보존조치에 합의했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는 세계 최대 다랑어 어장인 중서부태평양 해역의 참치자원 장기 보존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호주를 비롯해 중서부 태평양과 연안 26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상어 방류 의무화...싹쓸이 어획 제동

회원국들은 이번 회의에서 우선 2024년부터 연승어선의 낚싯바늘에 걸린 상어를 어선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물 속에 둔 상태로 어구를 제거해 방류해야 한다는 규정과 합의했다.

연승어선(延繩漁船)은 낚싯바늘을 여러 개 매단 낚싯줄을 바다에 던져 생선을 잡는 어선으로 태평양어장에서 눈다랑어를 잡는데 투입되고 있다. 미끼를 단 긴 낚싯줄을 드리워 한꺼번에 조업을 하는 ‘연승어업’은 상어 혼획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업법이다.

연승어업에 사용되는 연승(밧줄)은 최대 170km에 이르러 목표어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종의 어종은 물론 바닷새까지 잡는다. 일명 ‘싹쓸이’ 어획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또 특히 연승 어구 중 ‘샤크라인’, ‘와이어트레이스’ 같은 금속류 어구는 단단해서 혼획된 상어가 스스로 탈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회원국들은 이번 회에서 이들 금속류 어구를 금지하는 개정안에도 합의했다.

◇상어 혼획 얼마나 심각하길래

세계자연기금(WW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330만 마리의 상어가 혼획으로 폐사하고 있다. 2018년, 동북대서양에서는 지난 20년 간 전체 귀상어의 89%, 환도상어와 백상아리의 80%가 혼획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에서 2006년 발표한 ‘다랑어 조업의 부수어획 국제동향 및 식별가이드’에 따르면 1993~1997년간 중부태평양해역 다랑어 연승어업에서 혼획된 상어류의 비율은 목표어종인 황다랑어와 눈다랑어의 어획량이 각각 6%, 4%를 차지할 때 약 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획량 가운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상어는 성어까지의 성육기간이 길고 산란과 산출량도 적어 혼획에 따른 자원감소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는 어종이다. 또한 해양생태계 최대 포식자로서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기 때문에 멸종이나 개체수 감소가 해양생태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개체수 감소 심각성 인식

지난 10월 유럽연합(EU)에서는 상어 지느러미 거래 금지 청원 시민투표 참여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11월 14일(현지시간) 파나마에서 제19차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당사국 총회에서 ‘상어 국제거래 금지, 제한’에 88개국이 찬성하면서 상어 보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위원회도 태평양에서 상어 개체수가 빠르게 감소하는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혼획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승어업에 칼을 이번에 빼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제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중서부태평양에서 다랑어 조업을 하려면 이번 합의된 조치를 따라야 한다. 위원회는 매년 회원국들이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평가하는데 만에 하나 조치를 따르지 않으면 불법어업으로 간주돼 조업 활동에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적 강제력이 없어 이번 개정이 실질적인 상어 보존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양어업 업계 “영향 크지 않아” 잠재적 부담은 커질 듯

국내 원양어업 업계는 이번 결정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원양어선 업계에서 이번 결정과 관련해 반발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사용이 금지된 샤크라인과 와이어트레이스 역시 국내 어선들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 어구라 국내 어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상어 보존에 대한 요구가 계속 상승하면서 다랑어를 잡는 또다른 방식인 ‘정치망(定置網)’을 활용한 어획에서도 혼획 방지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총회에서는 중서부태평양 수역 관리기구 의장단 자리에 해양수산부 관계자가 부의장으로 선임됐다. 상어 혼획 방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서 한국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