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장. /한국공학한림원 제공

백만기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리사는 한국 지식재산권 역사의 산증인이다. 백 변리사는 지난달 21일 국가 지식재산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최고 기구인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다. 백 위원장은 특허청 설립 초기에 심사관으로 시작해 45년 가까이 지재권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상공부 반도체산업과장과 특허청 심사국장을 거쳤다. 공직에 있을 땐 한국과 미국 사이 반도체 통상 마찰이 심각한 상황에서 반덤핑 관세 철회를 이끌어 '미스터 반도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백 위원장은 한국의 지재권 정책의 컨트롤 타워에서 또 다른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백 위원장은 "대다수 국민이 지재권이라고 하면 발명 전문가나 법률가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어려워한다"며 "한국의 장래는 개인의 지식 총량이 늘어나고, 지식이 공유되고 활용되는 고도의 지식 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구가 줄고 있는 시대에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재산권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백 위원장은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K팝과 K무비 흥행에 힘입어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누구나 백 위원장은 누구나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에 지식재산권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향토 지식재산권' 개념을 내세우며 지방의 특산물도 지식재산권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위원장은 6기 지재위의 슬로건을 '창의성 가득한 멋진 지식 강국'으로 잡았다. 어려워 보이기만 한 지식재산권의 장벽을 허물고 누구나 지식재산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정부 관료와 민간 변리사로 45년간 쌓아온 지식재산업계에서의 경험을 지재위원장 임기 중에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지식재산 강국 대한민국'의 새 페이지를 준비하고 있는 백 위원장을 지난 6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을 맡은 소감은 어떤가.

"지식재산 업계에 발을 들인 게 운명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엔 KAIST 졸업생들이 대부분 민간 기업이나 연구소로 많이 갔는데, 당시 정부에서 특허 관련 기술 관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특허청을 들어가게 됐다. 덕분에 한국의 특허 현대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을 45년간의 경험을 총정리하는 기분으로 맡게 된 건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가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6기째를 맞이하고 있는 위원회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6기 지식재산위원회는 국민들에게 와닿는 의제를 부각하는 것을 목표로 할 예정이다. 한국은 특허법원을 가장 먼저 설립할 정도로 지식재산 생태계를 빠르게 조성해왔다. 하지만 지식재산을 국가적 의제로 확대하는 데에는 미흡했다. 지식재산이라고 하면 과학적 측면이 강하다 보니 전문가 영역의 일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지식재산이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의미로 '창의성 가득한 멋진 지식 강국'이라는 슬로건을 생각하게 됐다."

-지식재산 분야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

"지식재산권은 크게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으로 나뉜다. 이중 최근 저작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방탄소년단이나 영화 기생충, 방송 프로그램 포맷까지 모두 수출되는 시대다. 콘텐츠를 어떻게 산업화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콘텐츠는 미래에 경제주체로 자리매김할 MZ세대가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지식재산으로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 강국의 구조를 만들어야 미래 세대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인 '향토 지식재산'도 중요하다. 전남 보성의 특산물인 녹차로 예를 들어 녹차 생산 시스템과 고유 지명이 갖는 상징성이 모두 지식재산이다. 지역민이 적절하게 지식자산화하고, 콘텐츠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거다. 이런 접근 방법이 특허나 지식재산을 과학이나 공업에 국한시키지 않고,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은 2007년부터 '지식재산 5대 강국'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기업과 대학을 포함해 한국이 출원한 국제특허(PCT)는 2만678건으로,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내 지식재산의 저평가, 특허 관련 국내 소송 기피와 같이 지식재산에 대한 중요도 인식은 뒤떨어진다는 고질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백 위원장은 특허소송 체계의 경쟁력 저하를 문제점을 꼽았다. 특허법원이 1998년 설립되면서 흩어져있던 특허소송을 흡수하는 '관할 집중'이 이뤄졌지만, 그 뒤로 특허소송 제도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이다. 특허 침해 소송에서 이겨도 배상을 제대로 못 받고, 지식재산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국내 기업조차 해외에서 제소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기술을 두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벌인 소송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서 국내 IP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낮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는 특허소송과 연관돼 있다. 삼성과 애플이 2011년 전 세계적인 특허소송을 벌이면서 특허 경영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국민에게 퍼졌다. 특허소송은 특허를 받은 뒤 소송으로 권리를 인정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지식재산 생태계에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허소송 제도가 아직 산업계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국내 기업들도 미국이나 독일에 가서 특허소송을 진행하다 보니 국내에서 지식재산권 이슈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지식재산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우선 특허소송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특허소송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특허청 심사관을 시작했을 땐 국내엔 보호할 특허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국내 산업이 발전하면서 특허를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더라. 근데 우리나라는 행정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기업들 사이에 개입해 소송을 중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판례가 축적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IP 생태계는 특허 관련 판례가 쌓여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신뢰받고 공정한 특허소송 제도가 마련돼야 우리나라도 새로운 산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바이오·우주산업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 지식재산 분야는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나.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특허를 출원하면 1년 6개월 동안은 기술이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1년 6개월 사이에 새로 개발된 기술이 많이 나온다. 특허 정보를 국가 첨단 기술 개발에 활용을 못 하는 것인데, 미국이나 일본은 이 문제를 보완할 시스템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도 국회에 '산업재산 정보의 관리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발의돼 있다. 이 법률이 통과되면 특허가 첨단기술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