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게 세상사라는데,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보고 연구하는 기분은 어떨까? 또 미래를 그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미래학자들의 삶은 어떨까?

한 해가 저물어갈 때쯤이면 늘 다가올 10년을 예측하는 신간이 출간된다. 세계미래보고서. 2005년 첫 출간이 됐으니 올해로 13년째다. 얼마 전 출간된 ‘세계미래보고서 2023′은 13년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진기록도 이어갔다.

어떤 전망이 담겼기에 대중은 이 책에 관심을 두는 걸까. 세계미래보고서의 저자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미래학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를 통해 전해지는 미래상은 때론 시공을 초월해 허무맹랑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무서울 만큼 현실 파괴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10년 후를 보고 있는 박영숙 대표의 공상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가 10년 후 달라질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미래를 보는 방법

-미래는 어떻게 내다보나?

“주한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미래학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그게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당시 영국 정부가 각국 주재 대사관에 근무하는 100여명의 공보관을 모아 두 달 코스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시켰는데, 그때 미래학 콘퍼런스를 선택했다. 미래와 내가 연결될지 모르고 미래와 만난 첫 순간이다.

10년이 지나고 보니, 그때 막연하게 그렸던 미래가 현실이 돼 있었다. 매력적이지 않나. 미래 예측은 다가올 10년을 보고 하는 거다. 10년 후 일어날 일을 지금 그려보는 거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미래 예측은 예산과 정책에 달렸다. 이 두 조건에 따라 미래 준비가 결정되는 거다.

미래 예측은 한 나라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협업해야 정확해진다. 우리나라는 한국의 미래 상황만 보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 예산이 뒷받침되고 여러 나라와 협업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인재들이 나와줘야 한다.”

1500억달러 시장이 열린다

-로봇의 진화를 점쳤다. 로봇의 미래는 어떤가?

“로봇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 기관 마켓앤드마켓이 발표한 글로벌 로봇시장 예측에 따르면 로봇 시장은 연평균 9.60%씩 성장, 2023년이면 717억2000만달러의 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용 로봇과 의료 및 휴머노이드 등이 더해지면 내년에 1000억달러(약 130조원)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다른 조사기관인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의 규모가 연평균 11.7%씩 커지면서 2030년이면 1168억달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휴머노이드 의료 로봇 등을 더하면 1500억달러 시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2050년이면 인간보다 로봇이 더 많은 세상이 돼 있을 거다.”

‘반려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

-인간에게 로봇은 어떤 존재인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기르듯, 미래는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사는 ‘반려로봇’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본다. 지금 나온 로봇으로는 청소 로봇이나 간호사 로봇 등이 있는데, 2030년이면 집마다 평균 5개 정도의 로봇을 두고 사는 세상이 될 거다. 이미 반려로봇 시대는 시작됐다.”

기존 로봇 기술에 인공지능을 결합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제조∙판매하는 핸슨로보틱스는 인간 행동을 모방하도록 설계한 로봇 ‘소피아’를 비롯해 12개 모델 로봇을 내놓았다. 소피아는 AI 로봇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을 가진 로봇으로도 유명하다. 사우디는 2017년 10월 미래 신도시 ‘네옴’을 홍보하기 위해 소피아 로봇에게 시민권을 줬다.

이 회사는 소피아의 동생 격인 간호사 로봇 ‘그레이스’도 선보였다. 그레이스는 환자의 체온과 맥박을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뿐 아니라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센서 등을 탑재하고 있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와 간호로봇 그레이스. /유엔미래포럼 제공

클라우드로 연결되는 뇌…교실 없는 교육의 시대

-미래 교육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 같은 형태의 교육은 사라질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기기를 통해서든 인공지능 플랫폼을 통해 교육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이 접목된 학습이 이뤄질 거다.

좀 더 먼 미래에는 교육∙지식과 관련된 정보를 인간의 뇌와 연결할 수 있는 칩을 통해 이뤄질 거란 미래 예측도 나온다. 학습과 관련된 지식이 뇌와 연결돼 있으니 외우는 학습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벌 중심의 기존 고등교육은 붕괴하는 셈이다.

이런 지식은 AI 기술을 통해 ‘입력’되므로 미래에는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 습득이란 학습 형태가 사라질 것으로 보는 거다. 교사에게선 인간의 감성이나 협동심, 동기, 열정, 사람 사이의 교감 능력 등을 배우게 된다.”

구글의 딥러닝 엔지니어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30년대 초면 고대역폭 연결을 통해 인간의 신피질을 클라우드와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국회의원∙판사가 사라진다

-AI 기술 발전이 달갑지 않은 분야도 있을 거다.

“정치가 사양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 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인공지능이 정치인 역할을 대체하는 움직임은 이미 활발하다. 2016년 미국에선 인공지능 정치인 ‘로바마(ROBAMA, 로봇+버락 오바마 대통령) 프로젝트가 시작돼 부정부패와 편파적 정책 결정을 극복하고 공정한 정책을 입안하려 하고 있다.

2017년 뉴질랜드에서는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정치인 ‘샘(Sam)’이 등장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편견 없이 국민 의견을 대변하는 정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일본의 다마시 시장 선거에 인공지능이 시장 후보로 등장하기도 했다. 같은 해 러시아에서도 인공지능 앨리스가 대선에 입후보하기도 했고, 에스토니아와 인도에서는 인공지능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AI가 의정을 맡으면 국회가 열릴 때마다 보는 정파 싸움도 사라지지 않겠나. 의원들 1년 걸릴 일도 하루면 끝낼 수 있다. 삼권 분립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AI 판사의 등장이 법조계 판도도 바꿀 수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와 애리조나, 켄터키, 알래스카주에선 이미 AI가 인간 판사에게 초벌 판결을 제안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선 이미 2019년부터 일부 사건에 대한 판결을 AI 판사에게 맡기고 있다. 싱가포르나 호주도 재판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AI 판사는 재판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이고 재판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중국에서도 ‘모바일 법원’이 등장했는데, 재판 시간이 평균 28분 정도다 항저우 인터넷 법원도 재판 신청에서 판결까지 38일이면 끝난다. 사법개혁도 자연스레 이뤄지는 거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가 10년 후 정치인과 판사를 대체할 인공지능 기술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태훤 선임기자

인간 영역에 들어온 AI

-AI가 차지할 인간의 영역은 어디까진가?

“앞으로 AI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달성하게 될 거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면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달성할 것이라고 이미 예측했다. 일론 머스크도 AI가 어떤 인간보다 훨씬 똑똑하고 2025년이면 인간을 추월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10년 동안 AI 알고리즘과 머신러닝 기술은 오픈 소스가 돼 클라우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다. 이렇게 되면 의료와 교육,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금융, 소매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의사나 교사, 연예인, 디자이너, 금융인 등 관련 분야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게 될 거다.

창작의 영역에도 AI 기술이 들어와 있다. 이미 그림과 만화도 AI가 그리는 시대가 됐다. 에미상을 수상한 크리에이티브 그룹 캠프파이어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인공지능으로 만든 만화 ‘베스티어리 연대기(Bestiary Chronicles)’ 3부작을 출간했다. AI를 사용해 만든 최초의 만화책이다.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선 AI와 인간의 협업으로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