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이 냉방 필름이 부착된 투명 유리를 들고 있다. 가시광은 90% 통과시키고 열을 내는 적외선과 자외선은 80% 반사한다. 덕분에 기존 유리창보다 냉방용 에너지 소비를 31%까지 줄일 수 있다./경희대

세계는 온실가스가 유발한 기후변화로 폭염에 시달렸다. 세계기상기구는 최근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지난 8년이 사상 최고로 더웠던 시기였다고 밝혔다. 폭염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고 작업장 안전사고도 잇따랐다.

사상 유례 없는 폭염에 맞서 획기적인 냉방 기술들이 잇달아 개발됐다. 열을 차단하는 유리창이 개발됐고, 벽에 바르면 온도가 내려가는 페인트도 등장했다. 폭염이 닥치면 냉방 수요가 급증하고 다시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난다. 냉방 신기술들은 에너지 감소와 온도 저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

냉방에너지 31% 절감하는 유리창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냉방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15%를 차지한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도 냉방에서 나온다. 이제 냉방 기술은 온도 저하 기능 뿐 아니라 에너지 절감 능력도 갖춰야 한다.

경희대 전자공학과의 이응규 교수와 미국 노트르담대 항공기계공학과의 텡페이 루오 교수 연구진은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 기술로 빛은 통과시키고 열은 차단하는 투명 유리창을 설계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2일 미 화학회(ACS)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ACS 에너지 레터스’에 실렸다.

유리창이 열을 발산할 수 있다면 냉방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의 열은 차단하고 내부 열은 밖으로 보낼 수 있는 물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이 교수 연구진은 유리 기판 위에 이산화규소와 질화규소, 산화알루미늄 층을 덧대고 실리콘 오일 필름을 첨가해 ‘투명 복사 냉방기’를 개발했다. 인공지능에 각각의 물질에 대한 정보를 학습시켜 최적의 조합 형태를 찾아냈다.

이 교수는 “적외선을 반사하는 페인트가 있지만 밖을 보는 유리창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며 “이번에 설계한 유리창은 가시광은 90% 통과시키고 열을 유발하는 적외선과 자외선은 80% 반사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발한 냉각 복사 필름을 부착한 건물은 기존 유리창을 단 곳보다 내부 온도가 섭씨 6.5도 낮았다. 연구진은 새 유리창은 건조하고 뜨거운 날에 기존 유리창보다 냉방용 에너지 소비를 31%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냉방 유리창은 건물 뿐 아니라 승용차와 트럭에도 쓸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유리창에 쓴 물질들은 이미 대면적으로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어 공정 최적화를 이루면 상용화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 퍼듀대의 슈린 루안 교수는 약품과 화장품을 희게 만드는 물질인 황산바륨으로 세상에서 가장 흰 페인트를 개발했다. 이 페인트는 햇빛 98.1%를 반사해 정오에 주변보다 온도를 13.3도 낮췄다./미 퍼듀대

바르면 13도 낮추는 흰색 페인트

건물에서 유리창을 뺀 나머지 벽은 흰색 페인트를 발라 냉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퍼듀대의 슈린 루안 교수 연구진은 ‘ACS 응용 재료와 계면’지에 “세상에서 가장 흰 페인트로 햇빛의 98.1%를 반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시판 중인 흰색 페인트는 햇빛의 80~90% 정도만 반사한다.

더운 곳에서는 집을 흰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은 해당 파장의 빛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해 희게 보인다. 그만큼 열은 차단하는 데 좋다.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한 스티븐 추 박사는 온난화를 막으려면 세계 모든 지붕을 하얗게 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약품과 화장품을 희게 만드는 물질인 황산바륨을 써서 입자 크기를 다양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전보다 더 흰색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야외 실험 결과, 새로운 흰색 페인트를 칠한 부분은 정오 강한 햇빛 아래에서 주위보다 온도가 섭씨 13.3도 낮았고, 밤에도 7.2도 낮은 상태를 유지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흰색 페인트의 냉방 효과는 빛 차단과 동시에 열을 내는 적외선은 방출한 덕분이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는 지구에 그대로 남아 도시 열섬 현상을 유발한다. 이에 비해 이번 페인트는 대기에 흡수되지 않고 우주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파장대의 적외선을 95% 이상 방출했다.

섭씨 37도에서 나노 입자가 들어있는 실크 옷감 소재의 셔츠(왼쪽)와 일반 실크 셔츠(가운데), 면 셔츠(오른쪽)을 입은 사람을 각각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사진. 나노 입자 실크 셔츠를 입으면 체온이 훨씬 낮은 것을 알 수 있다./Nature

면 소재보다 12도 시원한 실크 셔츠

그래도 더우면 몸을 식혀주는 냉장고 셔츠를 입으면 된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샨후이 판 교수와 중국 난징대 지아 주 교수 공동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일반 실크에 나노 입자를 추가해 햇빛 95%를 반사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원래 실크는 다른 섬유보다 피부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 햇빛에 포함된 적외선과 가시광선의 대부분을 반사하고 체열도 쉽게 내보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일반 실크 섬유에 산화알루미늄 나노 입자를 추가해 자외선까지 반사시켰다.

연구진은 실리콘 고무로 만든 마네킹에 나노 입자 실크로 만든 긴팔 셔츠와 일반 실크 셔츠, 면 셔츠를 각각 입혀 햇빛 아래에서 실험했다. 마네킹에는 전기 코일을 넣어 체온과 같은 온도를 구현했다. 나노 입자 실크 셔츠를 입은 마네킹은 일반 실크 셔츠를 입혔을 때보다 온도가 8도 낮았으며, 면 셔츠보다 12.5도나 낮았다.

세계는 온난화를 막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 냉방 기술로 힘을 보태고 있다. 머지않아 페인트와 유리창, 의류에 ‘친환경 냉방’ 마크가 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자료

ACS Energy Letters, DOI: http://doi.org/10.1021/acsenergylett.2c01969

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 DOI: https://doi.org/10.1021/acsami.1c02368

Nature Nanotechnology, DOI: https://doi.org/10.1038/s41565-021-009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