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동이 쉬웠고 팔은 어떤 무게도 느껴지 못했다. 우주선 선실에선 물체들이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고 공중에 의자 위에 매달려 앉아 검은 우주에 떠 있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내다봤다. 나는 지구에서와 똑같이 먹고 마셨다. 내 글씨는 무중력 상태였지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필기 도구가 손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어야 했다.”
소련의 첫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은 우주에서 보낸 1시간 48분간의 짧지만 강렬했던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소련 공군 출신의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우주로 향했다.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우주에 도달한 우주선의 선실에선 물체들이 이리저리 둥둥 떠다녔고 가가린 자신 역시도 선실을 떠다니며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이 역사적인 첫 우주비행 이후 60년간 41개국 574명이 넘는 인간이 우주를 다녀왔다.
지금도 인간이 생활하는 땅 위에서 400㎞ 떨어진 지구 저궤도(LEO)에선 가로 109m, 세로 73m의 축구장만한 구조물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이 7명의 인간을 싣고 초속 7.7㎞로 날며 지구에선 결코 경험하지 못할 낯선 무중력의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엄선된 극소수 엘리트만 우주를 다녀오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괴짜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한 번에 100명을 우주로 실어나를 괴물 우주선 스타십을 건조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 우주선이 완성되면 달과 화성으로 대규모 이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세우고 대규모 이주를 꿈꾸고 있다. 액시엄 스페이스와 같은 민간 기업은 우주인 운송사업을 시작했고 한 걸음 나아가 민간 우주정거장을 짓는 계획도 내놨다. 더 많은 사람이 우주로 가는 시대가 손에 잡힐 거리까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달과 화성까지 여행에는 로켓과 우주탐사선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주에서 머물며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수개월 간 장기 체류에 필요한 필수품과 고장 난 우주선 부품을 조달할 방안도 필요하다. 달에 이어 화성 유인 탐사를 준비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은 태양과 먼 우주에서 쏟아지는 강력한 방사선으로부터 여행자들을 보호할 방법을 찾기 위해 큰 돈을 쓰고 있다. 선택된 소수만이 우주로 가던 시대엔 별로 고민하지 않던 수 많은 문제가 앞에 도사리고 있다.
많은 우주인을 배출한 미국과 러시아는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우주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로 지분 선점에 나섰다. 한국도 지난 6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하며 우주 시대를 열 기반을 닦았다. 한국은 1990년대부터 위성 개발을 해오며 ‘명품 위성’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우주로 가는 독자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반쪽 짜리 우주개발이란 평가를 받았다.
최기혁 한국마이크로중력학회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위성과 로켓 기술을 모두 보유하게 되면서 비로소 우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이제 어떤 차를 타고 달릴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주로 가는 길을 닦은 셈이니 이제 다음 스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선 지구와는 전혀 다른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며 “우주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에게도, 우주에서 사업을 하려고 독창적 아이디어를 찾는 기업에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국의 우주산업이 로켓과 위성뿐 아니라 더 다양하고 폭이 넓어져야 한다”며 “의료와 바이오, 원자력처럼 한국의 강점을 살려 미국의 유인 우주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비롯한 해외의 다양한 유인 우주 프로그램과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달 25일부터 나흘간 제주 라마다 프라자 호텔에서는 우주라는 낯설고 독특한 환경을 탐구하는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과학자들이 아시아마이크로중력학회(AMS)를 열었다. 최 회장을 학회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최 회장은 “국내 우주산업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유인 우주개발을 해야 한다”며 “당장 누구를 뽑지는 않더라도 이제 과학계가 다음 한국 우주인의 선발 목적과 임무에 대한 논의를 자발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아시아마이크로중력학회(AMS)는 어떤 조직인가.
“‘마이크로중력’이라는 독특한 우주 환경을 연구하는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연구자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1993년 발족 당시엔 일본과 중국 연구자들의 작은 모임이었다. 우주인 사업 이후 한국도 일본과 조인트 워크숍 형태의 교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 한국이 정식 가입했고 2014년 서울에서 행사가 열렸다. 매년 열리던 행사는 규모가 커지면서 격년으로 열릴게 됐고 2018년 중국 주하이에서 열린 행사에서 인도의 참여가 결정됐다. 다음번 행사는 2024년 인도에서 사상 처음 열린다.”
-마이크로중력은 좀 어려운 개념이다. 일반인이 알기 쉬운 무중력이란 말을 쓰면 안 되나.
“우주는 흔히 중력(물체가 지구로 받는 힘)이 없다고 표현하지만 완전 무중력이라는 개념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표현일 뿐이다. 우주는 완벽한 무중력 공간은 아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이 떠 있는 400~500㎞ 상공 역시 약간의 중력이 작용한다. 달이나 화성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미세중력’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요즘은 마이크로중력이란 말로 쓰는 추세다. 보통은 우주인이 거주하는 ISS가 돌고 있는 400~500㎞ 상공의 지구 저궤도 환경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어떤 연구 주제를 주로 다루나.
“마이크로 중력학회는 처음부터 우주인, 우주인이 우주에서 진행하는 실험에 초점을 맞췄다. 유인 우주 계획에 필요한 물리와 화학, 재료, 바이오, 생명과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다룬다. 이번 학회에선 좀 더 이를 확대해 우주산업 쪽으로 확대했다. 대부분이 산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는 보령제약과 힐세리온, 스웨덴 스페이스 같은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우주인 양성과 관련된 우주의학 분야도 특별히 마련했다.”
-네 나라 연구자들은 왜 모이게 됐나.
“참가국들을 보면 네 나라 모두 독자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이다. 중국은 학회에 참가하기 훨씬 전인 1960년대부터 유인 우주인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했다. 그때는 러시아 우주선을 탔고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를 겪으며 잠시 유인 계획이 주춤했지만 결국 계속 준비해서 우주로 올라갔다. 일본도 미국과 협력을 통해 꾸준히 우주인을 배출했다.
하지만 유인 우주개발을 오래 추진하던 미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전체 연구자 규모는 작은 편이다. 각국에 연구자들이 있지만 일반적인 재료공학이나 생명과학 분야에 비해선 규모가 턱없이 작다.
학술지가 국제 과학논문인용색인(SCI) 급이 아닌 걸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는 아직 정식 학술지도 없다. 우주과학회나 다른 관련 학회에 논문 발표를 하는 실정이다. 한·중·일 연구자들은 협력을 통해 규모를 키울 수 있는 크리티컬 매스(임계질량 변화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질량)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한 번 모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일본과 중국,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인도는 요즘 관계가 좀 껄끄럽지 않나. 우주 같은 민감한 분야에서 계속 교류하고 있는 게 좀 신기했다.
“학회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일본과 중국 관계가 좋았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연구자들이 중국과 많은 협력 사업을 진행했다. 요다 시니치 JAXA 연구원과 같은 베테랑 전문가들조차 일본과 중국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였다. 아직 과학 투자에 집중하고 있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던 중국도 일본과 협력을 선호했다. 비록 센카쿠 열도 문제로 일본과 중국이 사이가 서먹서먹해지만 말이다.
한국도 2014년 서울에서 행사를 열고 관계가 좋았다. 하지만 독도 문제와 전후 배상금 문제, 일본 소부장 문제가 제기되면서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사실이다. 세 나라의 직접 협력은 사실상 냉각됐다. 그래도 연구자들이 기초학문으로서 학술 교류와 발표라는 끈은 놓쳐선 안 된다고 공감한 것 같다. 일본 중국이 갈등을 빚던 2018년 중국에서 열린 행사에도 일본 과학자들이 왔다. 마이크로 중력학은 한·중·일 모두에서 소수 학문이다.”
-한국에선 언제부터 마이크로 중력 연구를 시작했나. 2010년이라면 한국 우주인 배출사업이 영향을 준 건가.
“그렇다. 한국은 우주인 배출 사업을 진행하면서 우주 소음 측정기, 차세대 메모리 소자 실험 등 다양한 우주 실험을 준비했다. 한국 우주인이 배출된 2008년 국내에 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 커뮤니티가 생겼다. 정부도 때마침 우주인 사업 이후 10년간 마이크로 중력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자유 주제 연구를 지원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등과 합동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도 나왔다.”
-국내 연구는 어떻게 발전해왔나.
“학회창립 당시에도 산발적으로 연구하고 있던 연구자들이 있었다. 우주 대신 인공적인 무중력 상태를 조성하는 제로지 항공기로 실험을 진행해온 것이다. 현재는 1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요즘 눈에 띄는 변화는 자신의 주요 연구 분야로 우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구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예 처음부터 우주에서 재료과학을, 생명과학을 연구하겠다는 것이다. 큰 변화다.”
-미국과 유럽, 러시아는 전통적 우주 선도국인데 이런 활동이 있나.
“미국과 유럽, 러시아는 오랫동안 우주개발을 해왔고 관련 기관에 이미 모든 분야가 다 있다. 재료과학, 생물학, 의학, 우주과학도 대부분 속해 있다.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크다 보니 일반 학회에 대부분 우주 분과가 있다. 아예 세부 전문학회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분야 저 분야를 모아 마이크로 중력학이라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묶어 활동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1980년대 공학의 일반적인 학문을 다루던 산업공학이라고 보면 된다. 산업공학이 훗날 기계, 전자, 재료 같은 전문 분야로 스며든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산업공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동차 공학이 자동차에 관한 산업공학을 가르치고, 기계공학에서 해당 분야에 특화한 산업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일반적인 이름으로 묶어 활동한다는 건 아직 초기 단계라는 뜻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우주개발을 일찍부터 해왔어도 우주의 산업공학과 같은 마이크로 중력학회가 활동하는 건 아직 이 분야가 아시아에선 초기 단계에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앞으로 이 분야 연구와 참여자들이 늘어나면 산업 공학처럼 자연스럽게 다 스며들어 갈 것이다.”
-ISS는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16개국이 함께 운용하면서 우주인도 보내고 우주 실험도 한다. 한국은 ISS 협력국도 아닌데 우주과학 실험이 가능한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나 한국연구재단 같은 곳에서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이창수 충남대 교수는 ISS에서 콜로이드(작은 미립자가 액체나 기체에 분산된 상태)를 연구하는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한 해외 과학자들과 협력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콜로이드 용액 같은 걸 만들고 우주로 올려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무중력 항공기 같은 인공적으로 마이크로 중력 환경을 만들어 연구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 우주인이 우주에 다녀온 뒤 정부 지원이 있었다. 10년에 걸쳐 20개 과제가 나왔다. 자유 주제였고 그 과정에서 석·박사들이 배출되면서 학회가 활기를 띠고 있다. ”
이번 행사에서도 아태 지역에서 지원한 10개 분야 120여 편의 연구 성과가 발표된다. 생명과학, 우주의학, 재료, 연소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이 소개된다. 마이크로중력 상태에서 공중에 떠 있는 물체를 고정해 놓고 실험하는 레비테이션(공중부양) 분야도 그중 하나다.
-한국 연구자들이 요즘 많이 뛰어드는 연구 분야는 어떤 쪽인가.
“아직 많이 안 알려졌지만 레비테이션(공중 부양)이라는 분야다. 가령 지상에서 금속 재료를 연구하다 보면 실험 용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녹인 시료가 중력에 영향을 받는다. 지상에선 자기장을 이용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시료를 잡아두는 방법을 쓴다. 마이크로 중력 환경에선 시료를 공중에 잡아둘 수 있다. 공중 부양 분야는 이런 방법을 이용해 시료를 잡아두고 진행하는 연구들이다.”
-국내에서 공중 부양 분야가 유망한가. 관심을 받게 된 특별한 이유는 뭘까.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규제를 시작하면서 관련 연구가 크게 늘었다. 중력에 영향을 덜 받는 환경을 활용하는 공중 부양 기술을 활용한 소재와 재료연구도 자연스레 늘었다. 미국이나 중국·유럽도 다 같이 하던 분야인데 한국이 소부장 사태를 계기로 갑자기 커진 것이다. 연구비도 많이 풀린 것도 사실이다.”
-우주 분야에서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도 최근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의학과 생명과학이 크게 주목 받는 건 사실이다. NASA에 따르면 미국이 최근 20년간 ISS에서 얻는 성과를 보면 30%가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물리학이 30%, 기술과 환경, 지구관측, 식량 연구 등이 15%에 머문다. 이런 성과는 투자에 바탕을 두는데 그만큼 우주의학과 생명과학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걸로 볼 수 있다. 아마도 미국의 새 유인 우주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과 유인 화성 탐사가 매력적인 계획이긴 하지만 인간의 장기체류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많은 것 같다.”
-연구자에게 우주는 왜 매력적인 공간인가. 지상에서 하는 연구보다 불편하지 않나.
“예로 들면 인공 장기는 지상에서 만들기 쉽지 않다. 세포를 배양하는데 물컹거리는 연한 조직이다 보니 제작 과정에서 중력의 힘에 무너져내린다. 사람 몸에서나 성장하는 것이다. 지지대를 놓고 여기에 세포를 키워도 잘되지 않는다. 금속이나 플라스틱 재질의 지지대가 닿으면 이상하게도 조직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물체가 둥둥 떠다니는 우주에선 세포가 지지대 없이도 잘 성장한다. 줄기세포를 재료로 이용하는 3D 바이오 프린팅 같은 분야가 유망한 이유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이용한 연구도 활발한데 장기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줄기세포 치료에 유망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 치료를 하려면 10억 개 세포가 필요한데 지상에선 증식이 잘 안된다. 하지만 우주에 나가면 증식이 잘 된다는 결과들이 ISS 실험을 통해 나왔다. 가령 신장이 안 좋은 사람은 이식 수술을 해왔지만 자신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한다면 훨씬 안전하다. 우주에서 배양한 줄기세포를 지구로 가져와 환자에게 주사 치료하는 방식이다. 신장 치료를 하고 궁극적으론 아예 새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제약 분야도 유망하다. 현재 제약사들은 질병 표적을 찾고 여기에 맞는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하기 위해 단백질 결정 성장을 활용한다. 병을 고치는 물질을 찾을 때도 또 병균이 병을 일으키는 과정은 사실상 같다. 단백질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사실 지상의 실험실에선 단백질을 성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땅 위에서 만들 수 있는 샘플 크기는 0.5~3㎜인데 우주에선 10배 크게 성장시킬 수 있다. 이를 X선 회절법으로 보면 지구에서보다 훨씬 정확하게 단백질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인체 장기를 우주에서 프린팅하는 것도 꿈 같은 이야기인데 우주에서 제조해서 내려온다는 게 정말 가능하겠나.
“우주에 1㎏ 물체를 가지고 올라가려면 5만 달러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 많게는 4000~5000달러, 싸게는 2000~3000달러면 가능해졌다.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인간이 달이나 화성에 가려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장벽은 무엇인가.
“유인 우주개발이 시작된 이후 우주인의 건강 문제는 줄곧 관심사였다. 그런데 짧은 우주여행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달이나 화성처럼 한번 가면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장기간 체류하면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우주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방사능과 지구와 다른 마이크로 중력환경이 우주인 건강을 망가뜨린다.
화성을 왕복하려면 3년은 걸릴 것이다. 3년간 우주에서 방사선을 맞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10%나 올라간다. 어떤 연구자는 사람에 따라 20~30%까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장기체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문제도 심각하다. 각국에서 신체와 정신력을 감안해 엄선해 선발한 우주인들마저도 상당수가 수면제를 먹고도 2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는 수면장애에 걸려 땅 위로 오는 경우가 많다. ISS 내부 환경이 24시간 기계가 돌아가고 불이 켜있는 환경인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급격히 늘어난 결과다. 수면제를 먹어도 2시간밖에 못 자면 한 달 동안 지속된다면 어떨까. 사람이 버텨내겠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주에 장기간 머문 우주인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하다. ISS에서 6개월에서 1년간 머물던 우주인들 가운데에서는 건강 적신호가 적잖게 발견된다. 장기간 우주에 머물면 위장 조직이 상하고 뇌 위치와 구조가 바뀌어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리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마이크로 중력 환경에선 흔히 액체의 표면 장력이 커지는데 이 현상이 혈관에 나타나면 혈액이 뭉치고 혈전이 생긴다. 지구와 다른 환경이라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며 신체 리듬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몇몇 우주인들은 급격한 시력 약화를 호소한다. 먼 우주에서 날아온 방사선이 ISS 본체를 때리면 알루미늄으로 된 기체에서 평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자들이 튀어나온다. 일부 우주인은 눈을 감고 있을 때 불꽃이 튀어 다니는 현상을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자 샤워인 셈이다. 이런 입자들이 우주인의 눈을 손상시키면서 장기간 체류 후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골밀도 저하나 근육량 감소도 동반하고 기립성 현기증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예도 있다. 그 방책으로 호르몬제를 먹고 근육에 전기자극을 줘서 진동을 주는 방식으로 지구와 비슷하게 몸에 하중을 주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얼마 전 국내 제약사인 보령이 우주 헬스케어 진출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우주의학과 헬스케어란 어떤 분야인데 관심을 보이는 걸까.
“인간은 수십 만년 간 중력환경에서 진화한 동물인데 우주 공간에 인간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인간이 우주에 체류하는 시대에 대비한 우주의학과 헬스케어가 필요하다. 몇 달간 우주에 머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NASA는 우주인들에게 건강 유지를 위해 하루에 2시간 이상 운동을 권유하는데 누가 하겠나.
우주 관광객이 등장하게 되면 우주에 더 많은 사람이 다녀올 것이다. 달이나 화성에 가는 사람이 늘면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거나 병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ISS에서 아프면 우주선을 타고 그냥 오면 되지만 화성에서 다리를 다친다면 현지에서 수술도 하고 치료도 해야 한다. NASA가 중점적으로 파트너를 찾고 투자에 나서는 분야이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보다는 후발국에 속한다. 한국이 이 분야에 경쟁력이 있을까. 미국도 손잡고 싶어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의대 집중 현상이 역설적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한국은 20년간 최고의 인재가 의학 분야에 다 모였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의 의대 정원을 모두 채워야 공대 정원이 찬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그래서 우주 의학 연구를 할 인재는 충분하다.
한국의 대학병원 시설도 높은 평가를 받고 양질의 의사들도 많다. 20년 전에 미국과 우주 협력 방안을 논의할 일이 있었는데 당시 NASA 관계자들은 ‘공학과 물리 연구는 우리가 할 만큼 했다. 하지만 바이오나 의학 쪽을 제안해주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아르테미스 사업을 하는 데 한계가 많아 일본과 유럽 등 다양한 나라를 끌어들인다. 한국이 만약 이 분야를 제안하면 굉장히 좋아할 것 같다.”
-그렇게 유망하다면 한국은 연구자가 풍부하다는 건가.
“전혀 아니다. 아직은. 국내 의사들의 학회 분과가 100개라고 보면 이 분야는 규모론 89번째나 90번째 정도라고 보면 된다. 산부인과나 내과 같은 대형 학회는 수천 명씩 모이겠지만 신생학회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항공우주의학은 의학계에 소수학회다. 아까 말한 일반론에 가까운 산업 공학이라고 보면 된다.
점점 관심을 갖는 의사와 생명과학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결국 언젠가는 다양한 분과로 우주의학이 확산해 나갈 것이다. 의사라면 자신의 전공에 근거해 누구나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우주를 좀 공부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서 만에 하나 한국에서 두 번째 우주인이 나온다면 의사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우주에서 직접 경험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러시아도 의사 출신 우주인이 다녀왔다. 1994년 우주를 다녀온 일본의 우주인 치아키 무카이도 의사 출신이었다.”
-우주는 ‘돈 먹는 하마’일 뿐 기업이 가서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 소리가 안 나오려면 우주가 산업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일단 파이가 커져야 한다. 파이가 커지면 고용이 늘어나고, 고용이 늘어나야 국민이 동의한다. 아들과 딸이 우주산업에서 그럴싸한 일을 하며 돈을 벌면 예산 증액하기에도 좋다. 사실 우리만 듣는 소리는 아니다. 미국도 그랬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요즘 이렇게 말한다. 60년간 투자했고 이제는 돈을 번다고. 스페이스X를 위시한 우주벤처들을 보라고 한다.”
-올해 학술행사에는 처음으로 산업 분야를 넣었다고 했다. 우주과학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 특별히 넣은 이유가 있나.
“흔히 지금은 ‘뉴스페이스 시대’라고 하지 않나. 한국은 전통적으로 항공우주 메이저 기업만 우주에 참여했다. 대부분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기업들이다. 뉴스페이스는 우주를 활용해서 다양한 사업 모델을 추진하는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한국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성공하면서 올해가 그 원년이다. 한국은 위성이 선진국 수준이지만 발사체는 그러질 못했다. 위성과 발사체 기술이 완성되면 다음은 우주 탐사와 활용에 나서는 게 우리보다 앞선 국가들이 가는 길이다. 한국은 ‘우주개발 2.0시대’로 들어갔다고 나름대로 부르고 있다.
로켓과 위성 같은 하드웨어를 만들 때가 ‘1.0′ 시대라면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우주 산업화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주개발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우주산업이 확대돼서 고용 창출을 해야 한다. 수출도 하고 돈도 벌고 그래야 한다. 지구 저궤도에서 제조하면 가능하다. 약을 만들든 공구를 만들든 한국도 우주산업의 다각화를 위해 신경을 써야 할 때다.
보령처럼 최근 우주 분야가 아닌데도 우주산업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있다. 한국에도 관련 연구를 하는 학술 커뮤니티가 있고 한국 외에도 중국과 일본, 인도 관련 전문가들이 모이는 행사라는 점에서 기업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일본우주항공개발기구(JAXA)가 ISS에서 운용하는 과학실험 모듈 키보(KIBO)에서 진행된 마이크로 중력 환경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면서 참여 기업들을 소개했다. 실험에 참여한 도요타 자동차를 비롯해 요구르트, 소니 등 일본의 유명 기업들은 지구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제품 성능을 평가하기도 하고 새 상품을 발굴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요즘 우주를 한다는 한화나 보령 같은 기업이야 오너 의지로 우주 진출을 선언했지만 아직 주저하는 기업들이 많다. 기존 사업을 보고 투자한 주주도 있는데 갑자기 우주를 할 수는 없지 않나.
“기업이 우주에 진출하려면 오너나 주주들에게 우주가 매력으로 다가와야 한다. 아 우주에 가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사실 이런 돈 버는 모델은 그간 누구도 제시하지 못했다. 정부나 연구소는 천성적으로 못하는 일이다.
그래서 정부보다 민간이 찾는 게 맞다. 우주에서 어떤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정부가 사업 모델을 일일이 찾아줄 수는 없다. 사업가와 연구자들이 이렇게 자꾸 말을 주고받고 정보도 교환하다 보면 돈벌이가 될만한 사업 아이템이 나올 것이다.”
-일본은 ISS와 미국의 유인 우주 계획인 아르테미스 사업의 주요 협력국이다. 자국 기업들을 끌어들여 월면차도 만들고 수송선도 만든다. 한국도 지난해 협정에 서명했는데 아직 협력 모델이 안 보인다.
“정부나 전문가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우주의학과 제약, 방사능 방호 같은 분야는 유망하지만 NASA나 우리나 나서서 하자고 이야기한 적은 없다. 어쩌면 근본적인 부분이다. 한국은 우주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철학과 전략이 뭐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담당 공무원이든 일선 연구자든 마찬가지다. 도로를 깔고 자전거를 타고 갈지 어떤 자동차를 타고 갈지 생각을 못 했다. 위성과 발사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뜻은 도로가 이제 막 깔렸다는 뜻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 거냐는 정부도 굉장히 고민하고 있을 거다.
참고로 미국은 우주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압도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우주개발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국은 미국을 이기기 위해서, 러시아는 원래부터 우주 종주국이란 생각에서 우주에 투자한다. 일본은 동아시아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최우방으로 남기 위해 미국과 꼭 붙어서 달도 가고 화성도 가려고 한다. 유럽도 미국의 아버지 나라니까 미국하고 거의 한 편이라고 보고 미국이 하는 건 또 무조건 유럽을 따라간다. 그런데 우리는 애매하다.”
-우주개발에서 어떤 게 애매하다는 건가.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보다 작다. 경제 규모로만 보면 모든 걸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 인도는 우리 주변국이고 이들보다 너무 뒤떨어지면 안 되는 상황에 있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독일이나 프랑스는 유럽우주국(ESA)이라는 한 몸으로 움직이니 우리와 다르다.
무엇보다 한국은 위성과 발사체 등 우주개발을 위한 수단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했다. 왜 우주로 가야 하는지 깊이 있게 철학을 세우지는 못했다. 이제 그 시점이 됐다.”
-국민에게 왜 우주에 투자해야 한다고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우주개발을 하는 목적을 산업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고용 창출로 봐야 한다. 자동차 산업이나 군수산업이 국민에게 미치는 효과도 있지만 우주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까지 주는 독특한 면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 규모와 기술 수준을 봐가며 어디까지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국이 화성에 가고 인도가 달에 간다는데 한국은 해야 할까. 화성 착륙선은 몇조 원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아랍에미리트(UAE)가 한다고 우리도 가야 할까. 이제는 이런 부분에 의문을 가지고 가이드라인이나 한계를 결정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 집중할 것이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산업화하면 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우주산업의 밸류체인에 들어가고 국방과 안보에 도움이 되는 쪽을 택해야 한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한국으로서는 우주 기술이 백그라운드 기술에 해당한다.”
-한국은 우주인 사업 이후에 유인 사업이 중단되면서 우주인 이야기는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하지만 일본도 그렇고 UAE도 우주인을 선발해 우주로 보내고 있다. 여러 나라가 우주에 사람을 보내려고 투자하는 이유는 뭔가.
“로봇이 발전해도 다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로봇이 못하는 건 사람이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주 탐사를 하거나 우주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려면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안보 목적도 있다.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언젠가 우주가 군사화하는 날을 대비해 미국은 미국인이 단 1초라도 우주에 없는 일은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우주공간에 반드시 미국인이 한 명이라도 상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일본도 사실상 안보 목적에서 우주개발을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한국에선 다음 우주인 배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과 달리 연말 발표되는 4차 계획에는 우주인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정도 표현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우주인을 양성하자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됐나. 우주 커뮤니티에선 우주인 이야기를 터놓고 하기 어렵다.
“우주인 육성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결정을 못 하고 있다. 다음번 우주인이 우주에 가서 진짜 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가, 그리고 우주인 정체성을 어떻게 해야 하냐에 대한 과학계 저변의 공감대가 없다 보니 결정이 어려워 보인다.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 제2 우주인을 어떤 사람이 할지 그래서 어떤 임무를 해야 할지 논의가 되면 공무원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그런 게 안 보인다.
다만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우주인 선발 훈련을 시킨 국내 인프라를 조사한 일이 있다. 생각은 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왜냐면 한국이 참여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은 유인 프로그램이고 사람을 보낼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안 가면 의미가 크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스페이스X가 개발하는 대형 우주 수송선인 스타십이 한꺼번에 100~150명씩 우주로 데려가면 어떻게 되나. 우주인 사업은 더 어려워지지 않겠나.
“그런 날이 오면 우주인 사업은 민간이 알아서 하는 시대가 되지 않겠나. 국가 우주인이란 개념이 무색해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의 전략 철학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어디까지 어떻게 할 거냐 우주를 대하는 우리의 철학과 전략이 일단은 공감대를 좀 가져야 그러면 자동으로 밑은 해결된다고 본다.”
-우주산업에 좀 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면 뭘 해야하나.
“지금까지 우주개발은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이었다. 기업에 이윤을 보장하지 않았다. 양산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 어렵다면 국방처럼 개발비가 많이 들더라도 이윤이 남도록 인센티브 제도를 주고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오히려 발사체 경쟁을 하면 승산이 없다. 싸고 신뢰성 높은 발사체가 많다.초기엔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 수출길을 열어 주는 방법도 있다. 최근 대다수 개발도상국이 위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위성이 필요한 개발도상국에 소형위성을 팔면서 기술과 인력 교육을 패키지로 함께 파는 방식으로 수출할 수 있다.아직 해외엔 이런 방식의 수출을 해본 나라는 없어서 위성 기술이 발전한 한국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