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최근 치명적인 새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논란을 유발했다./NIAID

미국 과학자들이 치사율이 80%나 되는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당장 바이러스가 실험실 밖으로 유출돼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험 결과를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이지 실제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반박도 나왔다.

영국 데일리메일지는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대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치사율이 80%인 새로운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단독 보도했다. 데일리메일은 기사에 ‘감염병 대유행을 초래할 수 있는 불장난이 벌어졌다’는 제목을 달았다.

오리지널 바이러스에 오미크론 돌기 결합

보도에 따르면 보스턴대의 국립신종감염병연구소(NEIDL) 연구진이 2020년 초 워싱턴주에서 처음 채집한 코로나바이러스에 최근 유행 중인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를 추가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체 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결합해 침투한다.

실험에 사용한 워싱턴주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처음 퍼진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종류였다. 오리지널 코로나바이러스인 것이다. 여기에 오미크론의 스파이크가 나오도록 했더니 실험용 생쥐 10마리 중 8마리가 죽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쥐는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미국 럿거스대의 리처드 에브라이트 교수는 데일리메일에 “이번 연구는 기능 획득 연구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기능 획득 연구는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해 전염성을 높이거나 감염 가능한 숙주를 늘리는 것을 말한다. 한 이스라엘 과학자는 이를 두고 데일리메일지에 “불장난을 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무조건 금지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스턴대 연구진은 최근 유행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1)을 우한발 오리지널 코로나바이러스에 추가했다(2). 하이브리드 바이러스를 생쥐에게 주입하자(3) 10마리 중 8마리가 죽었다(4)./데일리메일

보스턴대는 당장 데일리메일 보도에 대해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연구 결과의 의미를 제대로 보지 않고 일부만 뽑아내 위험성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대학은 먼저 원래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게 만들지 않아 기능 획득 연구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보도대로 새로운 하이브리드 코로나바이러스가 생쥐에서 치사율 80%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의 뼈대가 된 오리지널 코로나바러스보다는 덜 치명적이라고 보스턴대는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우한발 바이러스는 생쥐를 100% 죽였다.

보스턴대는 해당 실험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는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유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것이다. 또 실험에 쓴 생쥐는 처음부터 코로나바이러스에 잘 감염되도록 변형한 것이어서 실제 사람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보스턴대는 밝혔다.

연구진은 생쥐의 호흡기 세포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수용체가 더 많이 나오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바이러스도 일부러 코에 주입해 실제와 차이가 난다고 했다. 만에 하나 하이브리드 바이러스가 유출된다고 해도 사람들이 생쥐처럼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보스턴대는 당초 연구의 목적은 오미크론이 전염성이 강하면서도 증상은 약한 이유가 스파이크 단백질에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실험 결과 오리지널 바이러스에 오미크론 스파이크를 붙여도 증상이 약해지지 않는다고 나온 것이다. 논문 교신저자인 보스턴대의 모산 사이드 교수는 “앞서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번 연구 결과는 오미크론의 병원성이 스파이크 단백질이 아니라 다른 바이러스 단백질이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하이브리드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들어낸 미국 보스턴대 국립신종감염병연구소((NEIDL)의 생물안전 3등급 실험실 모습./미 보스턴대

절차, 커뮤니케이션이 미흡한 결과

과학자들은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미국 이칸 의대의 플로리안 크래머 교수는 18일 사이언스에 “자연에서도 그런 하이브리드 바이러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며 “어머니 자연은 이미 이전부터 사람에 그런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험실에서 하이브리드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 식품의약국(FDA) 과학자들은 지난 9월 ‘셀 리포트’에 오미크론과 초기 코로나바이러스의 하이브리드를 만들어 이번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미국 텍사스 의대와 화이자 연구진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비슷한 하이브리드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들어 백신 효능을 시험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그렇다고 연구진이 논란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보스턴대 연구진은 사전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대학윤리위원회, 보스턴대 공중보건위원회의 심의도 거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비를 지원한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에는 연구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NIAID는 실험에서 새로운 감염병 대유행을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병원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사전 심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NIAID의 감염병 부문장인 에밀리 에르벨딩 박사는 17일 스탯(STAT)지 인터뷰에서 “하이브리드 바이러스 실험 내용은 연구비 제안서나 후속 보고서에 있지 않았다”며 “만약 보스턴대 연구진이 해당 실험을 우리에게 알렸다면 심의를 받도록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대는 NIAID 연구비는 장비 구매에 쓰고 이번 실험에 직접 사용하지 않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에르벨딩 박사는 NIAID는 보스턴대 연구진과 며칠 내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브리드 코로나바이러스를 만들어낸 미국 보스턴대 국립신종감염병연구소((NEIDL)./미 보스턴대

보스턴대 연구진이 대중과 소통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정식 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 지난 14일 논문 사전 출판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먼저 공개됐다. 연구진은 초록에 생쥐 치사율이 80%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라스무스대학병원의 마리온 쿠프만 교수는 트위터에 “정식 출판 전 논문에 그렇게 밝히는 것은 현명한 출발이 아니라”라며 “보스턴대의 커뮤니케이션 실수”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오미크론의 증상을 약하게 한 원인이 아님을 규명하기 위해 진행됐다. 그렇다면 사전 출판사이트에 공개할 때는 단순히 “하이브리드 바이러스가 오미크론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획득했음에도 여전히 치명적이었다”는 정도만 밝히면 되는데, 굳이 치사율을 숫자로 명시해 오해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참고자료

bioRxiv, DOI: https://doi.org/10.1101/2022.10.13.51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