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로봇 기업들이 로봇을 무장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최근 로봇개에 기관총이나 로켓을 장착한 사례가 나오면서 자칫 로봇이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로봇 기업들은 먼저 무기화 연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로봇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6일(현지 시각) ‘범용 로봇이 무기화돼서는 안된다’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이 서한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비롯해 미국의 애질리티 로보틱스, 오픈 로보틱스, 캐나다 클리어패스 로보틱스, 스위스 애니보틱스, 중국 유니트리 등 세계적인 로봇기업 여섯 곳이 공동 서명했다.
◇로봇개 무장 사례에 우려 제기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으로 유명한 로봇 기업이다. 지난 2020년 현대차가 인수했다. 스폿은 이미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원격 검사 업무를 맡고 있으며, 유적지 순찰, 코로나 방역 안내에도 투입됐다. 하지만 최근 스폿과 같은 형태의 로봇개에 무기를 장착한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악용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7월 러시아의 비행드론 업체 설립자인 알렉산더 아타마노프는 로봇개가 소총을 장착하고 야외 사격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로봇은 중국 유니트리가 3000달러에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지난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방산 전시회에도 대전차 로켓을 장착한 로봇 군견이 등장했는데, 역시 유니트리 로봇을 개조한 것으로 추정됐다.
로봇기업들은 공개서한에서 “원격 조종하거나 자율 동작하는 로봇에 무기를 장착하는 것은 새로운 위협이자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우리는 첨단 기동력을 갖춘 범용 로봇이나 소프트웨어를 무기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또 고객의 로봇 사용 계획을 주의 깊게 검토해 잠재적인 무기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동시에 그런 위험을 줄이거나 대처할 새로운 기술도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니트리 로봇개를 구매한 고객이 무기를 장착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치안, 국방에 합법적 이용은 보장
로봇기업들은 그러나 로봇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금지하자는 뜻은 아니라고 밝혔다. 국가나 정부가 자신들을 방어하고 법을 지키기 위해 로봇을 사용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로봇개가 치안, 국방 업무에 투입됐다. 뉴욕소방서는 지난 3월 위험한 상황에서 탐색구조를 위한 정보와 영상을 얻기 위해 로봇개 스폿을 도입했다. 서호주 경찰은 지난 7월부터 폭발물 제거와 정찰에 스폿을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외곽을 경비하는 로봇 군견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현대로템은 오는 2024년까지 대테러작전용 다족 보행로봇을 개발해 육군에 납품키로 했다.
로봇기업들은 이번 공개 서한에서 “이런 (로봇) 기술이 인류에게 주는 이익은 악용 위험보다 월등하다고 확신한다”면서 “인간과 로봇이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