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첫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를 상업용 발사체로 거듭나게 하는 고도화 사업을 주관할 사업자로 한화(000880)그룹이 사실상 선정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7일 열린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사 선정' 최종 개찰 결과 입찰가격점수 10점을 받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를 사업자로 최종 낙찰됐다. 입찰에 함께 참여한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는 입찰가격점수에서 9.99를 받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전에 실시된 기술능력 평가에서도 KAI보다 3점 높은 90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2027년까지 총 네 차례 누리호를 반복 발사해 성능과 안정성을 추가적으로 확인하면서 이 과정에서 관련 기술을 민간기업에 이전해 우주발사체를 포함해 관련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유나이티드론치얼라이언스(ULA)나 스페이스X, 유럽 아리안스페이스, 러시아 후르니체프사와 프로그레스사와 같은 우주발사체 체계종합 회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발사체 체계종합회사란 우주 발사체를 기획, 설계하고 여러 부품 기업들과 협력해 발사체를 직접 제작해 납품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회사다.
전체 예산만 6873억8000만원에 이르며 3036억8000억원이 기업이 주관하는 발사체 제작 사업에 배정됐다.
누리호를 설계하고 개발한 항우연과 함께 크고 작은 발사체 부품과 소프트웨어 기업을 이끌어 내년부터 한국형발사체 4기의 총조립을 맡을 체계종합기업 선정은 그 첫 단추에 해당한다. 우주기술과 우주기업의 산실로 자리잡은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1964년부터 민간기업과 기술 공유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이날 주관 제작사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내년부터 2027년까지 4차례 반복해 발사할 누리호와 동급 300t급 우주발사체를 제작하면서 설계와 시험, 발사 운영 등 발사체 개발 전주기 기술을 항우연으로부터 이전받는다. 사실상 누리호에서 획득한 3단형 300t급 액체 발사체 기술과 발사 운영노하우를 통째로 이전받게 되는 것이다.
7월 공개된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체계종합기업은 내년 2월 발사되는 세 번째 누리호 비행모델(FM3) 발사를 비롯해 2024년 3월, 2026년 6월, 2027년 9월에 각각 총조립 발사체(ILV)를 제작해 납품해야 한다. 이들 총조립 발사체는 라이드 셰어(여러기 위성을 실어 나르는 승차공유) 방식으로 발사될 예정이다.
체계종합기업은 이 과정에서 발사체 각 단과 이를 조립한 형태의 ILV 제작을 주관하고 구성품 제작 참여기업을 총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항우연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 기업을 한국형발사체 시스템, 서브시스템, 구성품(지상시스템 포함)등을 제작해 납품한 실적이 있거나, 계약해서 개발하고 있는 국내 기업에 한정했다. 또 최근 5년간 총 300억원 이상의 실적을 증명할 수 있는 기업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상세히 살펴보면 까다로운 조건들이 들어 있다. 제작되는 발사체는 비행모델(FM)로 불리는데 내년과 2024년 발사될 FM3와 FM4 등 2기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조립하지만 FM5과 FM6는 주관 기업 총조립 공장에서 제작하는 조건이 달려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누리호와 같은 추력 300t급 중형 액체 우주발사체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보유해야 이런 시설을 구축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75t액체 엔진을 제작하긴 했지만 KAI와 달리 우주발사체 전체 조립 경험이 없고 상대적으로 미사일 등 고체 로켓 분야에 익숙한 기업이었다. KAI가 우세할 것이란 일부 관측이 나온 것도 누리호를 항우연 연구진과 공동 조립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평가와 가격 평가에서 한화는 그룹의 기술 역량을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번에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KAI는 현재 전투기와 무인기 등 항공 분야까지 다방면에 사업 분야가 펼쳐져 있다. 누리호 제작과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위성)과 중형위성 제작 등 우주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스페이스허브처럼 역량을 집중한 한화와 달리 우주 분야 전문성과 의지가 희석돼 보이는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항우연은 이번 고도화 사업을 통해 누리호는 내년 상반기 차세대 소형위성 2호, 2024년 초소형위성 1호, 2026년 초소형 위성 2∼6호, 2027년 초소형 위성 7∼11호 등 실용 위성을 순차적으로 쏘아올릴 예정이다.
일각에선 이번 선정은 향후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 사업'의 체계종합 사업자 선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2030년에 500t급 추력을 내는 차세대 발사체를 활용해 달 착륙 검증선을 발사해 성능을 확인하고 2031년에 달 착륙선을 발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누리호로는 개량을 해도 100kg급 탐사선을 달 전이궤도에 투입할 수 있지만 차세대 발사체를 쓰면 1.8t급 탐사선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2019년 달 뒷면에 착륙한 중국의 창어4호는 무게가 1.32t인 점을 보면 한국도 달에 착륙할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차세대 발사체는 누리호보다 훨씬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지만 수송 능력이 대폭 확대된다. 정부는 우주 관광과 대형 화물 수송도 가능토록 한다는 구상도 포함했다. 아울러 산업체를 중심으로 재점화와 추력 조절 등 재사용 기반 기술 개발도 병행해 선진국과의 기술 간극을 좁히는 전략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 역시 차세대 발사체의 설계부터 최종 발사에 이르는 전 과정은 항우연과 이 사업을 위해 별도로 체계종합기업이 함께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 발사체 총괄 제작사가 아무래도 이 사업 역시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않겠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중인 이 사업은 2023년부터 2031년까지 9년동안 1조9330억원을 투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