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시의 쓰레기통 주변에 있는 붉은여우. 이 여우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저장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Sam Hibson

코로나에 이어 원숭이두창도 야생동물로 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자칫 야생동물이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진화하는 일종의 저수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30일 “반려동물이 사람을 통해 원숭이두창에 감염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자칫 야생동물까지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반려견이 증상 가진 주인 통해 잇따라 감염

원숭이두창은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비슷한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이다. 고열과 함께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고 온몸에 수포가 발생한다. 첫 환자는 1970년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나왔다. 지난 5월 유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6만80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해 그전 반세기 동안 발생한 환자 수를 넘어섰다.

동물이 사람을 통해 원숭이두창에 걸린 것은 지난 8월 처음 확인됐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 그레이하운드종 반려견이 원숭이두창 증상을 보인 주인과 같은 침대를 쓰다가 감염됐다. DNA 분석 결과 그레이하운드에서 나온 바이러스는 주인의 바이러스와 일치했다. 같은 달 브라질 보건 당국도 역시 반려견이 사람을 통해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반려동물보다 야생동물로 바이러스가 퍼질까 더 우려한다. 쥐와 같은 야생동물로 바이러스가 퍼지면 나중에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저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아메리칸대의 말라키 오케케 박사는 네이처에 “그렇게 되면 정말 낭패”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이야 감염되면 집에 격리할 수 있지만 야생동물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그레이하운드. 프랑스에서 주인을 통해 원숭이두창에 감염된 이탈리아 그레이하운드가 나왔다./위키미디어

도시의 여우, 시궁쥐로 퍼질 가능성도 제기

아직 과학자들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저장소 역할을 한 동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1958년 실험실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돼 이 같은 이름이 붙었지 원숭이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에 사는 쥐들을 의심한다. 감비아도깨비쥐, 다람쥐, 아프리카줄무늬다람쥐, 과녁쥐 등이 거론된다. 2003년에는 미국에서 반려설치류인 프레리 도그와 접촉한 사람 47명이 원숭이 두창에 집단 감염된 적이 있다. 프레리 도그는 가나에서 온 감비아도깨비쥐를 통해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리버풀대의 마커스 블래그로브 교수 연구진은 지난 8월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원숭이두창은 50종 이상의 포유동물에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와 함께 유사한 폭스바이러스 62종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1500종 가까운 포유류와 비교했다. 동물의 먹이와 서식지, 활동형태 자료도 모았다. 이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원숭이두창의 잠재적 숙주가 될 동물을 찾았다.

인공지능이 예측한 결과에 따르면, 숙주가 될 야생동물은 지금까지 알려진 동물보다 2~4배나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 사는 야생동물이 더 위험한 종으로 꼽혔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 붉은 여우와 시궁쥐이다. 붉은 여우는 이미 유럽과 영국의 도심에서 밤중에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산다. 집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 역시 감염 사례가 확인되기 전에 이미 인공지능 분석에서 원숭이두창에 걸릴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블래그로브 교수는 원숭이두창에 취약한 동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방역 당국이 어디를 먼저 감시해야 할지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전에 원숭이두창이 야생동물로 퍼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사람에서 감염자를 줄이는 것이 최선책이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의 스페파니 세이퍼트 교수는 네이처에 “최선책은 백신 보급을 늘리는 것”이라며 “그것이 사람에서 동물로 원숭이두창이 퍼지는 드문 사례를 줄이고, 결국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미 존스홉킨스 의대

코로나도 야생동물에서 감염 사례 잇따라

코로나 대유행의 경험은 원숭이두창을 막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번 코로나 대유행이 박쥐의 바이러스가 중간숙주인 야생동물을 거쳐 사람으로 퍼지면서 발생했다고 본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마이클 워러비 교수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크리스천 앤더슨 박사 연구진은 중국 우한 화난수산시장 남서쪽 매대의 우리에서 집중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밝혔다. 2014년 호주 연구진이 찍은 사진에 식용, 모피용으로 너구리를 팔던 곳으로 나온 곳이었다. 야생동물이 인간과 만나지 않았어야 할 곳에서 접촉하면서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한 것이다.

각국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20년 덴마크의 농장에서 키우는 밍크가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걸린 뒤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겼다. 덴마크 정부는 사육 중인 밍크 17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올 초에는 홍콩 반려동물 판매점에서 팔린 햄스터가 코로나에 감염됐으며, 직원과 손님에게도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홍콩 당국도 햄스터 2000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2월 캐나다 과학자들은 흰꼬리사슴에게서 돌연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바이러스가 사슴이 발견된 곳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서도 확인됐다. 북미 대륙에는 흰꼬리사슴 3800만 마리가 살고 있다. 이들이 코로나버이러스가 진화할 거대한 저장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같은 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의학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에 “인간 사회에서는 사라진 알파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펜실베이니아주의 사슴에게서 계속 퍼지고 진화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원숭이두창이 코로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