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풍기는 체취까지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앞으로 의료 탐지견이 암이나 코로나 뿐 아니라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환자까지 돌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의 캐서린 리브 교수 연구진은 29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개가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땀과 날숨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수학 시험 스트레스를 체취로 감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에 변화가 온다. 심장이 빨리 뛰고 땀이 난다. 앞서 연구에서 개는 후각으로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나 암,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퀸스대 연구진은 개가 스트레스도 감지할 수 있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자원자 36명에게 심사 위원 앞에서 숫자 9000부터 17씩 빼며 큰 소리로 세라고 시켰다. 틀리면 바로 멈추도록 했다. 스트레스 상황을 유발한 것이다. 실제로 시험 도중 27명이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다. 자원자들은 실험 전후로 거즈로 목과 이마의 땀을 훔치고 유리병에 숨을 뱉도록 했다.
다음에는 반려견 네 마리에게 수학 시험을 마친 사람의 땀을 훔친 거즈 냄새를 맡고 하고, 날숨이 든 병 중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맞추도록 했다. 반려견에게는 거즈 주인공이 시험 전에 뱉은 날숨과 시험 후 뱉은 날숨이 든 병, 그리고 빈 병 세 개를 제시했다. 개들은 720번의 시험 중 시험 후 뱉은 날숨이 든 병을 675번 맞춰 약 94%의 정확도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 결과는 공황 장애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를 돕는 의료 탐지견이 후각 정보까지 활용하도록 훈련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현재 의료 탐지견은 환자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자해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도록 훈련을 받는다. 이제 겉으로는 멀쩡해도 스트레스 체취가 나면 즉각 다른 사람에게 알리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개가 행복감과 같은 다른 감정의 체취도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호르몬 변화가 땀과 호흡에 반영 추정
이번 연구에서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의 체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화학물질을 감지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스트레스가 호르몬 변화를 유발하고 이를 개들이 감지한다고 추정했다.
영국 의료 탐지견 재단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인 클레어 게스트 박사는 이날 가디언지에 “의료 탐지견은 어떤 건강 문제로 체취에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을 감지하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도록 훈련 받는다”라며 “이런 건강 문제 중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처럼 호르몬 변화에 기인하는 것도 있으므로 이번 결과는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개는 질병의 냄새를 감지할 정도로 후각이 뛰어나다. 개는 품종에 따라 사람보다 후각이 1000~1만배 뛰어나다.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3억개로 사람의 500만~600만개를 압도한다. 수용체 단백질은 미로 형태의 얇은 뼈 표면에 붙어 있는데, 표면적도 개가 150~170㎠로 사람(5~10㎠)보다 훨씬 크다. 그만큼 냄새 분자와 후각 수용체가 더 잘 반응한다. 또 뇌 크기는 사람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냄새 처리 영역은 3배나 크다.
과학자들은 개의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이미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고 있다. 2015년 이탈리아 연구진은 독일 셰퍼드 두 마리가 전립선암 환자의 시료를 98%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영국 더럼대 연구진은 2018년 탐지견이 아프리카 감비아 어린이들이 신은 양말 냄새를 맡고 말라리아 감염자는 70% 정확도로, 비감염자는 90%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발표했다.
의료 탐지견은 코로나 환자도 가려낼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수의대의 신시아 오토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탐지견이 소변과 타액 시료의 냄새를 맡고 코로나 감염자를 96% 정확도로 가려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브리스톨 카운티 보안관은 미국 경찰 최초로 코로나 탐지견을 도입했다. 플로리다 국제대는 사전 훈련에서 개들이 코로나 탐지에서 90% 정확도를 보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