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1500광년 떨어진 블랙홀. 보이지 않는 천체여서 가운데 파란 점으로 표시했다./미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연구소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블랙홀이 발견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발표가 맞는다면 근처에 있는 외계 행성은 하늘에서 목성처럼 빛나는 블랙홀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연구소의 카림 엘-바드리 박사 연구진은 "지구에서 1500광년(光年, 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블랙홀 '가이아(Gaia) BH1'를 발견했다"라고 지난 16일 밝혔다.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가까운 블랙홀은 5200광년 거리에서 발견됐다. 이번 발표가 맞는다면 사상 최단 거리의 블랙홀이 된다. 연구 결과는 동료 과학자들의 심사를 받기 전 사전 출판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먼저 발표됐다.

유럽 우주망원경 가이아로 발견

이번 가이아 BH1 블랙홀은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 우주망원경으로 발견했다. 블랙홀은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다. 빛이 나오지 않으니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천체다. 연구진은 대신 주변에 있는 항성(恒星,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잡아당기는 중력의 크기로 블랙홀임을 확인했다. 이번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10배 정도로 추정됐다.

지난 2013년 유럽우주국(ESA)이 발사한 가이아 우주망원경 상상도./ESA

이전에도 지구에서 가까운 블랙홀들이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2020년에는 지구에서 1000광년 거리에서 블랙홀이 발견됐지만, 지난 3월 블랙홀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카림 엘 바드리 박사 연구진은 이번 블랙홀은 사상 최단 거리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블랙홀은 빛조차 나오지 못해 직접 관찰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간혹 드물게 발생하는 중력파나 물질 방출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연구진은 2015년 블랙홀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에너지 파장인 중력파를 처음으로 검출해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또 블랙홀이 주변 별을 빨아들일 때 끌려가는 물질들이 방출하는 X선을 포착할 수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연구 기관 20여 곳이 참여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국제공동연구진은 지난 2019년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처음으로 발표해 역시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사건 지평선은 블랙홀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EHT 연구진은 물질들이 사건 지평선을 지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때 일부가 에너지로 방출되는 것을 통해 블랙홀의 윤곽을 확인했다.

EHT 프로젝트가 관측한 M87 중심부 초대형 블랙홀의 그림자. 중심의 검은 부분은 블랙홀(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포함하는 그림자이고, 고리의 빛나는 부분은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빛이다. 관측자로 향하는 부분이 더 밝게 보인다.

주변 행성에선 눈으로 관측할 수도

반면 이번 가이아 BH1은 다른 블랙홀과 충돌하거나 주변 별을 끌어당기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여서 더 관찰이 어려웠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근처 별은 지구와 태양 거리만큼 떨어져 가이아 BH1 블랙홀을 돌고 있다. 블랙홀의 먹이가 되기엔 너무 멀다. 별의 물질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며 방출하는 에너지를 포착하기도 힘들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대신 주변 별이 블랙홀을 공전하는 궤도를 분석해 블랙홀 정도의 중력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이아 BH1 블랙홀이 어떻게 생성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거대한 별이 팽창해 적색거성이 됐다가 중력에 의해 뭉쳐지면서 블랙홀이 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니면 원래 블랙홀이 두 개였다가 하나로 합쳐졌을 수도 있다.

엘-바드리 박사 연구진은 다른 우주망원경으로 가이아 BH1 블랙홀에 대한 추가 관측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까운 궤도에 또 다른 블랙홀이 있는 쌍성 블랙홀인지 여부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또 블랙홀 주변의 별을 공전하는 외계 행성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엘-바드리 박사는 "만약 이 외계 행성에 산다면 블랙홀이 주변 별에서 나오는 입자인 태양풍을 빨아들이면서 목성 정도로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