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볏이 있는 멧닭 수컷이 날아가는 모습. 알프스 스키장에서 리프트 케이블에 부딪혀 죽는 새 중 70%가 멧닭이다./Neil McIntyre

알프스 스키장은 인간에게 더없이 즐거운 곳이지만 새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 지대다. 비행 도중 리프트 케이블을 보지 못하고 충돌해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새들을 구할 방법을 찾아냈다. 색맹(色盲)인 새들의 눈에 보이도록 붉은색 대신 흑백 경고판을 다는 것이다.

벨기에 리에주대 생명과학과의 마조리 리에나르(Marjorie Liénard) 박사 연구진은 "스키장 충돌 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멧닭(학명 Lyrurus tetrix)은 시력이 매우 나쁘고 경고판의 붉은색을 볼 수 없다"고 지난 2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실험생물학 저널'에 발표했다.

◇색 대비 큰 흑백 경고판이 효과

프랑스의 알프스 스키장에서는 지난 60년 동안 새가 스키장 리프트 케이블에 부딪혀 죽는 사고가 600건 가까이 발생했다. 그중 70%를 멧닭이 차지했다. 스키장 측은 새가 케이블을 식별하도록 폭 3.5~15㎝의 경고판을 설치했다. 또 멧닭 수컷의 볏이 붉은색이라는 점에서 경고판도 붉은색으로 만들었다. 동료를 알아보듯 붉은색 경고판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멧닭의 충돌 사고는 계속됐다.

벨기에 연구진은 케이블에 매단 경고판이 멧닭의 시력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고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멧닭이 머리를 돌려 어느 범위까지 볼 수 있는지 시야를 파악했다. 머리의 앞뒤와 좌우 등 모든 각도에서 망막을 촬영했다. 놀랍게도 멧닭은 시야가 353도나 됐다. 새 중 으뜸이다. 머리를 돌려도 볼 수 없는 뒤쪽 7도만 사각지대였다.

하지만 비행 도중 장애물을 감지하는 능력은 인간보다 떨어졌다. 32m 거리에서 식별할 수 있는 최소 물체 크기를 계산했더니 약 3㎝로 나왔다. 같은 거리에서 인간이 식별할 수 있는 것보다 4~5배 더 큰 크기이다. 멧닭에게는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큰 경고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논문 제1 저자인 시몽 포티에(Simon Potier) 박사는 "밝은 대낮에는 3㎝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가로세로 9㎝ 크기의 표지판이라면 충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거리에서 식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새들이 케이블을 향해 날아갈 때 반응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표지판 간격은 16m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4년 11월 8일 미국 워싱턴 D.C.의 유니언 스테이션 근처 건물에 부딪혀 죽은 검은눈멧새./Angel Ruszkiewicz

더 큰 문제는 색각, 즉 색상을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연구진은 충돌 사고로 죽은 멧닭의 눈에서 광수용체 단백질을 추출해 어떤 색에 민감한지 조사했다. 멧닭은 노란색, 녹색, 파란색, 보라색과 자외선 일부까지 볼 수 있지만, 그보다 파장이 긴 붉은색은 잘 구분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케이블에 매다는 경고판은 붉은색을 피하고, 흰색과 검은색 또는 보라색과 노란색처럼 색채 대비가 뚜렷한 색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녹색 숲 배경에 어두운 색의 케이블이나 눈 위의 흰색 표지판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붉은색 볏을 단 멧닭이 붉은색을 보지 못할까. 연구진은 멧닭이 붉은 볏에서 다른 빛을 감지한다고 설명했다. 리에나르 박사는 "볏은 붉은색을 반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도 반사한다"고 말했다.

◇충돌 사고 막는 땡땡이 무늬

충돌 사고로 죽는 새는 도시에도 많다. 새들은 날다가 투명 방음벽이나 빌딩의 유리 외벽에 부딪혀 죽는다. 미국에서는 연간 조류 10억마리가 충돌 사고로 희생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생태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연간 야생 조류 800만마리가 투명 창에 부딪혀 죽는다.

야생 조류 충돌을 막는 5×10 규칙. 새들은 가로 10㎝, 세로 5㎝보다 좁은 공간은 새가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회피한다./기후에너지환경부

과거 투명 창에 독수리나 매 같은 포식성 조류의 스티커를 몇 장 크게 붙여 충돌 사고를 막으려고 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새의 행동과 시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지해 있는 스티커를 포식자로 인식하기보다 단순히 피해가야 할 장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독수리나 매 스티커가 촘촘히 붙어 있지 않다면 작은 새가 부딪힐 곳이 많다는 말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립생태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9년 '야생 조류 투명 창 충돌 저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장 효과적인 충돌 예방법은 이른바 '5×10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새들은 비행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좁은 공간을 통과하려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가로 10㎝, 세로 5㎝보다 좁은 공간은 새가 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회피한다.

그렇다면 작은 점들을 5×10 규칙 간격에 맞게 붙이면 새에게 투명 창 전체가 통과할 수 없는 곳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외 실험에서 점 패턴 스티커를 붙인 유리창에서는 충돌 사고가 90%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지방 자치단체들은 투명 방음벽에 점 패턴 스티커 부착 사업을 하고 있다.

참고 자료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2026), DOI: https://doi.org/10.1242/jeb.250727

Global Ecology and Conservation(2019), DOI: https://doi.org/10.1016/j.gecco.2019.e00795

기후에너지환경부(2019), https://mcee.go.kr/wonju/web/board/read.do?menuId=1032&boardId=969600&boardMasterId=232&condition.hideCat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