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다람쥐 사진을 즐겨 찍던 사진작가 밀코 마르체티는 다람쥐가 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을 포착했다. 언뜻보면 그냥 넘길 평범한 장면이었지만, 촬영 결과를 살펴 본 그는 마치 나무에 박혀 탈출하지 못하는 다람쥐의 모습을 확인했다. 마르체티는 “수년 동안 다람쥐 사진을 찍어왔지만, 이번처럼 재밌고 이상한 자세는 처음”이라며 “지역 사진 동호회에서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많은 이들이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니콘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Comedy Wildlife Photography Awards 2024)은 11일 마르체티가 찍은 사진인 ‘나무에 박힌 다람쥐(Stuck Squirrel)’가 올해 종합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는 9000여장의 작품이 출품돼 역대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우승자는 트로피와 함께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에서 사파리 여행을 할 기회를 부상으로 받는다. 종합 1위를 포함한 파충류, 조류, 어류 등 10개 분야의 수상작도 이날 함께 발표됐다.
◇올 한 해 작품 9000여점 응모, 10개만 엄선해 선발
2015년 영국의 사진작가 폴 조인슨-힉스(Paul Joynson-Hicks)와 톰 설람(Tom Sullam)이 시작한 이 대회는 야생동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시상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목적을 함께 갖고 있다.
사진전은 매년 공동 주최한 영국의 야생동물 보호재단인 휘틀리 자연기금(WFN)에 대회 수익금 일부를 기부했다. 휘틀리 자연기금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80국에서 200가지 이상의 동물보존 활동에 328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했다.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 심사위원은 이번 대회에서 9000여장의 응모작 중 최종 수상작 10점을 선정했다. 스테판 마이어 니콘 마케팅부문 총괄매니저는 “올해 대회는 기록적으로 많은 작품이 출품됐고,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의 힘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무술의 달인 다람쥐와 솔로라 슬픈 올빼미
이번 대회 수상자 중 다른 주목할 작가는 플린 타이타눈데 롭이다. 그는 다람쥐 사진 4장을 출품해 포트폴리오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놀라운 점은 그의 나이가 10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가 촬영한 사진 속 다람쥐는 마치 화려한 봉술을 펼치는 무도인처럼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외에도 25세 이하 젊은 사진작가에게 수여하는 신진 사진가와 16세 이하에 수여하는 주니어 부문은 각각 카메라를 보며 웃음 짓는 개구리와 입맞춤을 하는 올빼미 사진에 수여됐다. ‘웃는 개구리’라는 제목의 신진 사진가 부문 우승작은 젊은 사진 작가라는 의미에 맞게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진을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개구리처럼 웃음이 지어진다. 주니어 부문 우승작은 사이 좋은 커플 옆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올빼미가 시선을 잡아 끈다.
양서류 부문은 SF 영화 속에 등장할 법한 멋진 헬멧을 쓴 개구리 사진이 우승했다. 개구리는 수영을 하기 위해 헬멧을 쓸 필요가 없지만, 사진 속 개구리는 헬멧 덕분에 편안하게 수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류 부문은 잘못된 착지로 바닥에 충돌하는 새 사진이 우승했다. 어류 부문은 먹잇감인 도미에게 쫓기는 흰머리 독수리 사진이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