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영화 ‘라이온 킹’에서 제사장인 원숭이가 바위 위에서 아기 사자 심바를 들고 정글의 미래 왕이라고 선언했다. 현대의 제사장은 과학자이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시베리아의 땅속에 박힌 얼음에서 빙하기의 심바를 끌어 올렸다. 칼날같이 송곳니가 튀어나온 고대 사자인 검치호이다. 코에 달린 수염까지 남아 있어 빙하기 심바의 삶을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러시아 보리사크 고생물학연구소의 알렉세이 블라디미로비치 로파틴(Alexey Vladimirovich Lopatin) 박사 연구진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永久凍土層)에서 얼음에 둘러싸인 채 3만7000년 동안 생전 모습대로 보존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지난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수염과 털, 발톱까지 보존돼
연구진은 앞니의 출현을 근거로 검치호(劍齒虎)인 호모테리움 라티덴스(Homotherium latidens) 검치호의 생후 3주 정도 된 새끼의 사체로 추정했다. 검치호는 칼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밖으로 돌출된 형태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법으로 측정한 결과 생존 시기는 3만5000년에서 3만7000년 전 사이로 확인됐다. 신생대 플라이스토세 후기(12만600년~1만1700년 전)에 속하는 시기다.
멸종된 호모테리움속(屬)의 검치호는 플라이오세(530만~260만 년 전)와 플라이스토세(260만~11,700만 년 전) 초기에 전 세계에 살았지만, 마지막 빙하기라고도 알려진 플라이스토세 말기에 수가 급격히 줄었다. 공룡이 오래전 사라지고 포유류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니, 빙하기의 심바를 찾은 셈이다.
연구진은 “유라시아에서 가장 최근에 발견된 호모테리움은 플라이스토세 중기(77만~126만년 전)에 살았다”며 “이번에 발견된 호모테리움은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살았던 것으로 검치호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빙하기 심바가 나온 곳은 러시아 북동부 사하공화국 바디야리카 강 근처이다. 이곳에서는 얼음 속에서 매머드가 생전 모습 그대로 자주 발견됐다. 고대 포유류가 묻힌 땅이 지금까지 언 채로 남아 부패가 되지 않고 보존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골반, 넓적다리뼈, 정강이뼈도 발견했다.
◇빙하기의 추위에 적응한 상태
심바는 얼음에 머리와 상체가 남아 있었다. 몸 전체는 센티미터(㎝) 두께의 부드러운 갈색 털로 덮여 있으며, 입술에는 아직도 부러진 수염이 있었다. 앞다리는 부드러운 발바닥과 여전히 날카로운 발톱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어린 호모테리움이지만 빙하기 조건에 잘 적응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빙하기 심바의 사체를 오늘날 생후 3주 된 아기 사자와 비교한 결과, 검치호는 발이 더 넓고 발목 관절에서 충격 흡수 역할을 하는 살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적응 덕분에 검치호는 눈에서도 발이 빠지지 않고 쉽게 걸을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또 미라를 덮은 두껍고 부드러운 털은 극지방의 낮은 기온으로부터 생태계 최고 포식자를 보호했다.
몸 형태도 오늘날 사자와 달랐다. 입이 더 크고 귀가 작으며 앞다리가 더 길었다. 특히 목이 두 배나 두껍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앞서 성체 호모테리움의 골격을 연구하면서 몸통이 짧고 팔다리가 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 생후 3주부터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홀로테리윰 검치호의 털 질감과 주둥이의 모양, 근육량 분포까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4-795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