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박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 박쥐가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쥐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없애주고 곤충을 통해 퍼지는 전염병 확산도 막는다. 이로운 박쥐가 사라지면 인간도 피해를 입는다.

미국 시카고대 해리스스쿨(공공정책대학원) 연구진은 “박쥐에게 치명적인 희코증후군이 퍼진 지역에서 유아 사망률이 증가했다”고 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박쥐가 사라지면 해충을 없애려 살충제 사용량이 늘어 아기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흰코증후군에 걸린 박쥐의 모습./Science

흰코증후군은 박쥐에게 치명적인 곰팡이병이다. 흰코증후군을 일으키는 곰팡이(Pseudogymnoascus destructans)는 온도가 낮은 곳을 좋아한다. 겨울잠을 자는 박쥐들이 이 곰팡이에 쉽게 감염된다. 곰팡이에 감연된 박쥐는 코가 하얗게 변해서 흰코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귀여운 명칭과 달리 흰코증후균 곰팡이에 감염된 박쥐는 거의 죽는다. 곰팡이가 퍼진 지역에서는 박쥐가 멸종 상태에 이른다. 흰코증후군은 2006년 북미 지역에 처음 상륙해 미국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퍼졌다. 아직 치료법도 없어 흰코증후군이 퍼진 지역은 박쥐를 찾아보기 힘들다.

연구진은 흰코증후군이 번져서 박쥐가 멸종 상태가 된 미국 동북부 지역을 대상으로 살충제 사용량과 유아 사망률을 조사했다. 흰코증후군이 유입된 지역은 농부들이 살충제 사용을 평균 31.1%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박쥐가 줄어들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 늘어나자 살충제 사용이 덩달아 늘어난 것이다.

연구진은 살충제 사용이 늘면서 해당 지역의 유아 사망률도 평균 7.9% 증가했다고 밝혔다. 연구를 진행한 이알 프랭크(Eyal G. Frank) 교수는 “흰코증후군 확진 사례가 없는 국가와 비교했을 때 살충제 사용량과 유아 사망률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이 있다”며 “흰코증후군이 있는 지역에서는 살충제 사용량이 1% 늘어나면 사고 같은 외적인 요인을 제외한 영아 사망률은 0.25% 증가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생태계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게 결국 인간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프랭크 교수는 박쥐를 위협하는 건 흰코증후군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와 산림 파괴로 박쥐가 살아갈 터전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연구진은 “생물 다양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2030년까지 육지와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야심찬 계획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 https://doi.org/10.1126/science.adg0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