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브루인 영국 엑시터대 교수와 더크 오린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연구원은 지난 1월 논문 공개 사이트 프런티어에 인공위성이 촬영한 해수 분석 영상을 검증하는 데 슈퍼요트(super yacht)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위성이 촬영한 바닷물 영상을 보면 식물성 플랑크톤 분포나 다른 성분의 밀도를 알 수 있는데, 전 세계 현장에서 이를 검증할 때 요트가 유용하게 쓰인다는 내용이다. 슈퍼요트는 엔진이 달려있고 선체 길이가 최소 10m 이상이며 편리한 생활공간과 자쿠지, 엘리베이터 같은 편의시설을 갖춘 럭셔리 선박을 부르는 말이다.

연구진은 두 달 전 타계한 수학자 출신 헤지 투자가인 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 창업자가 제공한 길이 68m짜리 슈퍼요트 ‘아르키메데스호’를 타고 2018년부터 3년간 카리브해에서 남극해까지 주요 바다를 누볐다. 브루인 교수 연구진은 논문에서 “슈퍼요트를 타고 미국의 동부 해안, 카리브해, 북대서양, 영국과 아일랜드의 해안 지역, 지중해, 남태평양, 남극 반도를 포함한 광범위한 샘플 수집이 가능했다”며 “부유한 시민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난제를 해결한 사례”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매체인 블룸버그는 지난 29일(현지 시각) 이들 연구진의 사례를 소개하며 최근 요트를 활용해 수백 건의 과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부의 상징이자 전유물인 요트가 해양 과학 연구자의 발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슈퍼요트인 아르키메데스 선수에 설치한 태양 추적기(선수)와 추적기 옆에 서있는 제임스 사이먼스 창업자의 생전 모습, 태양 추적기 모습. /로버트 브루인

◇부의 상징서 해양 연구선으로 변신

최근 호화 요트의 소유자들과 기후와 해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협력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모나코 요트 클럽과 미국의 탐험가 클럽은 매년 해양 환경 보호와 연구에 기여한 요트 소유자를 격려하는 시상식과 함께 환경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지난 3월 열린 올해 행사에서는 브루인 교수 연구진이 탑승한 아르키메데스호가 ‘과학과 발견상’을 받았다.

개인 요트 소유주에게 요트를 빌려 과학자를 후원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과학을 위한 요트(Yachts for Science)’라는 단체는 호화 요트 소유자들에게 시간 기부를 받고 있다. 요트제작사인 아크센, 넥턴재단, 오션패밀리재단이 이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단체는 올해에만 100만달러에 해당하는 요트 제공 시간 기부를 확보할 계획이다. 2029년까지 연간 1500만달러 상당 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탐험가이자 요트 탐험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롭 맥컬럼 이요스 익스피디션(EYOS Expeditions) 대표는 “요트를 그냥 방치해 두는 것보다 과학과 환경 보존 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도록 활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자신의 24m짜리 tb퍼요트를 소유한 미국의 보험업자 톰 피터슨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최근 10년간 매년 약 15~20일 동안의 시간과 연료를 과학자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미국 롱비치 캘리포니아대의 상어연구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과학자들이 육지에서 1시간 반 떨어진 바다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며칠씩 머물도록 요트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항에 있는 미 해양대기청(NOAA) 레이크유니언 기지. 과학연구 임무를 띤 연구선박 여러 척이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NOAA는 과학자들에게 선박을 활용하도록 시간 배분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과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NOAA

연구자들이 호화 요트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포근한 침대와 자쿠지에 끌려서가 아니다. 연구용 선박의 공급과 연구자의 수요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후 변화의 영향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을 현장으로 실어 나를 배는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 최대 해양 연구기관인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도 연구선과 조사선 15척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국 과학자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연구자들은 매년 NOAA에 1만5000~2만일을 내어 달라고 요구하지만 실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2300일에 머문다.

이런 상황에서 모험적인 요트 소유자들이 과학의 지원자를 자처하고 나서 과학자들을 먼 오지로 실어 나르고 있다. 바다를 건너는 능력이 탁월한 요트를 가진 부자들은 대체로 젊은 편에 속한다. 이들은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와 청정 해역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들은 호화 요트들이 모이는 전통적인 지역인 지중해나 카리브해보다는 과학자와 탐험가들이 선호하는 남극과 북극, 먼 인도양과 태평양의 섬에 더 관심이 많다.

모나코 국왕 알베르2세가 2024년 3월 21일 요트 클럽 모나코에서 열린 YCM 탐험가상 시상식에서 아르키메데스호의 크리스토퍼 월시 선장에게 과학과 발견상을 수여하고 있다. /모나코 요트 클럽

◇탄소 배출 주범, 그린 워싱 논란도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석유 재벌의 친환경 이미지 광고처럼 슈퍼요트 소유주들의 과학연구 지원사업도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그린워싱은 환경친화적이지 않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려고 친환경 경영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국제환경단체 옥스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0%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요트 여행에서 나오는 배출량은 부유층의 전체 배출량에서 1위를 차지한다. 미국 인디애나대 연구진은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억만장자 20명의 탄소발자국 가운데 요트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64%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와 영국 노섬브리아대 연구진은 2019년 미국 남부사회학회 저널에 71m짜리 슈퍼요트 한 척의 연간 탄소 발자국은 자동차 약 200대와 같다고 추정했다. 슈퍼요트타임스에 따르면 바다에는 30m가 넘는 선박인 슈퍼요트가 6000척 있는데 30년 동안 4배 증가했다. 상위 300대 슈퍼요트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28만5000t으로 통가의 국가 전체 배출량보다 많다.

요트의 환경 파괴 문제점을 지적한 책을 낸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그레고리 살레 연구원은 “슈퍼요트가 과학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요트를 타면서 환경을 걱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며 환경을 존중하고 싶다면 서핑을 하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Frontier. Remote Sensing(2024), DOI: https://doi.org/10.3389/frsen.2024.1336494

Sustainability: Science, Practice and Policy(2021), DOI: https://doi.org/10.1080/15487733.2021.1949847

Southern Sociology Society(2019), DOI: https://doi.org/10.1177/2329496519847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