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페리니(Laura Perini) 덴마크 오르후스대 환경과학과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이 그린란드에서 촬영한 검게 물든 빙하./Shunan Feng

북극에서 일반 바이러스보다 125배나 큰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바이러스는 흔히 질병을 일으키는 존재로 알지만, 북극에서 처음 발견된 거대 바이러스는 지구온난화로 사라지는 빙하(氷河)를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라 페리니(Laura Perini) 덴마크 오르후스대 환경과학과 박사후연구원 연구진은 “그린란드 빙상(氷床)에서 발견한 거대 바이러스가 빙하의 녹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지난달 17일 국제 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발표했다.

◇빙하 덮은 조류 죽이는 바이러스

빙상은 그린란드와 남극에서 육지를 덮은 얼음층을 말하며, 여기서 바다로 떨어져 나온 얼음 덩어리는 빙하(氷河)라고 한다. 고지대에서 오랜 세월 눈에 쌓여 생긴 얼음은 따로 산악 빙하라고 한다. 연구진은 그린란드 빙상에서 일반 바이러스보다 125배나 큰 거대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이 바이러스가 빙하에 치명적인 식물성 플랑크톤인 조류(藻類)를 없앤다는 것이다.

조류는 물에서 엽록소로 광합성을 하는 수생 생물이다.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조류가 모두 조류다. 연구진은 그린란드 빙상 표본 67개를 이용해 NCLDV와 조류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나타난 빙상 표본은 조류로 인한 착색 현상이 덜 나타났다. 특히 바이러스는 빙상을 붉게 만드는 홍조류에 효과적으로 감염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래 흰색인 빙하는 햇빛을 80% 반사해 여름에도 덜 녹는다. 하지만 여름에 조류가 번성하면서 빙하가 검은색과 녹색, 붉은색을 띠면 햇빛 반사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 최근 들어 북극뿐 아니라 남극, 알프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의 산악 빙하에서도 조류가 많이 발견돼 빙하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바이러스는 이런 조류를 없애 얼음을 덜 녹게 한다는 것이다.

로라 페리니(Laura Perini) 덴마크 오르후스대 환경과학과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이 그린란드에서 촬영한 검게 물든 빙하./Laura Perini

◇조류 번성 돕는 박테리아도 죽여

연구진이 그린란드 빙상에서 발견한 바이러스는 ‘뉴클레오사이토비리코타(Nucleocytoviricota)’ 문(門)에 속하는 거대 바이러스다. 문은 생물 분류 체계에서 동물과 식물, 세균을 나누는 계 아래의 단계이다. 정확한 명칭은 ‘핵세포질 대형 데옥시리보핵산 바이러스(NCLDV)’다.

이 바이러스의 크기는 2.5㎛(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이다.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2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인 점을 고려하면 125배나 큰 셈이다. 거대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염기가 250만개로, 일반 바이러스보다 12배 이상 많았다. NCLDV가 극지방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5년간 북극 온난화가 1991~2020년보다 3배 이상 심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로라 페리니 오루후스대 박사후연구원은 “바이러스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조류 폭발로 얼음이 녹는 것을 늦출 수 있다”며 “거대 바이러스의 상호작용과 생태계에서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계속해서 관련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빙하와 바이러스와 조류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신시아 실베이라(Cynthia Silveira) 미국 마이애미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진도 지난 4월 미국 미생물학회(ASM) 발간 학술지인 ‘엠시스템즈(mSystems)’에 캐나다 빙하에서 바이러스의 역학 관계를 밝힌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조류 성장을 돕는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Microbiome(2024), DOI: https://doi.org/10.1186/s40168-024-01796-y

mSystems(2024), DOI: https://doi.org/10.1128/msystems.0008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