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205㎜ 이상 폭우가 내린 전남 보성군에서 소방관들이 재해 취약 지역을 순찰하고있다./연합뉴스

어린이날 연휴인 지난 4~6일 전국적으로 큰비가 쏟아졌다. 비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려 봄비가 아닌 장마철을 방불케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어린이날 연휴 폭우는 예고편에 불과하며 올여름 장마에는 기록적인 비가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7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남 광양시와 진도군에는 각각 198.6㎜, 112.8㎜의 비가 내려 역대 5월 하루 최다 강수량을 경신했다. 특히 경남 남해군은 하루 만에 242.1㎜의 비가 쏟아져 역대 두 번째로 많은 5월 강수량을 보였다. 이외에도 전남 완도·순천과 경남 진주에도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지난 2020년부터 5년간 어린이날 즈음에 늘 비가 내렸다. 하지만 올해 어린이날 내린 비는 5월에 보기 힘든 폭우였다. 지난 5일 기록적인 폭우가 들이닥친 전남 광양시의 경우 2020년 5월 하루 최다 강수량은 73.0㎜였다. 진도군도 같은 해 5월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린 날은 83.5㎜에 그쳤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 비가 많이 쏟아진 건 일본 쪽에서 밀고 들어온 북태평양고기압 때문이다. ‘남풍’으로 불리는 북태평양고기압은 수증기 함량이 많은 바람으로, 주로 매년 6~7월 한반도로 올라온다. 남풍이 올라오면 저기압대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형성된다. 이때 대기가 크게 불안정해지고 많은 비를 뿌린다. 올해는 지난달 말부터 북태평양고기압이 올라와 예년보다 빨리 영향력을 미쳤다.

문제는 이번 봄비가 여름철 장마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현재 여름철 강수량이 예년과 같거나 많을 확률을 80% 이상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도 올여름에는 전국적인 장마나 국지성 호우가 강하게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이 강한 폭우를 예상하는 이유는 해수면 온도 때문이다. 최근 기상청이 발간한 ‘2023년 이상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섭씨 17.5도로 최근 10년 중 두 번째로 높다. 해수면 온도가 가장 높았던 해는 섭씨 17.7도를 기록한 2021년이다. 해양에서 방출된 열이 대기 현상에 영향을 주면서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폭우의 가능성도 커진다.

지난 1일 케냐 나이로비에 기록적인 홍수가 내려 차가 침수된 모습. 케냐에선 이번 폭우로 220명 이상이 숨졌다./신화통신 연합뉴스

엘니뇨가 계속 이어지는 점도 불안 요소다.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이나 중태평양의 표층 수온이 평년에 비해 높아지는 현상으로, 보통 2~7년 단위로 발생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엘니뇨 현상이 지난달 멈출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전히 기세를 보이면서 세계 각지에선 대홍수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케냐와 남아메리카 브라질, 남중국에선 최근 폭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앞서 지난달이면 엘니뇨가 수온이 낮아지는 라니냐로 전환되는 중립 상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동아프리카의 폭우나 동남아시아의 가뭄을 봤을 때 아직 엘니뇨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해수면 온도도 고온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기후가 열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해수면 온도가 더 높아지는 여름철에 내릴 폭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특히 좁은 지역에 물 폭탄이 떨어지는 국지성 호우가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국지성 호우가 강하게 나타나면 지난해 7월 무려 3일 만에 500㎜의 비가 쏟아져 14명이 숨진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 내린 폭우에도 마을이 침수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반 센터장은 “통상 섭씨 1도가 올라가면 대기 중 수증기가 7% 늘어나는 것으로 보는데, 현재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굉장히 높다”며 “이번 연휴 내린 비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홍수가 여름철 장마의 전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올 때 많은 양의 비를 쏟아내는 국지적인 호우가 올여름 장마에 자주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