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북서부 저지대에 있는 신파-메테마 1 유적지에서 나온 화살촉. 당시 사람들은 다양한 육상동물을 화살로 잡다가 화산 폭발 후 건조한 기후가 이어지자 물고기 사냥으로 전환했다./미 텍사스대

10만 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가장 최근에 발생한 대규모 이주였다. 과학자들이 당시 대이주가 8000㎞ 떨어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대규모 화산 폭발 이후 건조했던 시기에 일어났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인류는 습한 시기에 숲으로 이어진 '녹색 통로'를 따라 이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반대로 가뭄으로 강이 마르면서 군데군데 발생한 웅덩이를 따라 형성된 '청색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는 것이다.

존 캐플먼(John Kappelman) 미국 텍사스대 인류학과 교수 연구진은 2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에티오피아 북서부의 신파(Shifa) 강 근처에서 발굴된 석기와 동물 유골, 유리 파편은 연대가 인도네시아의 토바 초화산이 폭발했던 약 7만 4000년 전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7만 4000년 전 수마트라섬 토바호에서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화산(超火山) 폭발이 일어났다. 초화산은 일반 화산보다 수천 배나 많은 분출물을 분화시키는 화산이다. 이로 인해 햇빛이 가려지면서 10년 동안 지구 전체가 기온이 내려가는 화산 겨울이 찾아왔다.

아프리카 북서부 에티오피아의 신파-메테마 1 유적지(별표)./네이처

◇인도네시아 화산서 나온 유리 파편 확인

연구진은 에티오피아 북서부의 신파-메테마(Shinfa-Metema) 1 유적지에서 돌을 서로 부딪혀 만든 뗀석기 유물들을 발굴했다. 모두 뾰족한 삼각형 모양으로 화살촉으로 추정됐다. 발굴지에서는 가젤 영양과 멧돼지, 기린 등 육상 동물 뼈 화석도 수천 점 나왔다. 연구진은 신파-메테마 1 유적지에 살았던 사람들은 영양에서 원숭이까지 다양한 육상 동물을 사냥했다고 밝혔다. 또 유적지에서 불을 피운 흔적이 있어 음식도 조리한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화살촉 석기가 나온 퇴적물에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바로 화산 폭발에서 나온 유리 파편이다. 토바 초화산이 폭발하면서 바윗돌, 가스와 함께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화산재 유리 조각인 크립토테프라(cryptotephra)들도 분출됐다.

연구진은 신파-메테파 1 유적지에서 길이가 0.02~0.08㎜인 유리 파편들을 찾았다. 이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수치이다. 크리스토퍼 캄피사노(Christopher Campisano)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는 "유적지에서 크립토테프라를 찾는 것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 파편은 토바 초분화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8000㎞ 이상 떨어진 두 지역이 작은 유리 파편을 통해 이어진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이 지역에 인간이 존재했던 시기는 약 7만 4000년 전인 중석기 시대(약 28만~5만년 전)라고 추정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커티스 마린(Curtis Marean)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는 "토바 초화산의 폭발로 아프리카의 환경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았다"며 "이번 연구의 중요한 성과는 남아프리카 유적지 발굴에서 개발된 크립토테프라 연대 측정 방법을 에티오피아에 적용함으로써 아프리카 전역과 전 세계 유적지를 몇 주 단위의 시간 해상도로 연관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7만 4000년 전 유적지에서 나온 유리 조각. 당시 인도네시아 토바 초화산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져 연대를 알 수 있었다./미 텍사스대

◇건조한 기후에 생긴 웅덩이 따라 이주

당시 인류가 살던 환경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단서는 같이 발굴된 타조 알껍데기와 포유류 이빨 화석이었다. 연구진은 화석의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해 당시 기후가 건조했음을 확인했다. 산소는 질량이 16과 18인 동위원소가 있다. 산소 16을 가진 물은 산소 18이 있는 물보다 가벼워 더 잘 증발한다.

빙하는 과거 증발한 물이 비로 내렸다가 언 것이다. 그 속에 무거운 산소 18 비율이 높으면 과거 지구의 기온이 상대적으로 높아 무거운 산소를 가진 물까지 잘 증발했다고 볼 수 있다. 산소 18 비율이 낮으면 가벼운 산소 16이 들어있는 물만 증발할 정도로 기온이 낮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산소 동위원소로 과거 기후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화살로 무엇을 사냥했을까. 연구진은 건조한 시기 화살로 잡은 사냥감은 물고기라고 설명했다. 신파-메테마 1 유적지에서 나온 동물 뼈를 보면 당시 인류는 다양한 육상 동물을 사냥했다. 하지만 건기가 이어지자 사냥감을 물고기로 바꿨다. 강이 마르면 곳곳에 웅덩이가 생긴다.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는 화살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캐플먼 교수는 "말 그대로 통 안에 물고기가 갇힌 것과 같다"며 "그런 물고기를 잡기는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기에는 한 웅덩이에서 더 잡을 물고기가 없어지면 다시 다른 웅덩이를 찾아 떠난다. 연구진은 이렇게 군데군데 생긴 웅덩이라는 청색 통로를 통해 인류가 이주했다고 추정했다. 지금까지 습한 시기에 숲으로 이어진 녹색 통로를 통해 인류가 이주했다고 생각한 것과 정반대 결과이다.

연구진은 당시 인류가 토바 대분화의 여파에서 살아남는 데 이러한 행동 유연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덕분에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다양한 기후와 서식지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류가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낚시와 같은 새로운 방법도 빨리 찾아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에티오피아 북서부 저지대에 있는 신파-메테마 1 유적지에서 연구원이 발굴하고 있는 모습./미 텍사스대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2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