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고양이는 낮게 가르랑거리며 만족감을 표현한다. 이때 나오는 저주파 소리는 뇌 신호를 받지 않고 성대가 스스로 내는 반사행동으로 밝혀졌다./Adobe Stock

고양이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머리를 긁어주면 기분 좋게 낮은 소리로 가르랑거린다. 창가에서 햇볕을 쬘 때도 같은 소리가 난다. 고양이는 어떻게 가르랑거릴까, 그리고 왜 그런 소리를 낼까. 과학자들이 집사들의 오랜 질문에 답을 제시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 인지생물학과의 테쿰세 피치(Tecumseh Fitch) 교수와 크리스티안 허버스트(Christian Herbst) 박사 연구진은 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소리는 뇌 신호를 받은 후두 근육이 아니라 성대의 자체적인 수축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뇌의 명령 없이 성대 스스로 發聲

사람이나 동물은 목에 있는 후두(喉頭)에서 소리를 낸다. 후두는 속이 빈 관 모양으로, 안쪽에 성대(聲帶)라는 띠 모양의 조직이 있다. 성대가 맞닿으면서 떨리면 소리가 나고, 멀어지면 그 사이로 공기가 통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이 클수록 성대가 길어지고 거기서 나오는 소리의 주파수도 낮아진다. 몸무게가 몇t씩 나가는 코끼리가 멀리 퍼지는 저주파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집고양이는 몸무게가 4~5㎏에 불과하지만 20~30㎐(헤르츠) 대역의 저주파로 가르랑거린다. 물론 고양이도 야옹 하고 울거나 쉿 하며 상대를 위협할 때는 고주파 소리를 낸다. 다른 동물들처럼 뇌에서 온 신호가 성대를 서로 누르기 때문이다. 이러면 후두를 통과하는 공기가 성대를 초당 수백 번 진동시켜 고음이 난다.

과학자들은 작은 집고양이가 어떻게 저주파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여러 가설을 제시했다. 1970년대 과학자들은 고양이가 후두 근육을 초당 30회 정도로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추정했다. 후두 근육의 전기신호를 측정했더니 실제로 그 정도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대학 연구진은 후두 수축 이론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병에 걸려 안락사된 집고양이 8마리에서 후두를 떼어냈다. 이 후두에 공기를 불어 넣었더니 25~30Hz의 소리가 났다. 뇌가 근육을 수축시키지 않아도 저주파 소리가 난 것이다. 연구진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소리는 후두 근육을 의식적으로 수축하지 않고도 성대가 일종의 반사작용으로 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허버스트 박사는 고양이 후두에서 성대에 박혀 있는 특이한 섬유 조직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성대에 섬유 조직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기능은 알 수 없었다. 빈대학 연구진은 섬유질 조직이 성대의 밀도를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이러면 성대가 진동하는 속도가 느려져 고양이가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저주파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20~30Hz의 저주파로 가르랑거리는 소리. 평온한 상태에서 뇌 명령 없이 성대가 무의식적으로 내는 반사행동으로 밝혀졌다./오스트리아 빈대학

◇어미와 유대감 높이고 치료 효과도 가능

고양이는 왜 무의식적으로 가르랑가르랑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호흡처럼 일종의 반사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90%는 긍정적인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졌다. 보호자가 긁어주거나 보호자 무릎에 앉아 햇볕을 쬘 때 그런 소리가 난다.

가르랑거리는 소리는 만족감의 표현이지만, 어릴 때는 생존과 직결된다. 고양이 새끼는 태어난 지 며칠 지나 바로 낮게 가르랑거린다. 새끼 고양이는 이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어미가 보살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어미를 부르다가는 포식자에게 들키기 쉽다. 낮게 가르랑거리는 소리는 천적에게 들키지 않고 어미에게만 자신을 알리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새끼가 낮은 소리를 내면, 어미가 이를 확인하고 다시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어미와 새끼만 아는 신호인 셈이다. 새끼를 어미 젖을 빨면서도 가르랑거린다. 과학자들은 이 소리를 통해 어미와 새끼 고양이 사이의 유대감이 높아진다고 본다.

가르랑거리는 것은 대부분 반사적 행동이지만, 일부는 의도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영국 서섹스대 연구진은 지난 2009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고양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르랑거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고양이가 보호자에게 먹이를 달라고 하거나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재촉할 때도 저주파 소리를 낸다고 밝혔다. 이때는 아이가 우는 소리와 비슷한 고음도 섞여 있었다. 고양이는 이 소리로 인간의 양육 본능을 자극해 원하는 바를 얻는다고 볼 수 있다.

다쳐서 동물병원에 갈 때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과학자들은 이때 저주파 소리는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지난 2001년 미국 음향학회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고양이가 가르랑거릴 때 나오는 20~150Hz의 소리는 뼈 성장을 촉진하고 근육통을 치료할 때 사용하는 주파수와 비슷하다.

미국 일리노이대는 고양이가 내는 저주파가 실제로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지난 2014년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 고양이 소리와 같은 저강도 진동이 당뇨병에 걸린 쥐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정확한 치료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학자들은 진동이 상처 부위 주변의 결합 조직과 미세 혈관의 성장을 촉진했다고 밝혔다. 이래저래 고양이는 신비한 반려동물이다.

참고 자료

Current Biology(2023),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9.014

PLoS One(2014),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91355

Current Biology(2009), DOI: https://doi.org/10.1016/j.cub.2009.05.033

The Journal of the Acoustical Society of America(2001), DOI: https://doi.org/10.1121/1.4777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