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의 둥지. 오른쪽 아래의 알은 아프리카뻐꾸기가 몰래 낳고 간 것이다./남아공 케이프타운대

둥지에 놓인 알 중 하나는 주인이 다르다. 사람 육안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지만, 둥지의 주인은 어김없이 잡아낸다. 지문(指紋)처럼 알에 자신만 아는 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의 클레어 스포티스우드(Claire Spottiswoode) 교수 연구진은 26일 국제 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아프리카 잠비아에 사는 새는 뻐꾸기가 둥지에 몰래 낳고 간 알을 표면의 무늬로 식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새 둥지 차지하는 뻐꾸기

뻐꾸기는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 그러고는 원래 있던 알 하나를 둥지 밖으로 던진다. 둥지 주인은 개수가 변하지 않아 모두 자기 알이라고 생각하고 품는다. 나중에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는 남은 알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어미 새는 자기 알을 모두 잃은 것도 모르고 뻐꾸기 새끼를 대신 키우는 탁란(托卵)을 한다.

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학명 Dicrurus adsimilis)도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새이다. 하지만 다른 새처럼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은 알에 있는 무늬를 지문처럼 인식해 아프리카뻐꾸기(Cuculus gularis)가 둥지에 몰래 낳고 간 알을 94% 정확도로 골라낸다고 밝혔다.

알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 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왼쪽)과 아프리카뻐꾸기. 갈래꼬리순금은 자기 둥지에 몰래 낳은 뻐꾸기 알을 94% 정확도로 찾아내는 것으로 밝혀졌다./위키미디어

숲에서는 알을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새들은 남의 알을 대신 키우는 탁란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알에 고유한 무늬를 만든다.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새도 둥지 주인의 알과 비슷한 무늬를 진화시킨다. 위조와 식별 기술이 창과 방패처럼 싸운다.

케이프타운대 연구진은 잠비아 남부의 숲에 있는 갈래꼬리순금 둥지에서 알 192개를 수집했다. 그중 26개는 뻐꾸기가 낳은 알이었다. 두 새의 알은 색깔이나 무늬, 크기, 모양이 흡사해 컴퓨터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으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컴퓨터보다 정확하게 알 가려내

연구진은 갈래꼬리순금이 자신의 알과 가짜 알을 얼마나 잘 가려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둥지의 알을 바꿔치기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의도적으로 비슷한 모양의 알을 골라 바꿨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암컷 갈래꼬리순금은 바꿔치기한 알 114개 중 76개를 거부했다. 탁란 성공률이 33%에 불과한 것이다.

연구진은 갈래꼬리순금이 거부한 뻐꾸기 알과 모르고 입양한 뻐꾸기 알의 특징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갈래꼬리순금은 다른 새의 알을 인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색상과 패턴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알에 지문처럼 무늬를 넣는 것이다.

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의 둥지에 몰래 들어온 아프리카뻐꾸기의 알. 각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뻐꾸기 알이다./남아공 케이프타운대

이 정보를 토대로 실제 환경에서 갈래꼬리순금이 뻐꾸기 알을 얼마나 잘 가려낼 수 있는 예측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1000번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 컴퓨터 모델은 갈래꼬리순금 둥지에 낳은 뻐꾸기 알 중 6.3%만 탁란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제1 저자인 제스 룬드(Jess Lund) 연구원은 "이번 예측이 정확하다면 아프리카뻐꾸기가 평생 낳는 알 개수를 생각할 때 단 두 마리만 살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갈래꼬리순금의 알은 무늬가 없는 것부터 얼룩덜룩하고 붉은 점이 있는 등 모양이 매우 다양하다. 연구진은 암컷은 이처럼 알에 고유한 형태의 무늬를 넣어 사기꾼을 식별한다고 추정했다. 뻐꾸기 알 또한 같은 방식으로 무늬가 다양하다. 경찰에 맞서 도둑도 위조 기술을 발전시킨 셈이다.

문제는 뻐꾸기가 무늬가 같은 알이 있는 둥지를 골라 알을 낳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진은 "뻐꾸기가 몰래 알을 낳을 둥지를 알 무늬로 고르기보다 무작위로 선택하는 것 같다"며 "변수가 많으므로 알의 무늬가 일치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갈래꼬리순금이 뻐꾸기의 알 사기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것은 어쩌면 그 역시 타고난 사기꾼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프리카갈래꼬리순금은 천적이 오면 경고음을 낸다. 이 소리를 듣고 다른 새도 먹이를 잡다가 도망간다. 갈래꼬리순금은 종종 천적이 없어도 경고음을 내고, 새들이 도망간 사이 잡아둔 먹이를 가로채는 '절취기생(Kleptoparasitism)'을 한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알들. 새들은 비행 능력에 따라 알 모양을 달리하며, 천적을 피하거나 동료에게 식별되도록 색을 결정한다./Western Foundation of Vertebrate Zoology, Los Angeles, California.

◇비행 능력 따라 알 모양 결정

과학자들은 새들의 알이 다양한 모양과 색, 무늬를 가진 이유를 추적해왔다. 지난 2017년 미국 프린스턴대의 매리 캐스웰 스토다드(Mary Caswell Stoddard) 교수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조류의 알 모양은 어미의 비행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혔다. 바다오리처럼 비행 능력이 뛰어난 새일수록 길쭉한 알을 낳고 비행을 안 할수록 타조처럼 구형에 가까운 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스토다드 교수는 "비행 능력이 필요한 새는 유선형 몸이 필요해 골반이 좁아진다"며 "이런 새는 길쭉한 알을 낳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척추동물박물관이 지난 100년간 수집한 조류의 알 4만9175점을 분석했다. 종수로 따지면 1400여 종으로 조류 전체 종의 14%에 해당한다. 날지 못하는 새 중 길쭉한 알을 낳는 경우는 펭귄밖에 없었지만, 펭귄 역시 바다에서 헤엄치는 데 유선형 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구 결과와 일치했다.

알의 색을 두고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독일 본대학의 마르틴 샌더(Martin Sander) 교수는 2017년 오늘날 새의 알에 들어있는 색소(色素)가 공룡 알에도 있음을 밝혀냈다. 바로 파란색과 녹색을 내는 빌리베르딘과 적갈색을 내는 프로토포르피린이다. 오늘날 조류의 알은 모두 이 두 색소를 다른 비율로 섞어 다양한 색을 낸다.

샌더 교수는 공룡이나 오늘날 새 모두 같은 목적으로 알의 색이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인 오비랍토르는 오늘날 물가에 사는 새처럼 땅에 둥지를 짓고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숲에서 알이 흰색이면 천적의 눈에 띄기 쉽다. 즉 파란색은 위장색이었다는 말이다. 물가에 사는 새들이 자갈과 비슷한 색의 알을 낳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대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무 속이나 돌 틈에 둥지를 짓는 딱따구리, 올빼미는 알이 하얗다. 흰 알은 어두운 둥지에서 잘 보이는 장점도 있다.

일부러 드러내기 위한 색도 있다. 검은도요타조는 광택이 나는 청록색 알을 낳는다. 과학자들은 도요타조의 선명한 알 색은 다른 동료의 산란을 촉진한다고 본다. 그래야 천적의 공격을 받아도 살아남는 알이 있다는 것이다. 또 밝은 색 알은 암수가 번갈아 품지 않으면 천적 눈에 잘 띈다는 점에서 암컷이 수컷의 부양 의무를 강제하는 역할도 한다는 주장도 있다.

참고자료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2023), DOI: https://doi.org/10.1098/rspb.2023.1125

Science(2017),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j1945

PeerJ(2017), DOI: https://doi.org/10.7717/peerj.3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