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한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향신료들. 동남아시아의 카레에 들어가는 향신료는 유럽인들이 남아시아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퍼뜨린 것이 아니라 2000년 전부터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Pixabay

올여름 베트남으로 휴가를 간다면 카레 요리를 꼭 맛볼 이유가 생겼다. 베트남 카레가 근대 유럽인들을 따라 인도에서 들어온 식민지의 잔재가 아니라 무려 2000년 전부터 있었던 고대 해상 무역의 유산이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호주 국립대의 샤오춘 훙(Hsiao-chun Hung) 박사와 베트남 남부사회과학연구소의 칸 쭝 키엔 응우옌(Khanh Trung Kien Nguyen) 박사 연구진은 지난 2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베트남 남부 옥에오(Óc Eo)에서 나온 모루 모양의 석기는 2000년 전 수입산 카레 재료를 갈 때 사용한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석기 표면에서 8가지 향신료 성분 확인

옥에오는 1세기부터 7세기까지 있었던 푸난(Funan) 왕국의 주요 항구였던 곳으로,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 남서쪽에 있다. 1940년대부터 이곳이 한때 지중해까지 연결된 고대 무역로의 교차로 있었음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이 발굴됐다. 이번 연구진은 지난 2018년 옥에오에서 발굴된 길이 76㎝, 폭 31㎝ 석기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옥에오의 석기가 오늘날 향신료를 가는 도구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밝혔다. 인도 고대 유적에서도 비슷한 석기가 출토됐다. 현미경으로 석기 표면을 관찰해보니 717가지 식물 성분이 나왔다. 연구진은 오늘날 식물 시료 200여종과 비교해 석기에서 곡물의 전분, 꽃가루와 함께 강황과 생강, 정향, 계피, 육두구, 모래 생강, 핑거루트, 갈랑갈 등 8가지 향신료를 확인했다. 연구진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석기에서 여전히 육두구 향이 났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베트남 남부 옥에오에서 출토된 길이 76㎝, 폭 31㎝ 석기. 2000년 전 향신료를 갈던 요리 도구로 추정됐다. 표면에서는 아직도 향신료의 일종인 육두구 향이 났다./Khanh Trung Kien Nguyen

이번 석기에서 나온 정향과 육두구 등 향신료 대부분은 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동부의 토착 향신료이다. 연구진은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온 상인들이 베트남에 향신료를 가져왔고, 현지에서 재배하면서 널리 퍼졌다고 추정했다. 호주 국립대의 피터 벨우드(Peter Bellwood)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역사학자들이 남아시아와 푸난 왕국 사이에 초기 무역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의심해왔다"며 "옥에오에서 발견된 유물은 이런 주장을 새로운 차원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석기가 지금까지 식물 성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진흙에 묻힌 탓에 산소나 물, 미생물로부터 보호됐기 때문이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샤오춘 홍 박사는 "베트남 남부의 습한 기후가 유물의 훼손을 막는 데 도움을 줬다"며 "진흙탕에서 씨앗을 처음 발견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신선해 2000년 전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남아 카레는 고대 해상 무역의 유산

옥에오 석기에서 나온 향신료들은 지금도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카레 요리에 쓰이고 있다. 유럽인들이 18세기부터 남아시아를 식민지로 개척하면서 향신료 요리를 카레라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지역마다 다른 카레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것이다.

향신료는 육지에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과 중국으로 퍼졌지만, 바다에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하는 두 가지 경로를 거쳤다. 우선 인도에서 서쪽으로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로 퍼졌고 반대편으로는 동남아시아 해안을 거쳐 동아시아까지 전달됐다. 인도네시아산 향신료도 섬들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로 펴졌다.

향신료는 육지에서는 실크로드를 따라 퍼졌지만(주황색), 바다에서는 인도(파란색)와 인도네시아(자주색)에서 시작하는 두 가지 해상 무역 경로를 거쳤다. 2000년 전 베트남 푸난 왕국(점선)은 두 해상 무역로의 교차로에 있었다./Science Advances

베트남은 두 고대 해상 무역로의 교차로에 있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사이의 해상 무역로는 3000여년 전에 개설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육두구와 정향과 같은 향신료가, 남아시아에서는 강황과 계피와 같은 다른 향신료가 들어왔다. 연구진은 고대 베트남인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향신료에 현지 재료를 추가하면서 독특한 요리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여러 생강 품종들은 지금도 태국을 포함해 동남아시아 각지의 요리에 많이 쓰이지만, 인도의 비슷한 요리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연구진은 또 석기에서 코코넛의 흔적도 발견했다. 이는 옥에오에서 사용된 향신료가 현대 동남아시아 카레의 특징인 코코넛 밀크로 걸쭉하게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자료

Science Advances,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h5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