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논문 한 편이 공개됐다. 포항공대(포스텍)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와 김연희 연구교수가 참여한 공동 연구진은 10년 뒤 쯤에는 9월이면 북극의 해빙(海氷)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북극 해빙은 여름에는 면적이 줄었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늘어난다. 면적이 가장 작아지는 건 9월인데, 2030년대에는 9월이 되면 아예 해빙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예상한 것보다 10년은 빠른 속도다. 그만큼 지구 온난화와 이로 인한 기후 위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지구 온난화를 늦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20일부터 23일까지 강릉 분원에서 제17회 아슬라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아슬라 심포지엄은 신라시대 강릉 지역의 이름인 '아슬라'를 본 딴 것으로 해외 유명 학자를 초청해 도전적인 과학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다. 이번 포럼에는 조선비즈가 공식 미디어 후원사로 참여했다.
◇온난화 막기 위한 발상의 전환
이번 아슬라 심포지엄의 주제는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다. 이번 아슬라 심포지엄에는 지구공학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미국 워싱턴대의 로버트 우드(Robert Wood) 교수를 비롯해 오스트리아와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이 참석했다. 지구공학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에 맞설 비장의 무기, 혹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른 시도들이 실패했을 때 인류가 쓸 수 있는 '플랜B'로 이야기한다. 도대체 지구공학이 뭐길래 '플랜B'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사실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전 세계는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IPCC가 최근 발표한 6차 보고서에서는 평균기온 상승 폭이 1.14도까지 올라왔다. '1.5도'라는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산업화 이후 인류가 배출한 누적 탄소배출량은 2160~2650Gt에 달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지키기 위한 잔여 탄소 배출 허용량은 500Gt에 불과하다. 2019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9±6.6Gt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10년 안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으면 1.5도라는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인류는 고장난 지구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가뭄은 더 깊어지고 폭염과 폭우는 더 길어질 것이다. 산불은 더 자주 발생하고 태풍과 토네이도는 더 크고 강해질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게 지구 온난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전 세계 경제와 산업 활동의 근간을 바꿔야 하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나온 게 과학기술로 기후를 조절해 온난화를 늦추는 방법이다. 이른바 지구공학이다.
지구공학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클라우스 라크너 교수는 뉴요커의 엘리자베스 콜버트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배출을 나쁘게 보고 윤리적인 측면에 호소하는 전략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면 오수가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화장실에 가는 걸 나무랄 수는 없듯이 탄소 배출도 같은 방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배출을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화산폭발에서 아이디어 얻어
라크너는 나무처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라크너의 인공 나무 하나는 1년에 이산화탄소 365t을 제거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없다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자는 게 라크너의 아이디어다. 이른바 '역배출'로 불리는 그의 아이디어는 IPCC를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핵심 기술로 주목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말 그대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기 중에 배출된 온실가스가 쌓이면서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게 그동안 인류가 매달려온 해결책이었다. 지구공학은 아예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지구를 데우는 태양빛을 반사시키자는 것이다. 뜨거운 한낮의 여름에 양산을 쓰면 시원해지듯이 지구에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양산을 두르자는 이야기다.
지구공학이라는 표현이 자연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의 야욕처럼 들리지만, 사실 지구공학의 아이디어는 자연에서 나왔다. 1991년 6월 필리핀 루손 섬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다. 지진의 진도처럼 화산 폭발의 강도를 의미하는 화산폭발등급(VEI)이 6에 달할 정도로 큰 폭발이었다. 당시 2000만t에 달하는 이산화황이 대기 중에 분출됐다. 이산화황이 성층권까지 올라가 하늘을 가리면서 지구 표면에 들어오는 태양빛이 10%나 줄었다. 당시 지구 북반구의 평균 기운이 0.5~0.6도 떨어졌고 이런 효과는 3년이나 지속됐다.
그보다 더 전에는 1815년 4월에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에서 탐보라 화산이 폭발한 적이 있다. VEI가 7에 달하는 큰 폭발이었다. 이 때도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이 대기 중에 분출됐고, 지구 북반구의 하늘을 가렸다. 미국과 유럽은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고 사람들은 농작물이 냉해를 입으면서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구름 밝게 해 빛 반사 증가시켜
화산 폭발은 끔찍한 재난이지만, 과학자들은 여기서 지구 온난화에 맞설 새로운 무기를 착안했다. 화산 폭발로 성층권까지 올라간 이산화황은 황산으로 산화되는데 이 황산 분자가 몇 년 동안 성층권에 머무르면서 태양빛을 우주로 돌려보낸 것이다. 화산이 한 일이라면 인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성층권에 인위적으로 이산화황을 뿌려서 태양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오존층 파괴와 관련된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2006년 논문에서 이산화황을 성층권에 살포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방법은 다양하다. 우주에 반사경을 설치해 태양빛을 직접 반사하는 방법도 있고, 해양에서 구름핵을 분사해 구름 입자 크기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구름 입자 크기가 줄면 햇빛의 반사율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미국 워싱턴대의 로버트 우드 교수는 해염 입자를 공중에 뿌려서 구름을 더 밝게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해염 입자는 바닷물 중에 수분이 증발해 염분이나 금속만 남은 미세한 입자를 말한다. 해염 입자가 바람에 의해 확산되면 구름을 생선하는 구름 핵이 된다. 일반적인 구름은 구름을 구성하는 입자가 크고 수가 적어서 햇빛의 반사율도 낮다. 인위적으로 구름 핵을 만들어 분사하면 구름 입자가 작고 수가 늘어나면서 햇빛 반사율이 늘어난다.
로버트 우드 교수는 "일반적으로 태양으로부터 복사된 빛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면 구름은 약 30%를 반사한다"며 "이 반사율을 1~2%만 높일 수 있어도 지구의 온도가 그만큼 낮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름 핵을 분사하기 위한 노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염 입자를 분사하기 위해서는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로 분사가 가능해야 하는데, 워싱턴대 연구팀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 로버트 우드는 "입자의 크기를 줄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고고도의 권운(卷雲)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고고도의 권운을 줄이면 지구 표면에서 반사된 태양 복사열이 구름에 갇히지 않고 우주로 더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 기상및지구물리학과의 블라즈 가스파리니(Blaz Gasparini) 교수는 "권운은 고도가 높고 추운 온도에서 얼음 결정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많은 햇빛을 흡수하고 기후를 따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며 "권운을 얇게 만들면 온난화 효과를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권운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먼지 같은 미세 입자를 권운에 넣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먼지 입자가 권운에 들어가면 권운에서 생성되는 얼음 결정이 작아지면서 구름의 수명이 줄어드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는 "먼지가 들어간 '이질적인 구름'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균질환 구름보다 온난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1.5배 정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먼지 에어로졸을 분사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나 드론이 7~10㎞ 고도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광합성 악영향, 생태계 혼란 우려도
지구공학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플랜B로 떠오르고 있지만 비판도 적지 않다. 지구 기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부작용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층권에 이산화황을 분사하는 아이디어만 해도 산성비를 초래해 오히려 생태계를 망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구름으로 햇빛을 반사시킨다는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햇빛 반사율이 높아지면 오히려 계절풍이 약화돼 가뭄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당장 식물의 광합성에 악영향을 끼쳐 농업 생산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
지구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신중한 입장이다. 로버트 우드 교수는 "성층권에 에어로졸 입자를 분사하더라도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올 지 계속해서 실험을 통해 과학적인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스파리니 교수도 "권운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은 이론적인 개념일 뿐이라 실제로 효과가 있을 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지구공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 과학자들은 언젠가 정치인들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필요한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슬라 심포지엄을 준비한 염성수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를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