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고통을 안긴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이 일찍 생(生)을 마감할 뿐 아니라, 그 모습을 보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고통의 기억을 평생 지우지 못한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말이 사실로 확인됐다. 몸길이가 수 ㎜에 불과한 초파리도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면 수명이 줄었다.
과학자들은 죽음을 인식한 동물의 행동과 신체 변화를 통해 인간이 전쟁과 전염병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꿀벌은 동료의 사체를 신속하게 치워 다른 피해를 막고, 까마귀는 장례식을 열 듯 사체 주위에 모여 죽음을 피할 지혜를 모은다.
◇죽은 동료 보면 초파리 수명 30% 단축
미국 미시건대 의대의 스콧 플레처(Scott Pletcher) 교수와 크리스트 겐드론(Christ Gendron) 교수 연구진은 지난 14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초파리를 죽은 동료 사이에서 키우면 노화가 빨라져 수명이 30% 가까이 단축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배양 용기에 초파리를 넣고 키웠다. 용기에는 살아있는 초파리와 먹이를 넣었지만, 갓 죽은 초파리가 들어있는 용기도 일부 있었다. 실험 결과 일반 초파리는 60일 이상 생존했지만, 사체에 48시간 이상 노출됐던 초파리는 생존 기간이 45일에 그쳤다.
연구진은 초파리의 뇌가 동료의 죽음을 인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신경세포가 작동하면 형광을 내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사체에 노출된 초파리는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뇌 타원체에서 R2와 R4라는 신경세포가 작동했다. 건강한 초파리도 같은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동료의 죽음을 보지 않았어도 수명이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문제의 신경세포가 인슐린 관련 신호에 영향을 줘 수명을 단축한다고 설명했다. 인슐린 관련 생체 경로는 인간을 포함해 여러 종의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겐드론 교수는 “초파리의 신경세포가 20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놀라운 결과”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초파리는 왜 죽은 동료에 반응한 것일까. 플레처 교수는 “동물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의 위험을 감지해야 한다”며 “동료의 죽음에서 위험을 감지하면 거기서 벗어나기 전까지 불안감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죽은 파리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면 수명이 단축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초파리 실험 결과를 그보다 400배나 오래 사는 인간에게 바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연구가 발전하면 군인이나 의료진처럼 일상적으로 죽음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를테면 초파리의 다른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수명이 늘었다.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로 사람의 같은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죽음을 목격한 사람의 고통을 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동물과 사람에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 인식해
동료의 죽음을 인식하는 동물은 초파리 외에도 많다. 코끼리는 동료가 죽으면 주위에 둘러 서서 코로 쓰다듬으며 위로를 한다. 흙과 나뭇잎으로 무덤도 만들어 준다. 원숭이나 돌고래는 죽은 새끼를 계속 들고 다니거나 물에 빠지지 않도록 밀어 올리는 행동을 보인다. 까마귀는 장례식을 하듯 죽은 동료를 둘러싸고 20~30분 울어 댄다. 추모 대신 바로 등을 지는 동물도 있다. 꿀벌은 동료가 죽으면 즉시 집 밖에 내다 버린다.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동료의 죽음에 대응하는 다양한 행동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화했다고 해석한다. 일례로 미국 워싱턴대의 존 마즐러프(John Marzluff) 교수는 지난 2015년 국제 학술지 ‘동물 행동’에 “까마귀 장례식은 동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위험 요소를 살피고 공부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까마귀들이 사는 곳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이 박제 까마귀를 들거나 매가 앉은 곳 가까이 선 경우, 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박제 까마귀를 잡은 매 가까이 있는 경우 세 가지 상황을 제시했다. 까마귀들은 박제 까마귀를 죽은 동료로 보고, 박제를 잡은 매 옆에 있었던 사람에게 가장 많이 적대감을 보였다. 까마귀가 죽은 동료의 곁에 있었던 동물이나 사람을 위험 요인으로 기억한다는 말이다. 장례식은 그런 정보를 학습하는 기회가 된다.
죽은 새끼를 몇 달씩 품고 다니는 원숭이도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으로 해석됐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지난 2021년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영장류 어미가 죽은 새끼를 안고 다니는 것은 사별로 인한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간 산모가 사산한 아기를 안아보는 기회를 가지면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적다고 알려졌다. 원숭이는 사산 경험이 적은 젊은 어미일수록 죽은 새끼와 떨어지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꿀벌은 추모 대신 죽은 동료와 빨리 이별하는 능력을 발달시켜 잠재적 위험 요인을 제거한다. 중국 과학원 연구진은 지난 2020년 꿀벌이 체온이 낮은 동료를 사체로 간주하고 바로 집 밖에 버린다고 발표했다.
죽어서 체온이 떨어지면 외골격에 있는 페로몬이 공기로 덜 방출된다. 페로몬은 꿀벌에게 일종의 출입증 같은 화학물질이다. 장의사 꿀벌은 페로몬이 덜 방출되면 죽어 체온이 떨어진 것으로 판단해 내다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죽은 꿀벌이라도 가열해 체온을 높이면 장의사 꿀벌이 그대로 뒀다. 반대로 페로몬이 나오는 표면을 닦아내고 가열하면 장의사 꿀벌이 30분 안에 90%를 집 밖으로 버렸다. 체온이 높아도 페로몬이 없으면 사체로 본 것이다.
동물은 동료의 죽음 앞에 넋 놓고 있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장례를 치르듯 슬퍼하는 것도, 냉정하게 바로 내다 버리는 것도 집단을 위한 행동이다. 자연은 이처럼 가족을 잃은 슬픔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남은 사람은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 알려준다.
참고자료
PLoS Biology(2023),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bio.3002149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2019), DOI: https://doi.org/10.1098/rspb.2021.0590
bioRxiv(2020), DOI: https://doi.org/10.1101/2020.03.05.978262
Animal Behaviour(2015), DOI: https://doi.org/10.1016/j.anbehav.2015.08.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