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은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라고 노래했다. 집 나가면 누구나 개고생이다. 노래 제목이 ‘달팽이’라고 하면 누구나 수긍한다. 달팽이에 비하면 스포츠카와 같은 개미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태양이 작열하는 소금사막에서 길을 나서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까.
개미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총동원한다.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보고 방향을 잡고, 걸어온 발걸음을 세기도 한다. 냄새도 맡는다. 독일 과학자들이 사막개미의 최신형 내비게이션을 찾아냈다. 주변에 이정표로 삼을 것 하나 없는 사막에서 멀리서도 보이라고 집 앞에 빌딩을 세우는 것이다.
독일 막스 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마르쿠스 크나덴(Markus Knaden) 박사 연구진은 지난 1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튀니지 소금사막에 사는 개미(학명 Cataglyphis fortis)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둥지 입구에 최대 40㎝ 높이의 언덕을 만든다”고 밝혔다. 개미 몸길이가 9㎜이니, 170㎝ 키의 사람으로 치면 75m 높이의 25층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것과 같다.
◇집 앞에 세운 언덕 보고 길 찾아
개미가 소금사막에서 먹이를 찾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막개미는 먹이를 찾아 2㎞까지 이동하는데, 20%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사막개미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태양을 보고 방향을 잡고, 자신의 걸음 수도 기억한다. 시각과 후각도 총동원한다. 하지만 주변에 눈에 띄는 지형지물 하나 없는 사막에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막스 플랑크 연구진은 소금사막에 있는 개미집 입구에는 늘 커다란 언덕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멀리서도 보이는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해변의 개미집 입구는 그보다 낮았다.
연구진은 소금사막과 해변의 개미집 입구에 있는 언덕을 없애고 그곳에 살던 개미를 약간 떨어진 곳에 놓았다. 소금사막에 사는 개미는 해변에 사는 개미보다 집을 찾는 데 더 어려움을 겪었다. 연구진은 해변에 사는 개미는 해안선을 길잡이로 사용하기 때문에 언덕 제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음에는 소금사막 개미집에 인공 이정표를 세워 개미가 언덕을 길잡이로 쓰는지 검증했다. 연구진은 소금사막의 개미집 16곳에서 언덕을 제거하고 절반은 50㎝ 높이의 검은색 원통 2개를 설치했다. 나머지 8곳은 그대로 뒀다. 3일 뒤 개미집을 찾았더니 원통을 설치하지 않았던 개미집 중 7곳에서 언덕이 새로 세워져 있었다. 원통을 세워둔 개미집에서는 두 곳에만 언덕이 생겼다.
개미들은 각자 맡은 일이 확실하다. 먹이를 구하러 집을 나서는 개미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쪽이다. 그보다 어린 개미는 집을 짓는다. 언덕을 세우는 것도 이들이다. 개미집 앞의 언덕을 없애면 집으로 돌아오는 개미 수가 줄었고, 집에 있던 어린 개미들이 언덕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만보계, 카메라, 편광 센서도 활용
개미는 동료가 이정표로 남겨둔 화학물질인 페로몬을 따라 길을 잡는다. 사막은 기온이 높아 페로몬이 쉽게 휘발한다. 그래도 사막개미는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뒷걸음질로 가도 집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찾는다. 개미는 작은 먹이는 물고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지만 큰 먹이는 뒤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사막개미의 숨겨진 위성항법장치(GPS)는 먼저 만보계가 있었다. 개미는 집을 나와 먹잇감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서 발걸음 수를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덕분에 먹잇감까지 여러 방향으로 돌아서 갔어도 집으로 올 때는 가장 빠른 직선 경로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한번 먹잇감을 끌고 왔던 개미는 실험 조건에서도 주저 없이 직선 경로로 집에 갔다.
독일 울름대 연구진은 2006년 사이언스에 개미가 먹이를 찾은 순간 다리에 초소형 죽마를 단 실험을 통해 내장 만보계의 능력을 역으로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죽마를 탄 개미는 올 때와 똑같은 걸음 수로 돌아가지만, 죽마로 보폭이 커진 탓에 모두 집을 지나쳤다. 개미들은 올 때보다 평균 50% 더 멀리 갔다.
프랑스 폴 사바티에 대학 연구진은 지난 2020년 국제 학술지 ‘동물 행동’에 사막개미가 거꾸로 가도 주변 풍경을 기억해 집을 찾는다고 발표했다. 사막개미는 먹이를 끌고 거꾸로 가다가 가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프랑스 연구진은 개미가 가는 길에 본 풍경을 스냅 사진처럼 기억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정표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실험에서 평소 개미는 6m 가다가 서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인공물로 풍경을 낯설게 만들면 3.2m마다 멈춰 풍경을 살폈다.
좀 더 정교한 내비게이션으로는 편광(偏光) 감지계가 있다. 태양광에는 파장이 다양한 빛이 섞여 있어 전기장이 사방으로 진동한다. 하지만 태양광이 대기에 부딪히면 전기장이 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편광 현상이 발생한다. 편광 형태는 태양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개미의 겹눈을 이루는 수많은 홑눈은 이런 편광을 감지해 태양 위치를 이정표로 삼는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개미의 겹눈 일부를 페인트로 가리는 실험을 통해 편광이 길잡이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재난 현장의 수색 로봇에 활용 가능
개미의 길잡이 능력은 신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 오지(奧地)나 재난 현장, 또는 행성 탐사처럼 위성 신호를 제대로 수신하기 어려운 곳에서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2019년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대학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사막개미의 길잡이 능력을 모방한 로봇 ‘앤트봇’을 발표했다.
앤트봇은 개미처럼 햇빛의 편광을 감지하는 카메라와 필터, 만보계, 속도계를 장착했다. 로봇은 편광 카메라로 태양 위치를 감지하고 만보계로 걸음 수를 계산해 길을 잡았다. 놀랍게도 정확도가 최대 14m당 1㎝ 오차로 GPS보다 월등했다.
영국 서섹스대는 개미가 풍경을 기억해 길을 잡는 원리를 로봇에 응용했다. 연구진은 기계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해 로봇이 오가는 길에 본 풍경 사진을 대조해 길을 찾도록 했다. 이제 집에 가는 길이 힘들어질 때 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개미가 작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Current Biology(2023),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5.019
Animal Behaviour(2020), DOI: https://doi.org/10.1016/j.anbehav.2020.04.006
Science Robotics(2019),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au0307
Science(200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126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