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던 만성 신부전 환자가 신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남들보다 운이 좋아서 제때 이식할 신장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유전자를 바꿔 면역 거부 반응을 차단한 돼지 신장이 이식 수술까지 9개월간 생명을 연장하는 징검다리가 됐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 브리검 병원의 레오나르도 리엘라(Leonardo Riella) 신장내과 교수 연구진은 "만성 신부전 환자인 팀 앤드루스(Tim Andrews·67)가 지난 1월 신장 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지 271일 동안 먼저 이식받은 돼지 신장으로 투석 없이 생활했다"고 4일 국제 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의학계는 이번 결과는 다른 동물을 이용하는 이종(異種) 장기 이식이 만성적인 장기 기증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종 장기가 인간 장기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해도 이식용 장기를 구하기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인간 장기 이식으로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셈이다.
◇유전자 69개 교정, 면역 거부 방지
앤드루스는 지난해 1월 25일 일부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 신장을 이식받았다. 원래 신장은 기능이 떨어져 이틀 전 제거했다. 앤드루스에게 이식한 돼지 장기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바이오 기업인 이제네시스(eGenesis)가 제공했다. 이 회사는 이종 유전자 교정 분야의 권위자인 조지 처치(George Church) 하버드대 교수가 세웠다.
이제네시스는 돼지 유전자 69개를 교정해 면역 거부 반응을 원천 차단했다. 유전자 교정은 크게 3가지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제네시스 연구진은 DNA에서 원하는 유전자만 잘라내는 효소 복합체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먼저 초급성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돼지 항원 유전자 3개를 제거했다.
인간에게 건너가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돼지 고유의 바이러스 유전자도 무력화했다. 동시에 인간 유전자 7가지를 삽입해 이식한 신장이 인체와 문제없이 지내도록 했다. 말하자면 인간화된 돼지 신장을 만든 셈이다.
이제네시스는 2024년 3월 이후 만성 신부전 환자 5명이 매사추세츠 종합 브리검 병원에서 유전자를 교정한 EGEN-2784 돼지 신장을 이식받았다고 밝혔다. 이 중 3명은 투석을 하지 않고도 8개월 이상 신장 기능을 유지했다. 그중 앤드루스가 돼지 신장으로 투석 없이 9개월을 넘겨 신기록을 세웠다.
앤드루스는 나중에 기능을 잃은 돼지 신장을 제거하고 다시 투석으로 견디다가 82일 뒤 인간 신장을 이식받았다. 다른 환자 1명도 역시 인간 신장으로 교체했다. 돼지 신장에서 인간 신장으로 릴레이가 성공한 것이다.
이제네시스는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임상시험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신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있는 50~77세 신부전 환자 33명에게 이제네시스의 유전자 교정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투석의 한계 극복, 이식까지 시간 벌어
만성 신부전 환자는 투석으로 망가진 신장 기능을 보완한다. 투석은 혈액을 빼내 의료 기기로 불순물을 여과한 뒤 다시 몸으로 돌려보내는 시술이다. 원리상 신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투석은 신장 기능의 10분의 1만 대체할 수 있다. 한 번에 5시간씩 일주일에 3일 병원에서 투석을 받아도 독소와 미네랄이 끊임없이 축적돼 혈관을 손상시키고 심장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해결책은 신장 이식이지만 공급이 턱없이 달린다. 미국에서만 80만명 이상이 말기 신장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신장 이식 건수는 2024년 2만8000건에 그쳤다. 이제네시스는 유전자 교정으로 인간화한 돼지 신장이 인간 신장을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해도 이식할 신장을 구하기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앤드루스가 그 증거인 셈이다.
마이크 커티스(Mike Curtis) 이제네시스 대표는 "앤드루스는 투석 중 두 차례 심근경색을 겪고 침대나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돼지 신장을 이식받고 며칠 만에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며 "나중에 돼지 신장을 제거하고 다시 투석을 할 때는 9개월 전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돼지 장기가 실제 이식 수술까지 징검다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간 기능 악화로 사경을 헤매던 중국 환자가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지 돼지 간으로 3일을 견뎠다고 전했다. 중국 시안의 공군 의과대학 시징병원 의료진은 간부전 환자에게 돼지 간이 있는 체외 순환 장치를 연결해 실제 간 이식 수술까지 생명을 유지했다.
딩시 수술을 집도한 외과의사인 왕린(Lin Wang) 박사에 따르면 56세 남성인 이 환자는 B형 간염과 다른 간 질환, 알코올로 인해 간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간 기능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이 환자는 돼지 간을 이용한 체외 순환을 거쳐 1월에 인간 간을 이식받고 현재 회복 중이다.
참고 자료
Lancet(2026), DOI: https://doi.org/10.1016/S0140-6736(26)01295-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