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彼我) 구분을 못하고 내부 총질을 일삼던 불량 면역세포가 몸 안에서 생산된 면역 보안관에게 일망타진됐다. 유전자 변형 T세포가 외부 병원체가 아니라 멀쩡한 세포를 공격하던 B세포를 진압한 것이다.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통지병원의 티안 다이시(Dai-Shi Tian) 교수 연구진은 "다발성 경화증을 포함해 여러 자가면역 질환에 걸린 환자들이 스스로 카티(CAR-T) 세포를 만들어 심각한 부작용 없이 면역 체계를 정상으로 회복시켰다"고 2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발표했다.
다발성 경화증은 B세포가 분비한 항체가 외부 침입자 대신 척수나 신경세포를 감싼 보호막인 미엘린을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이러면 신경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온몸이 굳어버리고 시력마저 손상된다.
◇몸 안에서 세포 치료제 생산
카티세포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를 가진 T세포'를 의미한다.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가진 상상의 동물 키메라처럼, T세포에 암세포 표면의 항원 단백질을 찾는 유전자까지 결합했다는 뜻이다. 카티세포는 이미 혈액암 치료제로 상용화됐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실험실에서 만들던 카티 치료제를 환자 몸에서 직접 생산하도록 유도했다. 이른바 '생체 내(in vivo) 전략'이다. 먼저 카티세포를 만들 유전 정보를 렌티바이러스에 담아 환자에 주입했다. 바이러스는 환자의 T세포에 불량 B세포를 식별하는 DNA를 전달했다.
이번 임상시험에는 다발성 경화증 환자 7명을 포함해 중증근무력증,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 등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16명이 참여했다. 근육을 약화시키고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나, 면역 체계가 뇌·척수·눈을 공격하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카티 유전자 전달체인 바이러스를 한 번 주사하고 6개월 동안 추적 관찰했다.
환자들의 몸에서 카티세포들이 생성되자 정상 세포들을 공격하던 B세포와 이들이 분비하던 항체 수치가 감소했다.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은 운동, 인지 기능이 개선되고 피로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육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근력 점수가 향상되고 염증이 감소했다.
부작용 위험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경미한 염증 반응이 나타났지만 대부분 2주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3명은 경증에서 중등도의 백혈구 수치 저하를 보였으나, 나중에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특히 카티세포가 불량 B세포를 제거하자 정상 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B세포가 늘었다. 면역 체계가 정상으로 재설정됐다는 의미다.
◇치료제 생산 시간, 비용 감소 기대
카티세포는 한 번 몸에 넣어주면 증식하면서 계속 암세포를 죽인다고 '살아 있는 약물' '암세포의 연쇄 파괴자(serial killer)'로 불린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스위스 노바티스의 킴리아부터 지난해 오토러스의 오캣질까지 카티 치료제 7종을 승인했다. 모두 인체를 지켜야 할 B세포가 암세포가 된 혈액암을 치료하는 용도로 허가를 받았다.
카티 치료는 혈액암에 이어 유방암, 폐암같이 장기에 생긴 고형암에도 시도되고 있다. 최근에는 난치성 만성 질환인 자가면역 질환까지 카티세포로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지난 6월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대학병원은 피부 발진을 부르는 자가면역 질환인 루푸스를 카티세포로 완치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기존 카티 치료제는 별도 시설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다 보니 치료 비용이 평균 50만달러가 든다. 카티 치료제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고 T세포를 추출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후 B세포 표면의 항원에만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든 DNA를 T세포에 전달한다. 이때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를 유전자 전달체로 쓴다. 이렇게 유전자가 변형된 카티세포를 대량 증식해 다시 환자에 투여하면 불량 B세포에 결합해 제거한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복잡한 카티세포 생산 과정을 몸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를 테면 약이 필요한 곳에 직접 공장을 만들어 치료 효과를 빨리 보고 생산과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셈이다.
독일 베를린 샤리테 대학병원의 데이비드 사이먼(David Simon) 교수는 "생체 내 카티세포 치료법에 대한 매우 고무적인 개념 증명 연구"라며 "실험실에서 만드는 기존 카티세포 치료법에 비해 생체 내 치료법이 비용이 저렴하고 생산 속도도 빠르다"고 말했다. 중국 화둥사범대의 면역학자인 두빙(Bing Du) 교수는 "생체 내 카티 치료법을 개발한 것은 큰 성과"라며 "이번 결과는 생체 외 카티세포 치료 결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카티 치료제의 치료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제조 기술도 발전시켰다. 두빙 교수는 지난해 다른 사람이 기증한 T세포를 카티세포로 만들어 기존 약물이 듣지 않던 루푸스 환자를 치료했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의 칼 준(Carl June) 교수 연구진은 DNA 정보를 복사한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몸 안의 T세포에 직접 전달해 체내에서 카티세포를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mRNA 방식은 코로나 백신에서 이미 효능이 입증됐으며, 바이러스 전달체를 쓸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 자료
NEJM(2026), DOI: https://doi.org/10.1056/NEJMc2603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