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의 오랜 난제였던 알츠하이머병의 진단과 치료 방식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 여부를 확인하는 데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뇌척수액 검사가 주로 활용됐다. 이는 검사 비용이 높고 환자 부담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혈액에서 알츠하이머병 관련 단백질을 확인하는 바이오마커 검사가 국내 의료 현장 도입을 앞두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진단 분야에서는 혈액 내 인산화 타우 단백질(p-tau)을 활용한 검사의 국내 임상 활용이 확대될 전망이다. 혈액검사가 확대되면 기존 PET이나 뇌척수액 검사에 비해 간편하게 알츠하이머병의 병리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치료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도 국내 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난 뒤 치료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고, 보다 일찍이 개입해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 방식'으로 치료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치매 증상 전부터 쌓이는 아밀로이드…혈액으로 확인
문소영 아주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과거에는 PET을 찍어야 아밀로이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혈액검사가 PET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올해 안에 p-tau181 검사법이 승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내년에는 p-tau217 검사도 도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p-tau는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타우 단백질의 변화를 혈액에서 측정하는 바이오마커다. 특히 p-tau217은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였는지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혈액검사가 임상에 본격 도입되면 모든 환자가 고가의 PET이나 뇌척수액 검사를 받기 전에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병 가능성을 먼저 가려내는 방식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진단기업들도 혈액 기반 알츠하이머병 검사 개발과 상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슈진단은 일라이 릴리와 공동 개발한 'Elecsys pTau181'에 이어 올해 5월 'Elecsys pTau217'의 유럽 CE 인증을 받았다.
pTau 검사는 혈액에서 인산화 타우를 측정해 아밀로이드 병리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는 체외진단 검사다. 양성·음성 결과를 통해 추가적인 PET이나 뇌척수액 검사가 필요한 환자를 가려내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 신약 '레켐비' 이어 '키순라' 상륙
혈액검사의 등장은 '레켐비', '키순라' 같은 치료제의 활용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두 약물은 모두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병리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 치료제다. 현재 이들 약물을 투여하려면 아밀로이드 병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혈액 바이오마커가 임상적으로 충분히 검증되면 PET이나 뇌척수액 검사에 앞서 혈액검사로 치료 후보군을 선별할 수 있어, 진단부터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과 환자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문현실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아밀로이드 베타는 증상이 발생하기 20~30년 전부터 쌓이기 시작한다"며 "아밀로이드 베타가 먼저 축적된 뒤 타우 단백질 이상과 신경세포 손상, 염증, 혈관 이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치매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뒤 치료하는 것보다 병리 변화가 초기 단계일 때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국내 기업도 치매 치료제 개발 속도
레켐비와 키순라 두 약물 모두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치료제다. 아밀로이드가 축적된 뒤 타우 병리와 신경세포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는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신경세포 손상을 되돌리기 어렵다. 즉, 이미 떨어진 기억력이나 인지기능을 되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치매가 혈관질환과 염증, 생활습관 등 다양한 요인이 병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치료도 아밀로이드뿐 아니라 타우와 혈관, 염증 등을 함께 겨냥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아리바이오는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AR1001'의 글로벌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AR1001은 혈관을 확장하는 PDE5 억제 작용을 통해 뇌 혈류를 개선하고, 신경세포 사멸을 억제하며, 독성 단백질 제거까지 유도하는 원리다. 치매의 발병 요인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단일 타깃이 아닌 다각도의 공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회사에 따르면, 지난 6월말 52주 투약을 완료해 현재 52주 유효성과 안전성 분석 단계에 있다. 분석 결과가 나오는대로 탑라인 결과를 공개하고, 세부 결과는 오는 11월 16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알츠하이머병 임상시험학회(CTAD 2026)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아리바이오는 앞서 중국 푸싱제약그룹과 아세안 10개국 독점 판매권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약 6300억원이다.
오스코텍(039200)과 아델이 공동 개발한 'ADEL-Y01'은 독성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후보물질로, 지난해 프랑스 제약기업 사노피에 최대 1조5300억원 규모로 기술을 이전했다. 디앤디파마텍(347850)은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NLY01을 개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파킨슨병에 이어 다발성 경화증 등으로 적응증을 넓혀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데서 나아가 타우와 염증, 신경세포 손상 등 다양한 병리 기전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