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감염되면 인체에 잠복하던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거대세포바이러스(CMV), 아넬로바이러스 등을 다시 깨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코로나 증상도 심해지고 후유증도 오래갔다./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몸 안에 숨어 있는 다른 바이러스들을 깨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코로나 증상이 심해지거나 부작용이 오래가는 것과도 관련이 있었다. 앞으로 연구에서 인과관계가 확인되면 코로나19 후유증을 치료하는 데다른 바이러스를 잡는 치료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에스더 멜라메드(Esther Melamed) 미국 텍사스 의대 신경과 교수 연구진은 2020년 5월부터 2021년 3월 사이 미국 병원 20곳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 1154명을 1년간 추적 관찰하고 생체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 감염 기간 동안 환자의 거의 절반에서 인체에서 휴면 상태로 있던 바이러스가 하나 이상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번 연구 결과는 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잠복 바이러스, 각각 다른 시기에 깨어나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한 대표적인 예가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pstein-Barr virus·EBV)이다. 세계 어디든 누구나 한 번쯤 감염되는 흔한 헤르페스과(科) 바이러스로, 건강한 사람은 감염돼도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 환자에서 이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하면 코로나 증상이 더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세포바이러스(Cytomegalovirus·CMV),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 등 다른 헤르페스과 바이러스와 아넬로바이러스과(Anelloviridae)도 마찬가지였다. 멜라메드 교수는 "코로나19가 바이러스 재활성화를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다시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염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는 코로나19가 한 바이러스 단독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인체에 잠복한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나는 것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처럼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사람에게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잠복 바이러스들이 깨어난 코로나19 환자들은 감염 전에는 면역력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입원 중에 다른 질환으로 면역억제제를 투여받은 환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보다 바이러스 재활성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만으로도 잠복한 바이러스를 깨울 정도로 면역 체계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코로나19는 인체에 잠복하던 바이러스들을 한 번에 다 깨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와 아넬로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급증하고 입원 직후 정점에 달했다. 반면 거대세포바이러스와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감염된 지 3주 후에 주로 호흡기 계통에서 나타났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의 투과전자현미경 사진( 주황색).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만, 건강한 사람이라면 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이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하면서 중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롱코비드 용의자 바이러스도 확인

이번 연구는 코로나19 증상이 지속되는 만성 코로나19 증후군, 일명 롱코비드를 치료할 단서도 찾았다. 롱코비드는 코로나19 진단 뒤 3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흔히 뇌에 안개가 낀 듯 머릿속이 흐릿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 미각이나 후각 상실, 피로, 현기증과 같은 신경학적 증상도 포함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롱코비드 환자는 코로나19 감염 환자의 10명 중 1명꼴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그 원인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다시 깨어난 바이러스 중 아넬로바이러스가 롱코비드 증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환자 시료에서 활동을 재개한 아넬로바이러스가 발견되면 특정 백혈구의 활동이 더 활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멜라메드 교수는 "아넬로바이러스가 수동적인 방관자가 아니라 실제로 면역 조절 장애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바이러스를 억제해 롱코비드가 치료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의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대의 데이비드 푸트리노(David Putrino) 교수는 "코로나19를 유발한 바이러스(SARS-CoV-2)가 다른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매개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롱코비드 치료에 기존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푸트리노 교수 연구진은 롱코비드 환자들에게 헤르페스바이러스를 표적으로 하는 항바이러스제를 쓰는 임상 2상 시험을 시작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6-10740-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