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월부터 제네릭(복제약)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낮추지만, 환자가 체감하는 약값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선 오히려 약국의 재고 정산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약품은 공급 차질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제액은 그대로…약국은 재고 정산 '골치'
이번에 정부가 내리는 것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아니다. 건강보험이 약값을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보험약가(상한금액)'다.
1일부터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이 기존 53.55%에서 45%로 낮아졌다. 환자는 이 가운데 일부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건강보험이 부담한다. 따라서 보험약가가 내려가면 환자 부담도 함께 줄어드는 것은 맞다.
다만 실제 체감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제네릭은 원래 약값 자체가 저렴한 데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에는 약값뿐 아니라 조제료와 복약지도료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약값이 일부 인하되더라도 약국에서 최종 결제하는 금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절감 폭도 크지 않다. 예를 들어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 제네릭은 현재 약가(367원) 기준으로 하루 1정씩 1년간 복용하면 연간 약품비는 13만3955원이다. 이번 개편으로 약가가 318원으로 낮아지면 연간 약품비는 11만6070원으로 줄어든다. 건강보험 본인부담률(30%)을 적용하면 환자가 실제 아끼는 금액은 연간 약 5400원 수준이다.
그러나 약값 자체가 높은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 제네릭은 절감 효과가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부회장은 "장기간 같은 약을 복용하는 경우 일부 부담 감소를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 외래 환자는 차이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약국은 또 다른 부담을 안게 된다.
약가가 인하되면 기존에 보유한 재고의 가치도 함께 떨어진다. 약국은 제약사나 도매상과 차액을 정산하기 위해 재고를 일일이 확인하고 증빙해야 한다. 약가 조정이 반복될수록 행정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약가 인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하 대상 품목이 많고 조정이 반복되면 규모가 작은 약국일수록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익성 낮은 약부터 사라진다…로라제팜의 경고
의료계가 우려하는 것은 필수의약품 공급이다.
약가가 낮아지면 수익성이 떨어진 일부 의약품은 제약사가 생산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사용량은 많지 않지만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의약품이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원영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의사들이 약가 인하 때문에 처방을 바꾸지는 않지만, 제약사가 수익성이 낮은 품목의 생산을 줄이기 시작하면 결국 처방 가능한 약의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이 낮은 약부터 시장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환자는 기존에 복용하던 약이 왜 없어졌는지 묻게 되고 의사는 다른 약으로 처방을 바꾸면서 이를 설명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고 했다.
필수의약품은 시장에서 오래 사용된 품목이라도 낮은 채산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라제팜 성분 주사제다. 이 약은 뇌전증 지속상태(경련이 멈추지 않는 응급 상황)나 소아 경련 환자에게 가장 먼저 투여되는 필수의약품이다.
기존 생산업체였던 일동제약(249420)은 채산성 악화와 생산시설 노후화 등을 이유로 2023년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현장은 재고로 버티다 지난 5월 삼진제약(005500)이 제조를 맡기로 하면서 공급 공백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반복되는 필수약 품절…"생산 중단 전 보상 필요"
제약업계는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시경 검사 전 목을 마취하는 데 사용하는 태준제약의 '베노카인'은 이미 생산이 중단됐고, 현재 남아 있는 대체 제품도 공급 차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남아 있는 대체 제품도 올해 하반기 재고가 떨어질 것으로 본다.
퇴장방지의약품 제도의 한계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퇴장방지의약품은 환자 치료에 필수적이지만 수익성이 낮아 생산 중단 우려가 있는 의약품을 정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그러나 상당수 품목은 약가가 오랫동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특정 제약사에 생산이 집중된 구조도 여전하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퇴장방지의약품 628개 가운데 약 3분의 1인 197개 품목은 5년 이상 약가가 동결됐고, 이 가운데 57개는 20년 넘게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퇴장방지의약품을 생산하는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일동제약의 '아티반(성분명 로라제팜)'도 퇴장방지의약품이었다"며 "대부분 사회적 책임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 생산하지만 기업도 손실을 무한정 떠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단계적 약가 인하와 퇴장방지의약품 지원 등을 통해 공급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존 '사후 대응'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보험이사는 "생산 중단 위험이 있는 저가 필수의약품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적정 수준의 보상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