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자들이 70대 피부를 30대로 되돌릴 수 있는 단백질을 개발했다. 노화와 염증을 일으키는 당독소를 제거한다. 세포 실험에서 확인된 효능이 실제 환자에서 입증되면 피부를 회춘(回春)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망막과 신장, 심장 질환까지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바이오 기업인 레벨 파마슈티컬스(Revel Pharmaceuticals)는 "대표적인 최종 당화 산물(AGE)인 카르복시메틸라이신(CML)을 분해하는 인공 효소를 개발했다"고 지난 1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구글이 2013년 세운 항노화 기업 칼리코 라이프 사이언스와 콜로라도대 의대 연구진도 참여했다.
◇빵 구워지듯 노화하는 피부
스테이크가 불에 그을리거나 빵이 구워지는 과정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특유의 색과 풍미가 나타난다. 인체에서는 같은 과정이 노화를 일으킨다. 수십 년에 걸쳐 섭씨 37도에 구워진 인체 조직에서는 당분이 단백질, 지방과 결합해 최종 당화 산물이 축적된다. 이 물질은 염증과 노화를 부른다고 해 당독소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당독소를 인체 단백질 조직에 쌓이는 녹과 같다고 설명한다.
연구진은 당독소에 대항하는 효소가 인체에 없다면 새로 만들기로 했다. 사람이 죽으면 최종 당화 산물이 분해된다. 그렇다면 미생물에 당독소 분해 효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미생물 DNA를 5만개 이상 해독하고 이 유전자가 만들 효소 구조를 계산했다. 그중 인간 조직에서 대표적인 당독소인 CML을 잘라낼 수 있는 후보를 골랐다.
실험 결과 최종 선별된 효소는 인위적으로 손상시킨 단백질에서 CML 당독소를 52% 줄였다. 하룻밤 동안 반응하도록 두자 97%가 사라졌다.실제 환자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올 가능성도 확인됐다. 64세 기증자의 눈 수정체 단백질에 시험했더니 한 번에 당독소를 78% 줄였다.
75세 기증자의 대동맥 조직에서는 CML이 70% 이상, 피부 조직에서는 55% 감소했다. 이번 논문의 교신 저자인 아론 크레이븐스(Aaron Cravens) 레벨 파마슈티컬스 대표는 "70세 노인의 피부 조직에 있는 최종 당화 산물 수치를 30세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노화로 손상된 단백질은 복구할 수 없다는 기존 상식을 깨고, 효소를 이용해 분자 수준에서 노화로 인한 손상을 수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생체공학자인 마이클 주잇(Michael Jewett)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아직 임상에 적용할 단계는 아니지만 개념 증명 차원에서 장수를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당뇨병 합병증 치료제로도 개발 추진
연구진은 앞으로 새로 만든 효소로 망막과 수정체 조직에 당독소가 축적되면서 발생하는 안과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당뇨병 환자에게 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레벨 파마슈티컬스에 따르면 이론적으로 CML 제거 효소는 단 한 번만 투여해도 안과 질환의 근본 원인인 염증적 축적물을 제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부 콜라겐의 탄력을 개선하거나 신장, 심혈관 조직에 축적되는 당독소를 없애 노화 관련 질환을 치료할 수도 있다. 물론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바로 노화 방지 치료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아직 당독소를 젊은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개념 증명 차원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당독소 제거 효소가 상용화되려면 새로 만든 효소가 인체 조직에 안전하게 침투해 손상된 단백질에 도달할 수 있는지, 당독소 제거가 실제로 인체에서 염증을 줄이거나 조직의 기계적 특성을 개선하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남은 과제들을 해결하면 인간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회춘 치료가 본격화될 수 있다.
조영민 서울대 의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번 연구를 소개하면서 "노화 세포를 골라 제거하는 기술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콜라겐처럼 세포와 세포 사이에 있는 단백질의 손상은 복구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앞으로 추가 연구가 성공하면 장기와 조직의 세포외 기질의 노화를 되돌리고, 특히 피부 노화를 치료하는 데 큰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6).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5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