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자살 상담을 거부한 자살시도자에게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방문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자살 긴급대응 체계도 지방정부 중심에서 국가 차원으로 격상해 복지부·경찰청·소방청이 참여하는 '국가자살대응실'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살 긴급대응 강화방안'을 보고했다. 위기 포착부터 출동·초동대응, 안정·치료, 퇴원 후 밀착관리, 일상회복까지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것이 이번 대책의 골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성평등가족부, 국민권익위원회 2차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번 대책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자살예방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한 이후 마련된 후속 조치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왜 이렇게 높냐"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고,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도 자살 예방을 정부가 집중 관리해야 할 핵심 과제로 규정하며 대응 강화를 지시했다.

정부는 이번 긴급대응 대책을 시작으로 고립·위기가족, 돌봄·간병 부담, 특수직군 보호, 범죄 피해자 회복 지원 등 나머지 '9대 분야 자살예방 대책'도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상담 거부해도 '끝까지 관리'…법 개정 추진

복지부가 가장 큰 변화로 제시한 것은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방식이다.

현행 자살예방법상 자살시도자가 상담과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살예방센터는 관련 정보를 파기해야 한다. 이후에는 추가 연락이나 방문 등 후속 관리도 할 수 없어 재시도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이 관리 체계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복지부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상담과 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한 자살시도자에게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방문하는 관리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선영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브리핑에서 "상담·치료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방문하는 모형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고 개인정보 보호와도 관련된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참고 모델로는 경남 김해시와 네덜란드 사례가 제시됐다. 김해시는 상담을 거부한 자살시도자의 집 앞에 메모와 연락처를 남기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동료지원가로 구성된 다학제팀이 반복 방문과 상담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생활 문제 해결까지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는 법 개정 전에도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살·자해 관련 검색 이용자에게 109 상담전화 안내와 자살예방 콘텐츠를 반복 노출하는 방안을 플랫폼 사업자들과 협의할 계획이다. 다만 구체적인 협의 대상 플랫폼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정부에서 국가로…'국가자살대응실' 신설

자살 긴급상황 대응 체계도 국가 중심으로 개편한다.

복지부가 대응 체계 개편에 나선 것은 현장 대응 역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경찰·소방의 자살시도 현장 출동은 약 5만1000건이었지만 자살예방센터 전문인력이 함께 출동한 사례는 3738건으로 전체의 7% 수준에 그쳤다. 전문적인 정신건강 개입이 필요한 상당수 사례가 초기 대응 단계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는 긴급사건 출동 여부와 위험도 평가, 후속 조치 등을 기초 지방정부와 위탁기관이 자체 판단해 종결하는 구조다.

복지부는 복지부·경찰청·소방청 등이 함께 근무하는 국가자살대응실을 신설해 전국 자살시도·사망 사건을 통합 관리할 계획이다. 대응실은 출동부터 보호, 상담, 치료, 지원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고, 현장의 자살 위험도 평가와 후속 조치 기관 배정도 맡는다.

특히 병상 부족이나 정신의료기관 연계가 어려운 사례의 경우 국가자살대응실이 병상 배정과 이송까지 총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기업 파산 등 경제·사회 지표를 분석해 자살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기능도 맡는다.

국가자살대응실 설치 시기와 조직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정책관은 "부처 간 협의는 완료됐지만 예산과 조직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예산 협의가 마무리되고 제6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발표할 때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별도 입법 없이 자살예방법상 자살시도자 정보 연계 규정을 근거로 운영할 계획이다.

◇109 상담원 두 배 확대…응급실 진료 공백도 손질

위기 포착 기능도 강화한다.

자살예방상담전화(109) 상담원은 현재 103명에서 200명으로 확대한다. 1차 채용된 35명은 교육을 거쳐 8월 말~9월 초 현장에 투입되고, 추가 채용 인력까지 포함하면 10~11월께 200명 체계가 갖춰질 전망이다. AI를 활용해 상담기록 작성 등 반복 업무를 자동화해 상담원이 실제 상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생명의전화' 등 민간 상담기관과의 연계도 강화한다.

응급실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자살시도자의 신체 치료가 지연되거나 거부되는 문제도 개선한다. 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과 정신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해 신체 치료가 끝난 환자를 정신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또 신체 손상이 경미해 귀가하는 자살시도자를 대상으로는 내년부터 24시간 전문 상담과 사례관리를 제공하는 '자살시도자 일시보호 서비스'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과 정신의료기관 간 협력체계를 구축해 신체 치료가 끝난 환자를 정신치료기관으로 즉시 연계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병원 간 사전 협약(MOU)을 통해 치료 공백을 최소화하고 국가자살대응실이 병상 배정과 이송까지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아울러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는 현재 13곳에서 17곳으로 확대하고, 급성기 정신질환 집중치료병상은 현재 391병상에서 2030년까지 2000병상으로 늘린다. 정신응급을 필수의료로 지정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경찰과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함께 현장에 출동하는 '합동대응팀'도 확대한다. 현재 10개 시·도에서 11개 팀이 운영 중인데, 정부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인력을 확충해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전문인력 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화상으로 자살 위험도를 평가하는 체계도 도입할 계획이다.

◇"올해 자살사망자 1000명 이상 감소 목표"

복지부에 따르면 월별 자살사망자 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 1~4월 평균 감소율은 12.8%이며, 4월 자살사망자는 1061명(잠정치)으로 전년 동월보다 15.7% 줄었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이 자살 재시도율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구체적인 재시도율 목표를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 자살사망자를 지난해보다 1000명 이상 줄인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후속 자살예방 대책도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