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는 노년 커플. 전 세계적으로 기대 수명이 늘었지만 건강 수명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아 질병 부담 기간이 늘어났다./Pixabay

전 세계적으로 수명이 늘었지만 마냥 좋은 소식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이 좋지 않는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부유한 국가일수록 격차가 더 커졌다. 선진국은 의료 서비스가 좋아 기대 수명이 늘었지만 건강 수명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말이다.

크리스토퍼 머레이(Christopher Murray)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측·평가연구소(IHME) 소장 연구진은 2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랜싯 공중보건'에 2023년 세계 질병 부담(Global Burden of Disease, GBD)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90년과 2023년 사이 세계 204국에서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의 차이인 질병 격차(morbidity gap)를 조사한 결과다.

◇기대 수명만큼 건강 수명 늘지 않아

논문에 따르면 이 기간 거의 모든 곳에서 질병 격차가 확대됐다. 1990년 8.8년에서 2023년 10.7년으로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삶의 14.5%를 아픈 상태로 보냈다. 이는 1990년의 13.6%에서 증가한 수치다.

이번 연구의 기초 자료는 출생 시 얼마나 오래 살지 추정하는 기대 수명이다. 1990년에서 2023년 사이 기대 수명은 64.6세에서 73.8세로 증가했다. 동시에 병 없이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시간인 건강 수명도 55.9세에서 63.1세로 높아졌지만, 기대 수명의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만성 질환과 장애를 안고 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연구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시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질병 격차 확대라는 더 큰 추세를 되돌리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기대 수명은 2021년 71.9세, 건강 수명은 61.7세로 떨어졌다. 세계 평균 질병 격차는 2020년 10.4년에서 2021년 10.3년으로 0.1년 줄었다. 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더 건강해져서 격차가 줄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건강 수명보다 기대 수명이 더 급격히 줄어 생긴 결과로 해석됐다.

머레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미래 건강 증진이 단순히 수명 연장뿐 아니라 건강 증진을 통해서도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건강한 노화의 진전은 수명뿐 아니라 건강 수명으로 측정돼야 하며, 질병 예방과 장기 질병 관리, 만성 질환 치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건강이 나쁜 상태로 보내는 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 격차 상위 10국과 하위 10국./자료 2023 GBD

◇고소득 국가일수록 질병 격차 커

고소득 국가는 의료 인프라가 좋아 저소득 국가보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질병 격차는 2023년 기준으로 미국이 14년으로 가장 컸고, 호주(13.9년)와 캐나다(13.7년), 뉴질랜드(13.1년), 네덜란드(12.9년)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11.6년으로 48위를 기록했다. 의료 혜택을 많이 받는 곳일수록 오래 사는 인구가 많지만, 만성 질환 부담도 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질병 격차가 9.0년으로 가장 작았다. 이 지역 사람들이 더 건강하다기보다 기대 수명 자체가 짧아 질병이나 장애를 안고 지내는 기간도 짧다는 의미다. 북한은 2023년 기준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의 격차가 9.4년으로 204국 중 146위였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더 오래 살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2023년 여성의 평균 질병 부담 기간은 12.1년으로 남성의 9.3년보다 길었다. 고소득국이나 저소득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지만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에 관계없이 질병과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기간도 더 길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질병 부담 기간을 늘리는 원인은 소수의 만성 질환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023년 기준 전체 건강 악화 기간의 57.4%를 만성 질환이 차지했다고 밝혔다. 근골격계 질환, 특히 요통이 질병 격차의 가장 큰 원인이었으며, 우울증과 불안 장애 같은 정신 질환, 노화성 난청을 포함한 감각 기관 질환, 낙상 같은 부상이 그 뒤를 이었다.

연구진은 질병 격차를 예방하기에 비교적 쉬운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획기적인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도 생활 습관을 바꾸고 의료 투자를 집중해 해결 가능한 부분이라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공복 혈장 포도당 수치 상승, 높은 체질량 지수, 아동·산모 영양실조, 흡연은 질병 격차에 기여하는 주요 위험 요인으로 확인됐다. 대기 오염 또한 상위 5대 위험 요인에 포함됐다.

참고 자료

Lancet Public Health(2026), DOI: https://doi.org/10.1016/S2468-2667(26)000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