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재생의료 정책의 무게중심을 연구 기반 구축에서 실제 치료와 산업화로 옮긴다. 해외에서 고액을 들여 받던 줄기세포 치료를 정부 주도 임상연구를 거쳐 국내에서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안전성이 확인된 치료는 임상 진입 문턱을 낮춘다. 반면 연구나 치료 실적 없이 재생의료기관 지정만 받아 병원 홍보에 활용하는 기관은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관리도 강화한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1일 정은경 복지부 장관과 오유경 식약처장 공동 주재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정책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2차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기본계획(2026~2030년)'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임상연구·치료계획 승인 누적 150건 이상, 국내 개발 첨단바이오의약품 5개 이상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준미 복지부 재생의료정책과장은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해외 원정치료 수요가 있는 치료를 국가 안전관리 체계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챗GPT

◇첫 치료 승인·CAR-T 허가…산업화 신호 잇따라

정부가 정책 방향을 바꾼 배경에는 연구 성과가 실제 치료 단계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지난 4월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은 EBV 양성 림프절외 NK/T세포 림프종 환자 15명을 대상으로 한 자가면역세포 치료계획을 국내 첫 첨단재생의료 치료로 승인받았다. 치료비는 7600만원으로 책정됐지만, 치료 후 5년 안에 재발하면 전액 환불하는 성과연계 방식이 적용됐다. 정부는 향후 치료 효과에 따라 비용을 환급하거나 조정하는 모델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임상 연구 성과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병원 내 CAR-T 치료제 생산 플랫폼을 구축해 기존 56일 걸리던 생산 기간을 12일로 단축했다. 치료를 받은 소아·청소년 백혈병 환자 8명 가운데 5명은 투여 한 달 만에 완전관해를 보였다.

이밖에 서울성모병원은 세계 최초로 동종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한 3D 바이오프린팅 기도 이식에 성공했고, 고려대 구로병원은 베체트병 환자를 대상으로 오가노이드 기반 치료를 적용했다.

산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첨단재생의료 분야 기업은 2023년 76개에서 지난해 138개로 약 80% 늘었다. 올해 4월에는 국내 개발 첫 CAR-T 치료제가 품목허가를 받았다.

◇원정치료 국내로…'저위험'은 선행 임상 면제

정부는 해외 원정치료 수요가 높은 무릎 골관절염, 난치성 만성통증, 혈액암, 재발성 교모세포종을 대상으로 정부 주도의 다기관 임상연구를 추진한다.

이들 과제는 이달부터 약 21개월 동안 연구가 진행된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치료계획 심의를 거쳐 이르면 2028년 하반기 국내 치료 실시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건강보험 적용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규제도 손질한다. 정부는 안전성 근거가 축적된 배양 자가유래 면역세포 치료의 위험도를 현행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조정하는 고시를 오는 10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핵심은 심사기간 단축이 아니라 임상 진입 절차를 줄이는 데 있다. 현재 중위험 첨단재생의료는 치료계획을 신청하기 위해 통상 2~3년의 임상연구를 거쳐야 하지만, 위험도가 저위험으로 조정되면 축적된 문헌과 안전성 자료를 근거로 곧바로 치료계획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세포 배양은 위험도 조정 이후에도 허가받은 세포처리시설에서만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병행 추진한다.

원료세포 확보도 쉬워진다. 올해 5월 해외 원료세포 활용 근거를 마련한 데 이어 앞으로는 제대혈은행 등 국내 다른 기관이 보관 중인 원료세포도 연구와 치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심사 빨라지고 '무늬만 재생의료기관' 퇴출

치료 확대에 맞춰 심의체계도 손본다.

첨단재생의료 심의 신청은 2024년 51건에서 지난해 118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193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심의기간도 과거 50일 수준에서 최대 110일까지 길어졌다.

정부는 심의위원을 현재 25명에서 40명으로 확대하고, 고위험과 중·저위험을 나눠 심사하는 분과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축적된 심의 사례를 바탕으로 심의 가이드라인도 마련해 심사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규제 완화와 함께 사후관리도 강화된다. 올해 6월 기준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은 223곳으로 늘었지만, 일부 기관은 연구나 치료 실적 없이 지정 사실만 병원 홍보에 활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는 재생의료기관이 지정 후 1년 안에 임상연구나 치료계획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3년마다 지정을 갱신하면서 연구·치료 참여 실적과 교육 이수 여부, 법령 위반 여부도 함께 평가한다. 미승인 시술이 의심되는 기관은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첨단재생의료 특화 광고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첨단재생의료 포털을 통해 승인된 치료와 실시 의료기관, 치료비 등을 공개하고 재난적 의료비 등 지원 제도도 안내하기로 했다. 치료 효과와 비용을 연계하는 성과연계형 비용 모델은 확대를 검토하되, 의무화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