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적 거리두기 의사결정과 의료 대응 체계의 한계를 보완하는 작업에 나선다. 감염병 위기 때마다 반복됐던 부처 간 역할 혼선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방역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질병청은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부처 업무보고에서 '2026년 하반기 7대 핵심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새로운 사업을 대거 내놓기보다 코로나19 이후 추진해온 감염병 대응 체계 개편 과제를 구체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감염병 위기 대응 체계 재정비다. 질병청은 감염병 상황을 제한적 유입·전파형과 팬데믹형으로 구분해 상황별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감염병 병상 관리 체계도 질병청 중심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현재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은 질병청이, 긴급치료병상은 보건복지부가 각각 관리하고 있다. 질병청은 이를 중앙·권역·지역·동네 단위 감염병 관리기관 체계로 재편해 위기 단계별 의료 대응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12월까지 감염병관리기관 재지정을 마치고, 8월에는 '감염병 위기 사회대응 매뉴얼'을 제정할 예정이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의 모습./뉴스1

특히 코로나19 당시 논란이 됐던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정책 결정 과정도 손본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2020년과 2021년 장기간 이어진 일률적인 거리두기 정책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소외계층에 피해를 준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방역 정책을 결정할 때 감염병 전문가 중심 논의에서 벗어나 경제·사회·노동·교육·법률 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감염병위기대응전문위원회 산하에 방역·사회대응분과위원회를 신설해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영향을 함께 검토하는 체계를 구축한다.

백신·치료제 자립을 위한 기존 사업도 속도를 낸다.

지난해 12월 임상 1상에 들어간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 사업은 오는 8월 임상 2상에 착수한다. 2028년 3상 완료와 품목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임 청장은 "현재까지 진행 경과를 보면 목표대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미래 팬데믹 발생 시 신속하게 백신을 개발해 국민 생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코로나19 백신은 현재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질병청은 국산 mRNA 백신 개발이 완료되면 수입 대체 효과뿐 아니라 항체치료제 등 다른 바이오 분야 기술 확장 기반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형 AI 기반 백신 개발 플랫폼인 'K-AI PPX' 구축도 추진한다. 병원체 분석부터 항원 설계, 임상 진입까지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향후 신종 감염병 발생 시 백신 개발 기간 단축을 목표로 한다.

지난 2022년 4월 오후 서울 은평구 청구성심병원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을 하고 있다./뉴스1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된 백신 품질 관리 문제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한다.

질병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기관과 함께 오는 9월 '백신 품질관리 및 안전접종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 청장은 "품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고를 놓치지 않고 기관 간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며 "제조사의 조사 기한과 중간 결과 공유 체계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백신 제조 과정은 식약처가, 유통·보관·접종 과정은 질병청이 담당하는 등 기관별 역할도 명확히 할 계획이다.

상시 감염병 관리와 만성질환 대응도 강화한다.

질병청은 2030년 말라리아 퇴치를 목표로 위험지역 감시와 환자 조기 발견 체계를 강화하고,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 등 항생제 내성균 대응 사업도 확대한다.

임 청장은 "초고령화 사회에서 항생제 내성은 반드시 대비해야 하는 중요한 위협"이라며 "인체뿐 아니라 동물·환경까지 포함한 원헬스 관점의 범정부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보건소 방역반 관계자들이 말라리아를 비롯해 여름철 각종 감염병 매개체인 모기 등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방역을 하는 모습./뉴스1

희귀질환 지원도 확대한다. 희귀질환 전문기관이 없는 지역에 권역 전문기관을 추가 지정하고, 의료비 지원 과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는 '만성질환통합관리센터'로 개편해 지원 대상을 기존 30세 이상에서 전 연령으로 확대한다.

이 밖에 AI 기반 질병관리 서비스도 도입한다. 지역사회건강조사 참여자 대상 맞춤형 건강 리포트 제공, 해외 감염병 정보 자동 수집, 역학조사 지원 AI 챗봇, 감염병 허위정보 탐지 시스템 등을 구축할 예정이다.

폭염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온열질환 표준진료지침 마련과 '제2차 기후보건영향평가'도 추진한다.

임 청장은 "코로나19 경험을 바탕으로 감염병 위기 대응 체계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백신·치료제 국산화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