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성인 5명 중 1명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 가운데 약 30%는 망막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당뇨망막병증을 동반하며, 다시 이들 중 약 10%는 실명 위험이 높은 중증 단계로 진행된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안과 망막검진을 받는 환자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우세준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 겸 의료기기연구개발센터장은 문제의 본질이 '진단 기술'이 아니라 환자가 안과까지 오지 않는 의료 전달체계에 있다고 봤다.
우 교수는 최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당뇨망막병증은 안과에서 눈만 보면 어렵지 않게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라며 "문제는 환자들이 안과에 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과는 꾸준히 다니면서도 안과 검진은 미루는 환자가 많다"며 "한창 일해야 할 젊은 환자가 양쪽 시력을 모두 잃은 뒤 병원을 찾는 모습을 여러 번 보면서, 안과에 오기 전 위험 환자를 먼저 찾아낼 방법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이 문제의식은 '눈을 보는 AI'가 아니라 '안과에 오기 전 환자를 먼저 찾는 AI'라는 발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모든 당뇨 환자에게 안과 검진을 권고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의료 인력도 부족하고 환자들의 참여도도 낮다"며 "환자가 자주 방문하는 내과나 건강검진에서 시행하는 혈액검사만으로 고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다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제때 안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의료 자원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과에서 혈액 검사, 안과에서 치료…AI가 잇는 새로운 진료 흐름
그렇게 탄생한 것이 당뇨망막병증 예측 소프트웨어 'iDMas-DR'이다. iDMas-DR는 혈액 속 바이오마커(생체지표)와 임상정보를 AI로 분석해 당뇨망막병증 위험도를 예측한다.
우 교수는 "우리 혈액에는 무수히 많은 단백질과 유전자가 들어 있어, AI가 다양한 임상정보를 함께 분석하면 예측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안과 전문 검사가 꼭 필요한 환자를 먼저 가려낼 수 있다"며 "AI가 고위험 환자를 선별해 꼭 필요한 환자만이라도 제때 망막검사를 받게 한다면 실명 환자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iDMas-DR는 2024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약 700명을 대상으로 한 확증 임상시험에서 전체 진단 정확도 85.8%, 양성 환자 진단 정확도(민감도) 94.0%, 음성 예측도(특이도) 79.9%를 기록했다.
현재는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시스템(HIS)에 탑재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우 교수는 "상용화된 AI 소프트웨어가 병원 의료정보시스템 안에서 실제 진료를 지원하게 된다는 점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는 AI 활용이 제한적이었고 HIS는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외부 프로그램을 들이기 어려웠다"며 "이번 사례를 계기로 다양한 의료 AI가 병원 HIS 안에서 실제 진료를 지원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도입이 완료되면 진료 흐름도 달라진다. 기존에는 내과에서 모든 당뇨 환자에게 안과 검진을 권고하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는 내과·건강검진센터에서 채혈한 뒤 AI가 위험도를 분석하고, 고위험군만 안과로 의뢰하는 새로운 의료 전달체계가 가능해진다.
우 교수는 혈액 기반 AI가 안저사진이나 광간섭단층촬영(OCT) 기반 AI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안과에서는 당뇨망막병증 유무는 확인할 수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진행될지는 알기 어렵다"며 "AI가 위험도를 예측하면 고위험 환자에게 더 적극적인 치료를 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좋은 기술만으로는 부족…규제 넘어 해외서 먼저 증명"
기술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는 의료 데이터 확보였다. 우 교수는 "좋은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연구비가 필요하다"며 "미국 등은 이를 국가 차원에서 투자하고 있다. 우리도 의료 데이터를 미래 산업의 핵심 자산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세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우 교수는 이철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과 국책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확보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체외진단 의료 AI 기업 레티마크를 설립해 iDMas-DR을 상용화했다.
우 교수는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적용되는 이해충돌방지법 대상자다. 자신이 공동 창업한 회사의 기술을 소속 병원에 도입하기 위해 레티마크 사외이사직을 사임하고 회사와의 법적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그는 "기술 도입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며 "법적인 걸림돌이 없었다면 더 빠르고 쉽게 도입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국립대학병원에서 개발된 많은 의료기술이 이런 규제 때문에 사장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들어간 뒤에도 과제는 남는다. 우 교수는 "현재 AI 의료 소프트웨어에는 적절한 수가가 없다"며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의사가 수행하도록 만드는 구조에서는 기업도 살아남기 어렵고 결국 누구도 의료 AI를 개발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레티마크는 현재 해외에서 사업성을 입증하고 있다. 베트남 창신 공장 건강검진에서 증상이 없던 당뇨망막병증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로 연결한 사례를 확보했으며, 최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인허가를 마치고 싱가포르 진출도 추진 중이다.
우 교수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혁신 의료기술이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이 해외 의료시장으로 빠르게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AI의 의료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법과 제도, 건강보험 수가, 데이터 활용 체계가 함께 바뀌어야 의사들이 연구실에서 만든 기술이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는 의료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