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과 소아 야간진료는 집 가까이에 있어야 하지만, 암 같은 중증 수술은 광역 거점병원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시민 숙의를 거쳐 도출됐다.
보건복지부 의료혁신위원회가 14일 발표한 '의료혁신 시민패널 공론화' 결과에 따르면, 성별·연령·거주지역 등을 고려해 선정한 시민 300명은 1박2일 토론 끝에 지역 의료체계의 방향으로 '경증은 가까이, 중증은 전문병원으로'라는 현실적 역할 분담에 공감했다.
숙의를 모두 마친 시민패널 2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4.3%는 감기·만성질환 진료는 자신이 사는 시·군·구 안에서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야간·휴일 소아진료(77.1%), 24시간 응급실(66.0%), 분만(59.9%)도 지역 내에서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의료서비스로 꼽았다.
반면 암 등 중증·고난도 수술은 응답자의 52.9%가 광역 시·도 단위에서 제공되면 된다고 답했다. 일반 입원이나 맹장수술은 인근 시·군을 포함한 진료권에서 해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52.2%로 가장 많았다.
숙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응급은 생사가 달린 문제인 만큼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모든 지역에 수술 기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난도 수술은 일정 수준 이동하더라도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광역권에서 고난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서울 빅5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다", "가족의 돌봄을 받으면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을 거치면서 수도권 대형병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국립대병원 등 지역 거점병원의 의료 수준이 충분히 강화된다면 수도권 대형병원 대신 이용하겠다는 응답은 숙의 전 81.1%에서 숙의 후 89.6%로 8.5%포인트 늘었다. 특히 의료취약지 거주자의 이용 의향은 77.7%에서 91.5%로 가장 크게 상승했다.
다만 시민들은 지역 병원을 이용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의료의 질'을 가장 먼저 꼽았다. 지역 거점병원을 믿고 이용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6.8%가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 의료진의 실력과 경험'이라고 답했다. 응급 대응 체계(49.2%), 표준화된 진료 시스템(30.6%)이 뒤를 이었다. 토론에서도 "의료진 실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지역병원을 이용하지 않을 것", "의사의 전문성이 곧 신뢰"라는 의견이 반복해서 나왔다.
시민들은 지역의료 정책에서도 접근성보다 의료의 질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의료의 질'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64.5%로, '의료 접근성'(35.1%)을 두 배 가까이 웃돌았다.
정부가 앞으로 가장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는 '응급상황에서 골든타임 안에 최종 치료까지 이어지는 체계 구축'(25.4%)이 가장 많이 선택됐다. 이어 지역·필수의료 인력 양성(23.9%), 지방 국립대병원을 거점병원으로 육성(23.1%) 순이었다. 의료인력 정책 가운데서는 지역의사 선발·의무복무와 필수의료 수가를 더 보상하는 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높게 나타났다.
지역·필수의료를 누가 맡아야 하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팽팽했다. 공공병원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응답은 51.9%, 역량 있는 민간병원에 공공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응답은 47.4%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했다. 시민들은 다만 "단기적으로는 민간병원을 적극 활용하되 장기적으로는 공공병원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절충안도 함께 제시했다.
지역의료는 지역에 머무를지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인식도 확인됐다. 시민들의 92.5%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데 의료서비스가 중요하다고 답했고, 지역의료가 충분히 보장된다면 지방에 거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숙의 전 79.1%에서 숙의 후 86.3%로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