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조합원들과 여야 의원들이 3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응급의료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11/뉴스1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응급 환자와 119 구급대가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는 상황을 일컫는 '응급실 뺑뺑이' 표현 대신 '응급실 미수용', '수용 곤란' 등의 용어를 사용해달라고 언론에 요청했습니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이 의료 현장의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의료진 개인의 책임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게 의사협회가 용어 개선에 나선 주된 이유입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2일 보도 참고 자료를 통해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은 국민이 체감하는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지만, 응급의료 체계의 구조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며 '응급실 미수용', '응급 환자 수용 곤란', '배후 진료 불가에 따른 수용 제한' 등의 표현을 제안했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 의료혁신위원회 산하 지역·필수·공공의료 전문위원회는 회의를 거쳐 '응급실 뺑뺑이' 대신 '응급실 미수용'으로 용어를 일치해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응급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병원 종사자들은 "단순 거부가 아니다", "한 의사의 의지만으로 응급 환자 수용을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환자의 상태, 의료기관의 진료·수술 가능 여부, 중환자실 병상 확보 상황, 배후 진료과 전문의 대응 가능 여부, 기존 중증 환자 진료 상황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는 겁니다.

(자료사진) 2024.9.1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그동안 의료계 내부에선 '응급실 뺑뺑이'라는 표현이 의료진 개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잇달았습니다.

또 이 표현으로 인해 필수 의료 인력 부족과 배후 진료 인프라 붕괴, 과도한 사법 리스크 등 실제 원인이 가려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권역외상센터를 지켜 온 한 외상외과 전문의는 "뺑뺑이라는 표현에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며 "이 말이 의료진이 환자를 의도적으로 돌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의료 현장은 환자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과거에는 세부 전문의가 없더라도 당직 전공의가 응급 상황에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환자를 우선 수용해 진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장 의료진들은 '의료 분쟁' 부담이 응급 환자 수용 여부를 더 보수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는 의대생들이 소위 필수의료 진료과를 기피하는 문제의 원인으로도 꼽힙니다.

한 전문의는 "소송이 늘고, 법원의 판단 기준이 세분되면서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진료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예를 들면 소아 환자를 성인 외과 의사가 수술했다는 이유 등으로 사후 책임을 묻는 사법부의 판례가 쌓였고, 이로 인해 의료 현장이 크게 위축되는 경향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문제 현상을 일컫는 표현 자체가 아니라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있습니다.

2021년 4월 경기도청 잔디광장에서 열린 '응급의료전용헬기 종합시뮬레이션 훈련'에서 이재명 대통령(당시 경기도지사)이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당시 아주대병원 교수)와 악수를 하고 있다. /경기도·조선비즈DB

정부도 대책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응급환자 이송 체계를 개선한 시범 사업 결과를 공개하고, 오는 9월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시범 사업은 구급대가 병원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때 광역 응급 의료 상황실이 개입해 이송 병원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3~5월 광주광역시·전북·전남에서 시범 사업을 실시한 결과, 구급차를 탄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응급실 미수용' 사례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시범 사업 기간 이송 요청은 총 123건이었습니다.

구급대가 현장에서 병원으로 출발하기까지 걸리는 체류 시간은 일부 지역에서 단축됐다고 합니다.

광주의 경우 중증 환자 기준 평균 체류 시간은 16분 6초로 전년 대비 1분 24초 감소했고, 전북은 12분 54초로 24초 줄었다. 전남은 소폭 증가했으나 유사 조건 지역 대비 짧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의료계 일각에선 성과 해석에 문제가 있다며 시범 사업 확대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3개월 동안 해당 지역 전체 중증환자 이송 건수는 8000~1만건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정부가 분석한 123건은 극히 일부"라며 "이를 근거로 전체 응급의료체계 성과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 문제의 본질은 배후 진료 인력 부족과 의료 전달체계 구조 문제인데, 이를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수치만 강조하는 것은 착시"라며 실질적인 인프라 개선 선행과 시범사업 원자료 공개, 의료계가 참여하는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