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혈액 줄기세포가 환자 몸에 들어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던 면역세포를 대체하는 모습의 상상도./챗GPT 생성 이미지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리셋, 초기화가 답인 경우가 많다. 같은 방법으로 줄기세포가 내부 총질을 일삼던 인체 방어군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면역 체계를 초기화해 문제가 된 면역세포를 정상 면역세포로 대체한 것이다.

마시모 필리피(Massimo Filippi) 이탈리아 산라파엘레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진은 "동종(同種)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은 시신경척수염 스펙트럼 장애(NMOSD) 환자 2명이 15년간 거의 완치 상태를 유지한 것을 확인했다"고 지난 1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메드(Med)'에 발표했다.

◇15년간 약 없이 정상 생활 유지

시신경척수염은 인구 10만명당 3명 정도에서 발생하는 매우 드문 자가면역질환이다. 인체의 면역세포가 시신경과 척수에 염증을 일으켜 신경 보호막인 미엘린을 없애 발생한다. 그러면 신경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온몸이 굳어버리고 시력마저 손상된다. 구토가 계속되며 배뇨, 배변도 어려워진다.

연구진은 약이 듣지 않는 남녀 환자 2명에게 동종 조혈모세포를 이식했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모든 혈액 세포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이다. 시술 후 남성은 신경 기능이 호전돼 정상으로 돌아왔고 자녀도 두 명 뒀다. 여성은 마비됐던 팔을 다시 쓸 수 있었고, 더 이상 약물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됐다. 호주 시드니 공대의 줄기세포 연구자인 리 자오자오(Jiao Jiao Li) 교수는 네이처지에 "아직 완치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치료가 오랜 기간 질환이 야기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리피 교수는 동종 조혈모세포를 시신경척수염 치료에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동종 조혈모세포는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의 혈액 줄기세포이다. 남성 환자는 2009년 여동생의 혈액 줄기세포를 이식받았으며, 여성 환자는 이듬해 혈연관계가 없는 기증자에게서 세포를 받았다.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지만 환자와 백혈구의 유전적 특성인 HLA(조직적합성항원)가 잘 맞는 사람에서 기증받아 면역 거부 반응이 적다고 예상됐다.

두 사람 모두 줄기세포를 단 한 번 투여받았지만 고장이 난 면역계가 사실상 초기화됐다. 환자 몸에서 신경세포를 공격하던 병원성 항아쿠아포린-4 항체(AQP4-IgG)가 사라졌다. 시신경척수염은 80%가 AQP4-IgG가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이 항체는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계의 세포막에서 물을 전달하는 통로 단백질인 아쿠아포린-4를 공격한다. 그 결과 시신경과 척수에 심각한 염증이 발생한다.

혈액 줄기세포로 중증 자가면역질환 환자 치료./자료 Med

◇면역계의 완전 교체에 성공

특히 환자의 조절 T세포는 줄기세포를 제공한 사람의 세포로 대체됐다. 조절 T세포는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면역 체계가 자신의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막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이다. 줄기세포가 단순히 염증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면역계를 완전히 교체했다는 말이다.

줄기세포로 인한 면역 거부 반응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가 면역세포로 자라면 환자의 몸을 침입자로 오인하고 공격할 수 있다. 바로 이식편대숙주질환(graft-versus-host disease)이라는 합병증이다. 연구진은 혈액 줄기세포 이식 후 그런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줄기세포로 중증 자가면역질환을 완치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아직 소수 환자에서만 효과를 확인해 모든 시신경척수염 환자에게 도움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이번 경우처럼 면역 거부 반응이 없을 적합한 기증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한 개념 증명 차원의 연구로, 앞으로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데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드니 공대의 브루스 밀소프(Bruce Milthorpe) 교수는 뼈 안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는 것보다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했다는 점에서 기증자의 조직에 손상을 주는 침습성도 크게 낮췄다고 평가했다.

참고 자료

Med(2026), DOI: https://doi.org/10.1016/j.medj.2026.101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