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자가면역질환을 앓던 영국 여성 환자가 유전자 치료 한 번에 완치됐다. 유전자 변형 T세포가 자기 몸을 공격하던 면역세포를 없앤 결과이다. 그동안 암 치료에 쓰던 면역 유전자 치료가 자가면역질환까지 극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대학병원은 "중증 루푸스 환자에게 카티(CAR-T)세포를 주입하는 임상 1상 시험에서 19~50세 환자 5명이 관해에 도달했다"고 12일(현지 시각) 밝혔다. 관해는 병의 증상이나 징후가 감소하거나 완전히 사라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완치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루푸스는 면역 체계가 자신의 신체 조직을 공격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루푸스는 라틴어로 늑대를 뜻한다. 이 질환의 대표 증상인 피부 발진이 마치 늑대에 물린 자국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전 세계적으로 약 500만명이 루푸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젊은 여성에게 발병한다.
◇30년 루푸스 환자, 다시 스키 타
연구진은 영국 오토러스 테라퓨틱스의 카티 면역 항암제인 오브셀(상품명 오캣질)을 중증 루푸스 성인 환자 9명에게 투여했다. 모두 다른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는 상태였고, 대부분 신장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형태의 질환인 루푸스 신염을 앓고 있었다. 환자 6명에게는 저용량 카티 치료제가, 3명에게는 고용량이 투여됐다.
루푸스는 면역세포인 B세포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B세포는 항체를 만들어 침입자를 무력화시키는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데, 적 대신 정상 세포를 공격하면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한다. 오토러스의 카티 치료제는 문제가 된 B세포를 찾아내 파괴한다.
평균 11개월간 추적 관찰한 결과 저용량 투여 환자 중 5명은 완치 상태에 이르렀다. 연구진은 고용량 투여 환자 3명에 대한 추적 관찰은 현재까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들도 완치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칼 페그스(Karl Peggs) UCL 대학병원 생의학연구센터 소장은 "더 큰 규모의 연구가 필요하긴 하지만, 카티세포 치료가 면역 체계를 재설정해 환자를 만성 자가면역질환의 악순환에서 해방시킬 가능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녀 세 명을 둔 52세 여성 캐티 팅클러(Katie Tinkler)이다. 팅글러는 20세 때부터 앓아온 중증 루푸스로 인한 통증과 피로 때문에 피트니스 강사 일을 그만둬야 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심할 때는 머그잔을 들지도 못했다. 이번에 카티 치료를 받고 10년 만에 다시 스키를 탔으며 딸 결혼식에서 춤을 출 수도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면역 재설정, 암 이어 자가면역질환도 극복
카티세포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를 가진 T세포를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가진 동물 키메라처럼, T세포에 암세포 표면의 항원 단백질을 찾는 유전자까지 결합했다는 뜻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스위스 노바티스의 킴리아부터 지난해 오토러스의 오캣질까지 카티 치료제 7종을 승인했다. 모두 인체를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암세포가 된 혈액암을 치료하는 용도로 허가를 받았다
오토러스는 오캣질이 암세포 대신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는 B세포를 찾아내 공격하도록 했다. 먼저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추출해 B세포 표면의 CD19 단백질을 감지하도록 유전자를 추가했다.이렇게 유전자를 변형한 T세포를 대량 배양한 다음, 다시 환자에게 주입했다.
카티 치료 후, 환자들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B세포가 거의 사라졌다. 몇 달 후 B세포들이 다시 나타났지만, 이전처럼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성숙한 B세포가 아니라 미성숙한 세포들이었다. 문제를 일으킨 B세포가 사라지고 정상 B세포가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는 카티 치료가 면역 체계 자체를 재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카티 치료제가 루푸스 치료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한 번 투여만으로 효과를 내 지금처럼 평생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카티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에서 잇따라 성과를 보였다.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 에를랑겐 대학병원 연구진은 지난 4월 자가면역질환 3가지에 걸린 여성 환자가 단 한 번의 카티 치료 후 14개월째 약물 없이 건강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환자의 면역 체계를 통째로 재설정해 호전을 넘어 완치에 가까운 상태를 끌어낸 세계 최초의 기록이라고 밝혔다.
국내 바이오 기업인 큐로셀은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첫 카티 치료제인 림카토를 혈액암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지난해부터 루푸스 환자 대상 임상시험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상시험 대상도 성인에서소아·청소년으로 확대됐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소아·청소년 난치성 전신 홍반성 루프스(SLE) 환자를 대상으로 CD19 카티세포를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참고 자료
Med(2026), DOI: https://doi.org/10.1016/j.medj.2026.10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