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자들이 막 수정된 인간 배아에서 유전 질환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문제가 된 유전자 전체를 잘라냈다면 이번에는 그중 일부분인 염기 하나만 바꿨다. 문장 전체를 바꾸기보다 오타 한 글자만 수정한 셈이다.
디터 에글리(Dieter Egli)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연구진은 "초기 단계의 인간 배아에서 심장병과 빈혈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염기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일(현지 시각)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우재선 기초과학원연구원(IBS) 바이오분자 및 세포 구조 연구단 생체분자 사회학 그룹장, 배상수 서울대 의대 교수 등 국내 연구진도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인터넷에 공개됐지만, 아직 동료 심사를 거쳐 정식 논문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기존 유전자 교정은 자칫 엉뚱한 곳을 잘라낼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번처럼 정밀 교정이 가능해지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다. 과학계는 치명적인 유전 질환을 출생 전에 치료할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지만, 동시에 지능이나 외모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맞춤형 아기를 낳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유전자의 문장 대신 글자 하나만 바꿔
에글리 교수 연구진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직후 2세포로 분화한 인간 배아에서 PCK9와 HBG1, HBG2 유전자를 교정했다. PCK9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HBG1과 HBG2 유전자는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생성에 관여한다. 연구진은 HBG 변이 유전자를 교정하면 겸상적혈구병이나 지중해빈혈과 같은 혈액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한 사례가 있다. 중국 선전 남방과기대의 허젠쿠이(賀建奎) 박사는 2018년 배아 단계에서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정해 건강한 아기 3명이 태어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사용한 방법은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였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허 박사는 중국에서 불법 의료 행위로 3년간 복역했다.
허젠쿠이 박사가 유전자 교정에 쓴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는 문제가 되는 유전자 DNA를 찾아가 지퍼처럼 결합하는 가이드 RNA와, 결합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인 캐스9로 구성된다.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는 DNA 두 가닥을 모두 잘라내는 바람에 유전자 교정 과정에서 잘못된 부위가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에글리 교수는 염기 교정이라는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이런 문제를 차단했다. DNA는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관장하는 일종의 설계도이다. 지퍼처럼 두 가닥이 서로 맞물려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지퍼의 이에 해당하는 것이 A(아데닌)·G(구아닌)·C(시토신)·T(티민) 네 종류의 염기다. 유전병은 이 염기의 순서가 정상과 달라서 생긴다. 에글리 교수는 배아의 세 가지 유전자에서 A 염기를 G로 바꿨다.
◇일부만 성공, 임상 적용은 시기상조
유전자 교정은 이미 성인 대상으로 유전 질환 치료 기술로 승인받았다.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겸상적혈구빈혈증에 대한 크리스퍼 캐스9 기반 치료법을 승인했다. 하지만 배아 교정은 승인이 쉽지 않다.
성인에서는 유전자 교정이 모든 세포에서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배아는 다르다. 예를 들어 간 질환의 경우 간세포의 5분의 1만 제대로 교정돼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배아는 나중에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하기 때문에 유전자 교정이 완벽해야 한다.
이번 연구 결과도 이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PCK9 유전자는 배아 세포 25개 중 19개에서 염기 A가 G로 바뀌는 염기 교정이 이뤄졌다. 4분의 3이 성공한 것이다. PCSK9 주변에서는 원치 않는 다른 염기가 바뀌거나 삽입, 결실은 없었다.
반면 HBG1 유전자는 세포의 52%, HBG2는 68%에서 염기 교정이 이뤄졌다. 원치 않은 변화도 나타났다. HBG1에서 G가 하나 또는 두 개 추가되는 변화가 발견됐다. 세포마다 유전자가 다른 모자이크 배아가 된 것이다. 이 상태에서 아기로 자라면 염기가 교정된 세포와 그렇지 않은 세포가 공존하게 된다.
문제는 지금으로선 유전자를 교정한 배아가 모자이크인지 검사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병원에서는 체외수정된 배아가 유전질환을 가졌는지 세포 하나를 채취해 검사한다. 하지만 모자이크 배아라면 세포 하나만 검사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과학자들은 배아가 아니라 정자와 난자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해야 그런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에글리 교수는 "이번에 염기 교정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보다 더 정밀한 유전자 교정을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면서도 "아직 다른 곳을 바꾸거나 모자이크 배아 문제가 남아 있어 임상 적용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아기 개량에 악용될 수도" 우려
과학계에서는 찬반 의견이 대립했다. 엠레 세리(Emre Seli) 예일대 의대 교수는 5일 네이처에 "이번 연구는 개념적 전환으로 유전자 교정 분야를 발전시킬 잠재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호주 시드니대의 그렉 닐리(Greg Neely)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이전 방법보다 덜 무모하고, 더 신중하며 윤리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표도르 우르노프(Fyodor Urnov) 교수는 "이미 체외수정과 유전자 검사가 유전 질환 방지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아기 개량'을 위한 유전자 교정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배아의 염기 교정이 자칫 질병 차단이 아니라 지능이나 외모를 원하는 대로 고르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에글리 교수는 뉴욕의 배아 검사 기업인 뉴클리어스 지노믹스와 함께 연구했다. 지난해 11월 이 회사는 뉴욕시 지하철에 "최고의 아기를 낳으세요"라는 광고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회사 대표는 지능이나 키와 같은 특성은 수많은 유전자의 복합적인 작용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염기 교정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래도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어쩌면 과학자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bioRxiv(2026), DOI: https://doi.org/10.64898/2026.05.30.728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