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국 의사의 무덤에서 나온 수술 도구에서 마취제 성분이 발견됐다. 고대 인도나 중국에서 마취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수술 도구에서 마취제의 화학적 증거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오 쿵창(Congcang Zhao) 중국 서북대 문화유산학부 교수 연구진은 "명나라 시대 의사의 무덤에서 나온 수술 가위와 핀셋에서 마취제 성분인 아코니틴을 검출했다"고 2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고대(Antiquity)'에 발표했다.
아코니틴은 투구꽃속(Aconitum) 식물에서 추출한 독성 물질이다. 투구꽃의 덩이뿌리인 초오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오의 제조, 가공, 수입, 조리가 금지돼 있다. 김명민, 한지민 주연의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도 치명적인 독극물로 나온다.
◇레이저 이용해 투구꽃 독성 물질 확인
이번에 분석한 수술 가위와 핀셋은 1974년 중국 동부 장쑤성의 장인(江陰)시에서 발굴한 의사 시아촨(夏顴, 1348년~1411년)의 무덤에서 나왔다. 그는 생전 외과 수술과 침술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위와 핀셋 표면에는 붉은 점들이 있다. 연구진은 그 안에 수술 당시 묻었던 물질이 있다고 봤다.
연구진은 유물에 손상을 주지 않고 극미량의 성분까지 분석하는 자극 라만 산란(SRS) 현미경을 썼다. 두 레이저의 진동수 차이가 조사 대상인 분자의 진동수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면, 빛의 에너지가 증폭되거나 감소하는 자극 라만 산란 현상이 일어난다.
분석 결과 수술 가위와 핀셋에 남아 있는 붉은색 점들은 아코니틴 성분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의사가 환부를 절개하기 전 피부를 마비시키기 위해 아코니틴 성분의 가루를 피부에 발랐다고 추정했다.이후 수술을 하면서 가위와 핀셋에 아코니틴이 묻어 지금까지 남았다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첨단 분석 기술로 로마의 화장품부터 안데스산맥의 환각제까지 고대 문명의 의약품 잔류물을 식별해 왔다. 그러나 기존 분석 기술은 고대 중국의 의학 잔류물에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잔류물이 보존되는 경우가 드물고, 남아 있어도 양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이저를 쓰는 라만 현미경은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마취제의 직접적 증거 첫 발견
명나라 시대 의학 문헌에는 초오를 녹두, 감초와 같이 달이거나 식초로 찌는 식으로 독성을 완화할 수 있다고 나온다. 이렇게 가루로 만들면 독극물에서 통증을 없애는 마취제로 변신할 수 있지만, 실제 수술에 사용됐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오 교수는 "6세기 전 명나라의 한 외과의사가 철제 가위와 핀셋을 사용해 수술을 집도했고, 이번에 레이저 빔을 이용해 그 도구들에 남아 있던 마취제의 흔적을 읽어냈다"며 "명나라 의학 문헌에 기록된 마취제 처방 기록과 결합해 볼 때, 아코니틴이 수술 과정에서 국소 마취제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마취 수술의 기원은 고대 인도와 중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인도 의학서 '수슈루타 삼히타'에는 수술 전 술과 대마 등을 이용해 환자의 통증을 줄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2세기 중국 의사 화타가 술에 마비산을 타 먹인 뒤 수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마비산의 처방은 전하지 않아, 현대적 의미의 전신마취 기록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슈루타 삼히타 역시 기원전 수세기부터 기원후 초기에 걸쳐 집대성된 의학 전통을 남겼지만, 현재 남은 기록은 후대 편집을 거친 것이다.
참고 자료
Antiquity(2026), DOI: https://doi.org/10.15184/aqy.2026.10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