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치매의 약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관리 시대가 열리면서 뇌 영상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역할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단순 진단 보조를 넘어 치료제 투약 여부를 판단하고, 부작용을 추적하며 치료 효과까지 정량 분석하는 단계로 시장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뇌 질환 AI 스타트업 뉴로핏(380550)이 대표 주자로 꼽힌다. 2016년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차세대뉴로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개발한 빈준길, 김동현 공동대표가 창업한 회사다.
올해로 창업 10주년을 맞은 이 회사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분석 설루션과 전기자극 기반 뇌졸중 재활 치료 기기 개발·상용화에 성공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일라이 릴리, 스위스 로슈 등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와의 협업 확대에 이어 미국 대형 병원과 신규 프로젝트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3일 조선비즈와 서울 강남구 뉴로핏 본사에서 만난 빈준길 뉴로핏 대표는 "글로벌 빅파마 수요를 기반으로 미국 상위 병원과 새로운 진단 기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빈 대표는 "해당 프로젝트는 글로벌 빅파마 측 요청이 먼저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병원과 함께 기획이 이뤄졌다"며 "현재 진행이 결정돼 계약 절차를 거쳐 올해 여름에 해당 사업을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는 기술 개발 단계부터 실제 수요처(의료기관)와 연결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최근 진행한 유상증자 역시 글로벌 프로젝트 확대와 해외 사업 가속화를 위한 투자 성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회사는 약 160억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전환우선주 발행)를 결정했다.
◇ 치매 치료제 개화…빅파마와 협업 넘어 '상업화 계약' 주목
뉴로핏이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는 배경에는 알츠하이머병 치료 시장 개화가 있다.
그동안 치매 치료제가 증상 완화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일본 에자이·미국 바이오젠의 '레켐비', 일라이 릴리의 '키순라' 등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치료제들이 등장하면서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치료 과정에서 뇌부종(ARIA-E), 미세 출혈(ARIA-H)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반복적인 MRI 판독과 정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여기에 뉴로핏의 AI 설루션이 활용된다. 뉴로핏의 '아쿠아 AD'는 MRI·PET 영상을 AI로 분석해 치료 전 적합성 평가부터 치료 후 부작용 추적, 아밀로이드 감소량 분석까지 수행한다.
빈 대표는 "미세 출혈 개수와 부종 위치·크기까지 정량화해 의료진 의사 결정을 돕는다"며 "치료제를 계속 투여할지 중단할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단순 부작용 탐지를 넘어 치료 효과 분석까지 가능한 점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빈 대표는 "현재 세계 시장 주요 플레이어 가운데 아밀로이드 감소량까지 분석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치료제 시대가 열리면서 오히려 후발주자인 뉴로핏에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뉴로핏은 현재 여러 글로벌 빅파마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라이 릴리와는 릴리 보유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검증 프로젝트와 자체 분석 기법 자동화 구현 프로젝트 등 2건이 진행됐다. 로슈와도 임상 데이터 기반 검증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협업 사업 진행 상황에 대해 빈 대표는 "릴리 프로젝트는 진행 결과 발표까지 완료했고 조만간 글로벌 본사와 첫 상업화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빅파마가 엄격하게 관리하는 임상 데이터를 공유하고 직접 검증까지 진행했다는 것 자체가 기술 수요를 보여주는 신호"라며 "올해 핵심 목표는 단순 공동 연구를 넘어 빅파마 협업을 실제 상업화 계약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올해 해외 사업 본격 확장"
회사는 올해 해외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지 법인을 중심으로 직접 영업과 파트너십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빈 대표는 "현지 의료기기 업체들과 협업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는 "단순 유통업체보다 이미 고객 기반을 확보한 현지 시장 점유율 1위 플레이어들과 협업하는 전략"이라며 "기존 제품군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뉴로핏 설루션을 추가 공급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일본 시장 공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병원이 의료기기를 직접 구매하기보다 의료기기 공급 대행업체(MSP)를 통해 공급받는 경우가 많다. 뉴로핏은 일본 지역 1위 MSP들과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빈 대표는 "북해도·동북 지역에 이어 간사이·규슈·도쿄 지역까지 계약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싱가포르 종합병원(SGH) 등 동남아 주요 병원 공급 사례도 확보한 상태다. 뉴로핏의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은 약 29% 수준이다.
◇ "의정 갈등 여파 컸지만…구독형 매출 구조 전환"
회사는 상장을 앞두고 의정 갈등 여파를 직접 겪었다. 지난해 상장 추진 직전 대학병원 계약과 의료기기 투자 일정이 지연되며 상장 일정과 자금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했다고 한다. 빈 대표는 "상장 일정과 자금 계획까지 연쇄적으로 꼬이면서 상당히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다만, 이를 계기로 국내 병원들의 구매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빈 대표는 "예전에는 대학병원의 90% 이상이 일시 구매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구독형 비중이 절반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병원으로서는 초기 투자 부담이 줄고 기업으로서는 반복 매출 기반이 만들어진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도 뉴로핏은 신규 제품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뉴로핏 창업진은 원래 영상 진단보다 '전기자극 치료'를 첫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했다.
회사는 작년 7월 AI 기반 맞춤형 전기자극 치료 설루션을 상용화했고 혁신의료기술 선정 이후 비급여 청구도 가능해졌다. 현재 뇌졸중 상지 재활 분야를 중심으로 대학병원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빈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개발했던 기술이 10년 만에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게 됐다"며 "상장도 의미 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치료가 시작됐다는 점이 창업자로서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현재 뉴로핏은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와 뇌 영상 데이터를 결합한 차세대 플랫폼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빈 대표는 "혈액 데이터와 뇌 영상 분석을 결합하면 정밀 진단과 신약 개발 정확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빅파마 수요 기반 기술 개발과 해외 사업 확대를 통해 글로벌 사업 성과를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