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우간다 캄팔라의 키불리 무슬림 병원 앞에서 방역 요원이 사람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출혈열 환자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의료진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지 내전과 미국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로 방역망이 약화됐다고 우려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에볼라와 다른 바이러스 종(種)이 원인인 탓에 치료제나 백신은 물론 진단 키트도 없다.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에서만 환자가 나와 글로벌 제약사들이 나서기에 경제적 유인도 부족한 실정이다. 의료 위기가 정치경제적 요인으로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세계보건기구(WHO)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과 우간다 일대에서 확산 중인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최고 수준 경보를 발령해 국제사회 공동 대응을 촉구한 것이다.

에볼라 출혈열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원인인 중증 감염병으로, 두통과 근육통, 발열, 전신 무력감을 거쳐 나중에 전신성 출혈이 나타나며, 사망률이 60%에 이른다. 1976년 민주콩고의 에볼라강 인근에서 처음 바이러스가 발견돼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과일박쥐나 침팬지 등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되며, 감염자 혈액이나 체액 접촉을 통해 사람 간 전염도 가능하다. 의료진 감염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투과전자현미경(TEM) 사진. 2014년 에볼라 대유행은 자이르 종이 유발했는데 올해 콩고민주공화국 일대에 퍼진 에볼라는 분디부교 종이 원인으로 밝혀졌다./미 CDC

◇치료법과 백신, 진단 키트도 없어

WHO는 지난 5일 민주콩고에서 에볼라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한 의료 종사자가 4월 24일 발열과 출혈 등 에볼라 감염 증상을 보였다. 이후 민주콩고에서 에볼라 확진자 2명이 인접국인 우간다로 입국하면서 그곳에서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두 국가 모두 지난주 발병을 공식 선언했다.

에볼라바이러스속(屬)은 크게 6종이 있다. 이 중 4종이 사람에게 출혈열을 일으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7일 기준으로 '분디부교(Bundibugyo)'라는 에볼라 바이러스 종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336건, 관련 사망자가 88명이라고 밝혔다. 분디부교 종 감염자는 20~50%의 치사율을 보인다.

특히 같은 병원에서 의료진이 4명 사망해 이전처럼 바이러스가 의료 현장에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WHO에 따르면 2014년 1만1300여 명이 죽은 최악의 에볼라 감염 사태 당시 전체 감염자의 10%가 의료진이었다. 당시 의료진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문제는 2014년 대감염 사태를 초래한 자이르(Zaire) 종에 대해서는 이미 백신 두 가지가 있지만 분디부교 종에 대해서는 백신이나 치료법이 없다는 점이다.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신속 진단 키트도 더 흔한 자이르 종을 검출하도록 만든 것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의 역학자인 레이나 맥킨타이어(Raina MacIntyre) 교수는 1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에볼라 바이러스 잠복기가 짧게 2일에서 길면 21일이나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고된 감염자 수를 고려할 때 이미 몇 달 동안 바이러스가 확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주제로 한 더스틴 호프만(오른쪽) 주연의 영화 '아웃브레이크'

◇정치적 상황이 방역 약화시켜

공교롭게도 현지 의료진은 에볼라 감염자를 찾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현재 에볼라 확산 지역에서는 의료진이 이미 홍역과 엠폭스(Mpox), 말라리아 같은 다른 감염병에 대응하느라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 정치적 상황도 에볼라 확산에 한몫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의 미생물학자인 수지 와일스(Siouxsie Wiles) 교수는 현지에서 내전을 피해 피난하는 인구가 많아 오랫동안 바이러스가 감지되지 않고 퍼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올 초 미국이 WHO에서 탈퇴한 것도 WHO의 감염병 대응력을 위축시켰다고 본다.미국이 자금 지원을 중단하자 WHO는 올해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전체 직원의 4분의 1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현재로선 에볼라가 전 세계로 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호흡기로 퍼지지 않기 때문에 감염자만 잘 가려내 격리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제약사들은 에볼라 환자가 아프리카에서 주로 나와 백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감염 지역을 여행한 사람이나 숙주 동물이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1995년 개봉한 영화 '아웃브레이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검역소 직원이 아프리카에서 밀수한 원숭이를 빼돌렸다가 곳곳에서 사람들이 피를 토하고 죽는 모습을 그렸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선진국으로 퍼질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고, 코로나19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처럼 신속 개발할 기술도 있으므로 분디부교 종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행히 올 1월 영국 옥스퍼드대는 mRNA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미국 제약사 모더나와 에볼라 바이러스와 마버그 바이러스 등 치명적인 출혈열을 유발할 수 있는 여러 필로바이러스과(科)를 동시에 공략하는 백신 후보 물질 개발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개발비를 신속하게 늘리고 임상시험 규제를 완화해 백신 개발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