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카보베르데 연안에 정박 중인 유람선 MV 혼디우스호. 이 배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승객 3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2명이 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확인됐다./Getty Images

아프리카 서쪽 섬나라에 정박 중인 대형 유람선에서 한타바이러스(Hantavirus)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설치류가 옮기는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며 사망률이 최대 50%에 이를 수 있다. 이미 승객 3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바이러스의 정체나 감염 경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네덜란드 국적의 유람선 MV 혼디우스호에서 심각한 호흡기 질환 집단 발병 사례가 지난 2일(현지 시각) 보고됐다"고 4일 밝혔다. WHO에 따르면 4일 현재 발병 사례 7건이 확인됐으며, 이 중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위독한 상태이다.

MV 혼디우스호는 4월 1일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 항을 출발해 남대서양을 횡단했다. 그 사이 남극과 사우스조지아, 나이팅게일 섬, 트리스탄 다 쿠냐,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섬에 기항했다. 현재 카보베르데 해역에 정박 중인 이 선박에는 23국 출신 승객과 승무원 147명이 탑승해 있다.

◇한 달 사이 7명 감염, 3명 사망

한타바이러스는 등줄쥐, 집쥐 등 설치류의 배설물이나 타액, 소변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에어로졸(미세입자) 형태로 공기 중으로 떠다니다가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주로 발열과 독감 유사 증상을 유발하지만, 상태가 심해지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WHO에 따르면 한타바이러스 감염의 치사율은 아시아와 유럽에서는 1~15% 미만인 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최대 50%에 달한다.

유람선의 첫 환자는 4월 6일 발생했다. 70세 네덜란드 남성이 발열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5일 후 선상에서 사망했다. 당시 사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같이 여행 중이던 아내는 남편의 시신과 함께 지난달 24일 아프리카 동쪽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하선했다. 여성은 항공기 편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가던 도중에 상태가 악화돼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26일 사망했다.

4월 24일 다시 유람선에서 환자가 나왔다. 영국인 남성 한 명이 병에 걸려 남아공으로 이송됐다. 남아공 국립전염병연구소가 환자의 검체를 조사해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이어 지난달 28일부터 몸살 증상을 보인 80세 여성이 지난 2일 사망했다. WHO는 현재 고열이나 위장관 증상을 호소한 의심 환자 3명이 선상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남아공 의료진은 환자들의 검체를 채취해 검사 중이다.

한타바이러스는 1993년 미국 남서부에서 사망자 13명을 낸 집단 발병 이후 이번에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바이러스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구세계 한타바이러스는 아프리카·아시아·유럽에서 발견되며 신장 증후군을 동반한 출혈열(HFRS)을 유발한다. 신세계 한타바이러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되며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HPS)을 일으킨다. 이번 집단 발병은 신세계 한타바이러스의 변종이 일으켰다고 추정됐다.

한타바이러스(녹색)의 전자현미경 사진. 유람선에서 집단 감염을 일으킨 한타바이러스는 인간 간 전염이 가능한 변종인 안데스 바이러스로 추정된다./미 CDC

◇아르헨티나서 바이러스에 노출 추정

한타바이러스는 쥐에서 사람으로 감염되지만 드물게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변종도 있다. 바로 신세계 한타바이러스 변종인 안데스 바이러스다. 전문가들은 유람선 승객들이 1995년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확인된 안데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한다.

MV 혼디우스호는 4월부터 항해를 시작했는데, 출발지가 작년부터 안데스 바이러스 유행이 지속되고 있던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25년 7월부터 2026년 1월 사이,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20명 나왔다.

아르헨티나의 한타바이러스 감염 환자 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치사율이 증가했다. 아르헨티나 보건부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2026년 1월 사이 바이러스 감염자의 34%가 사망했다. 이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기록된 국가 평균 사망률인 10~32%보다 높은 수치이다

호주 퀸즐랜드대의 바이러스학자인 리스 패리(Rhys Parry) 교수는 사이언스에 "한타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1주일에서 한 달 사이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향후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더 많은 환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탑승객들이 배에 타기 전에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선상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됐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현재 배에는 쥐가 없다고 알려져 육지에서 감염된 사람이 밀접하게 같이 지낸 사람에게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재훈 고려대 의대 교수는 "사람 간 전파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수 승객이 시차를 두고 발병하면 시간적으로는 마치 환자에서 다음 환자로 전파된 것처럼 보인다"며 "안데스 바이러스는 쥐가 아니라 오염된 식품 섭취나 공조 시스템을 통한 에어로졸 흡입 등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환경 시료에서 바이러스 유전체를 찾는 일도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첫 사망자의 출항 전 동선과 발병자 간 시·공간적 접촉 평가가 병행돼야 진정한 의미의 사람 간 직접 전파를 식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떠다니는 바이러스 배양접시' 될까

항해 도중 선박에서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발생하면 집단 감염 사태를 부를 수 있다. 지난 2020년 4월 발생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이던 대형 유람선에서 탑승자 3711명 중 712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확진됐으며, 이 중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사건은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탑승객 간 밀접 접촉으로 집단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주목받았다. 사람들은 이 배를 '움직이는 코로나 섬' '떠다니는 바이러스 배양 접시'로 불렀다. 겨울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도 선상에서 급속히 퍼져 장염 환자가 집단 발생하기도 한다.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에 대한 대응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칠레의 한타바이러스 환자를 치료했던 파블로 비알(Pablo Vial) 박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바이러스에 노출된 사람들을 위한 확립된 프로토콜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WHO는 배에 격리 중인 무증상 승객 147명을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마리아 반 커크호브(Maria Van Kerkhove) WHO 감염병 관리 국장 대행은 "안데스 바이러스가 원인이란 것이 타당한 가설"이라면서도 "이 바이러스가 사람 간 직접 전파되는 경우는 드물며, 대규모 확산 위험은 낮다"고 말했다. 그는 "WHO는 이번 사태를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공중보건 사건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권한을 실제로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조선일보DB

◇한국 과학자가 백신 최초 개발

한타바이러스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다만 증상을 완화하는 지지 요법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한타바이러스 감염은 혈관 누출을 유발해 폐에 체액이 차게 한다. 이러면 심장이 신체 전체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할 능력을 상실한다. 다행히 이런 변화는 며칠만 지속된다. 이때 체외막 산소 공급(ECMO) 장치가 일시적으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ECMO는 환자의 정맥에서 혈액을 빼내 외부 장치에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는 제거하는 장치다. 칠레는 한타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은 모든 환자를 ECMO 장비가 갖춰진 의료 센터로 즉시 이송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타바이러스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이호왕 박사(1928~2022)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원인 불명의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하다가 1976년 쥐의 폐 조직에서 병을 일으킨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했다. 그는 한탄강에서 발견했다고 한탄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이후 서울바이러스를 추가로 발견해 한타바이러스 속(屬)을 정립했다.

이 박사는 백신 개발을 이끌어 1990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예방 백신 한타박스(Hantavax)를 탄생시켰다. 다만 백신은 한국이나 중국에 있는 구세계 한타바이러스에는 쓸 수 있지만, 이번 유람선 탑승객들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세계 한타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신세계 한타바이러스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신세계 바이러스는 감염 유병률이 낮아 백신을 임상시험할 환자를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WHO(2026), https://www.who.int/emergencies/disease-outbreak-news/item/2026-DON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