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뇌성마비는 출생 전이나 분만 중, 또는 출생 직후 아직 미성숙한 뇌에 손상이 생겨 운동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근육이 약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한다. 오랫동안 뇌는 한 번 손상되면 되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김민영(59)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2013년 제대혈(탯줄 혈액)에 있는 줄기세포를 주사해 뇌성마비를 치료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줄기세포는 인체의 다양한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일종의 원시세포이다. 질병으로 손상된 조직에 줄기세포를 주사하면 건강한 세포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김 교수는 다른 사람의 제대혈 줄기세포로 환자를 치료했다. 태어날 때 자신의 제대혈을 보관하지 않은 환자도 면역적합성만 확인되면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정식 치료법이 아닌 의학 연구 차원의 임상 연구로만 600건 넘게 뇌성마비 환자에게 제대혈 치료를 했다. 단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치료 수치이다. 몸을 가누지도 못하던 아기들이 제대혈 주사를 맞고 혼자 기어 다니고 혼자 앉았다. 뇌에서 운동과 감각 신경세포가 재생되면서 운동능력뿐 아니라 인지능력까지 향상됐다.

최근 뇌성마비에 이어 뇌졸중,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치매까지 치료 성과를 거뒀다. 그는 뇌 기능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제대혈 같은 세포치료뿐 아니라 뇌신경을 자기장으로 자극하는 경두개 자기자극, 가상현실(VR) 디지털 치료까지 총동원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면 기술의 경계는 무의미하다"며 "매일 환자를 만나며 어떻게 치료할까 고민하다 보니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김민영 교수는 "뇌성마비와 뇌졸중, 자폐 환자 치료에 제대혈 줄기세포를 주사해 치료 효과를 봤다"며 "신경에 재생되고 염증이 억제된 결과"라고 말했다./전기병 기자

◇"손상 입은 뇌도 바뀔 수 있다"

–재활이라고 하면 근육을 키운다고 생각하는데 제대혈로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활성화시켰다.

"뇌가 손상되면 다시는 복구되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1990년대 말부터 신경 회로도 바뀔 수 있다는 뇌 가소성 이론이 등장했다. 이제 재활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뇌의 가소성을 이용해 잃어버린 기능을 찾는 과정이다."

–뇌 기능을 되살리는 가소성의 원리는 무엇인가.

"먼저 반복적인 자극이나 훈련을 하면 신경세포의 연결(시냅스)이 늘어난다. 뇌의 네트워크 변화도 있다. 기억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특정 일의 경험을 말로만 물으면 제대로 답하지 못하지만, 당시 들었던 음악이나 같이 있던 사람, 같이 본 풍경을 보여주면 기억이 더 쉽게 살아날 수 있다. 세 번째는 줄기세포의 신경 기능 회복 효과이다."

–뇌 기능을 복원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무엇일까.

"뇌성마비 환자에 제대혈 세포와 적혈구 생성 인자를 복합 치료하면 효과가 더 좋았지만, 제대혈 세포만으로도 치료 효과를 거뒀다. 연구를 계속해 제대혈 치료에 의한 운동 기능의 향상이 선천성 면역 반응의 증가와 항염증 효과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치료의 원리가 바로 염증을 억제하는 것이다."

–다른 뇌 질환 치료에서도 염증 제어에 집중하고 있다고 들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뇌성마비와 뇌졸중, 치매, 자폐에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의 염증이다. 뇌신경이 손상되면 그 주변에 만성적인 염증이 생겨 신경 재생을 방해한다. 이를 억제하면 다른 뇌 질환들도 치료할 수 있다. 뇌성마비는 유병률이 0.2~0.3%에 그치지만 자폐 스팩트럼 장애는 3%까지 나온다. 재활 치료를 하던 아이 중에 자폐 환자도 있어 임상 연구를 하게 됐다."

김민영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가 뇌성마비 환아에게 동종(타가) 제대혈을 정맥 주입하고 있다./차병원

◇전자통신연구원으로 간 의대생

–의대 교수인데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3년이나 근무한 이력이 눈에 띈다. 의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이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ETRI에서 VR 인터페이스 연구팀의 초빙연구원으로 일했다. 당시엔 의대 교수 중에 여성이 드물었다. 교수보다 연구자가 되기로 하고 석사과정 때 연세대 전자공학과 김재희 교수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고, ETRI에서 편마비 환자들을 위한 VR 치료 기술을 개발했다."

–요즘 말하는 디지털 치료제(DTx)를 일찍부터 시작한 셈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디지털 치료제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왔지만, 이전부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라는 개념이 있었다. VR은 그중 한 형태이다. 당시 편마비 환자 치료를 시도한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뇌 손상 환자 치료에 적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실행증(Apraxia)을 앓던 분이다. 말 그대로 원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이다. 뇌에서 근육으로 가는 명령 체계가 꼬여 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악수를 한 번 하면 손을 떼지 못해 반대쪽 손으로 자기 손가락을 하나씩 펴야 했다. 이 환자에게 VR 고글을 씌우고 가상 공간에서 물고기를 잡으라고 했더니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평면 모니터보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3D(입체) 가상 세계가 뇌 전체의 신경망을 훨씬 강력하게 활성화한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였다."

–노인의 인지 기능을 높이는 데에도 디지털 기술이 도움이 됐다는데.

"노인들은 VR 같은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가상 세계에서 날씨에 따라 옷을 고르도록 하고 점수를 매겼는데 노인들이 의외로 좋아했다. VR을 사용한 노인이 그냥 영화를 보여준 대조군보다 주의력과 기억력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분당차병원 연구원이 김민영 재활의학과 교수가 개발한 VR 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팔을 제대로 들지 못하던 환자가 가상 세계에서 보이는 나비를 잡는 훈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재활 효과를 얻는다./전기병 기자

◇경두개 자기자극, 소프트 로봇도 동원

–VR이 환자에게 몰입도가 높을 텐데 그보다 낮은 AR(증강현실)도 시도한 이유는.

"AR은 실제 사물 위에 가상 영상이 겹쳐지는 것이다. 일반인은 VR이 몰입에 낫지만, 재활 치료를 받는 환자나 노인은 실재의 시각정보가 가려지므로 자칫 VR에서 넘어지거나 다칠 수 있다. 위험 인자가 있는 환자들은 가상 세계를 느끼면서 현실도 볼 수 있어야 안전이 보장된다."

–뇌를 자기장으로 자극하는 치료도 시도했다고 들었다.

"혈관성 치매 환자에게 자기장으로 뇌 특정 신경을 자극하는 경두개 자기자극 치료를 하면 말초 혈액에서 염증성 유전자 발현이 줄어들고, 이것이 곧 인지 기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인지 점수 향상과 염증 저하의 상관계수가 0.9에 달할 정도로 밀접했다. 최근 VR과 경두개 자극을 동시에 쓰는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재활 치료에 쓸 만한 또 다른 혁신 기술이 있다면.

"금속 재질이 아니라 옷처럼 입고 근력을 키우는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소프트 로봇을 눈여겨보고 있다. 기존 로봇 재활 기기는 너무 크고 무겁지만 얇고 가벼운 섬유 자체가 근육처럼 수축하며 힘을 보조한다면, 환자가 옷처럼 입고 다니며 24시간 재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기술적 원형은 나와 있다. 문제는 상용화 속도인데 엔지니어들이 의사들과 같이하지 않고 따로 개발한다는 점이 아쉽다."

김민영 교수는 "규제가 의료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발목만 잡는 일이 많다"며 "최근 우리나라도 줄기세포 치료 길을 열었지만 일본에 비하면 한참 뒤진다"고 지적했다./전기병 기자

◇"환자 보지 않고서 연구만 하면 답 없어"

김 교수는 2011년 이래 국제 학술지에 논문 86편을 발표했다. 매년 6편꼴로 논문을 쓴 셈이다. 그중 주저자로 나간 게 58편이다. 바쁜 진료 일정 중에도 매일 두세 시간씩 논문을 읽고 연구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아예 연구만 하면 더 많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김 교수는 "진료 현장을 떠나면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요즘 진료보다 연구에 집중하는 의사과학자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사과학자라면 임상 경험이 필수라고 강조한다는데.

"의대생 때 자폐아가 발작을 일으키면 꼭 안아주라고 배웠다. 자폐아의 발작은 몸의 위치와 팔다리 존재를 인식하는 고유감각이 과도하게 작동한 결과이다. 이제 보니 안아주는 건 감각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자극이었다. 이런 임상 경험이 없어 환자가 겪는 한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의사는 논문을 위한 연구는 할 수 있어도 환자를 위한 해결책은 낼 수 없다. 후배들에게 레지던트 과정은 마치고 연구든 창업이든 하라고 조언한다."

–뇌 기능을 되돌리는 데 다양한 치료 방법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인가.

"연구개발 과제를 심사하는 정부 산하 위원회들에서 자문 활동을 하면서 개발자들이 진료 현장에서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르고 본인의 가정과 추측만으로 개발하는 것을 많이 봤다. 의료기기나 첨단재생치료제 모두 마찬가지였다. 환자에 쓸 기술이라면 진료 경험이 풍부한 의사와 협업하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다. 치료에 왕도는 없다. 세포치료든 VR이든 상황에 따라 다 필요하다. 자기가 아는 것만 고집하면 환자에게 손해가 된다."

–제도적인 면에서 아쉬운 점도 많을 것 같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이 시행되면서 줄기세포 치료의 길이 열리긴 했지만, 여전히 과학의 발전 속도를 법과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관련 질환 전문가들이 새로운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는 보수적인 풍토도 있다. 뇌성마비에 대한 제대혈 임상 연구 결과가 유의미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아 환자들은 아직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민영 교수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VR 인터페이스 연구팀 초빙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의학과 공학의 융합을 꾀했다. 현재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이자 차미래의학연구원 디지털혁신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뇌성마비 제대혈 세포 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2024년 보건의 날 국무총리 표창, 2025년 석전 신정순 학술상 등을 받았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이다. 대한의학회 정책이사,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줄기세포학회와 대한디지털치료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