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내고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이전까지 했는데도 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를 봤습니다."
"희귀난치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가는 동안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본은 이미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치료제를 승인했습니다."
"각종 규제 때문에 신규 모달리티(질병을 치료하는 약물의 작동 방식)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임상을 진행하게 됩니다."
24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정부–제약바이오벤처 정책 간담회에서는 기업 대표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기술력 부족보다 규제·투자·상장 구조 등 제도적 장벽이 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날 간담회는 보건복지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제약바이오벤처 육성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했지만, 현장에서는 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병목 문제가 잇따라 제기됐다.
◇"각자도생 협업 한계"…지역 투자 격차 해소 요구도
먼저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간 협업 구조를 정부가 보다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김용호 루다큐어 대표는 "인수합병(M&A)이나 공동개발 같은 협업이 여전히 개별 기업 노력에 의존하고 있다"며 "정기적이고 구조적인 협력 생태계를 정부가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제약사와 벤처가 함께하는 공동 연구개발 과제를 내년에 추진하기 위해 예산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며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평가에서도 협업 실적을 반영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바이오 생태계의 투자 격차 문제도 지적됐다. 최재문 칼리시 대표는 "대전 지역 대학과 연구소와는 협업이 활발하지만 수도권과 비교하면 벤처캐피털 투자 접근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지난해 지역 펀드 4개가 결성됐고 지역 VC 활성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환경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문지숙 리코드 대표는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진행되는 동안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며 "일본은 최근 iPSC 기반 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지만 한국은 기술이 있어도 규제 때문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퍼스트인 클래스(혁신 신약) 기술을 가진 기업을 선별해 신속하게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첨단의료 분야는 우리나라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합성신약과 바이오신약, 첨단의료까지 이어지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R&D와 사업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법차손 장벽 허물고 식약처 전문성 높여 '해외 이탈' 막아야"
이날 간담회에서는 특히 스케일업(회사 성장) 이후 단계에서의 투자 공백과 상장 제도 문제에 대한 지적이 집중됐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는 "국내에서는 벤처투자가 결국 코스닥 상장으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기술평가 기준이 계속 바뀌고 있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강충길 올릭스 사장은 "상장 유지 요건 때문에 연구개발이 위축되거나 무리한 증자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법차손 규제는 한국에만 있는 구조적 장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 심사 수준과 의료 인프라는 세계적이지만 신규 모달리티에 대해서는 심사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며 "siRNA 같은 기술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임상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도 "새로운 기전 신약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도움을 받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식약처 전문 인력을 확충하고 허가 기준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초기 단계는 정부 정책과 자본이 어느 정도 준비돼 있지만 스케일업 이후 투자가 더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상장 이후 정책 공백 문제도 함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 역시 "법차손 규제 문제는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에서도 논의된 사안"이라며 "신성장 산업 전반의 문제라는 점에서 금융위와 협의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또 "글로벌 빅파마들과 협력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술 혁신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도 신규 모달리티 허가 기준 마련을 준비 중이며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를 통해 규제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