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키로 1키로씩. 매년 2키로씩 올라가는데 여기서 약(경구용 식욕억제제)까지도 안 먹어 버리면 갑자기 기하 급수적으로 확 찔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6년 전부터 지금까지 건강검진 받을 때 외에는 매일 먹었다고 보면 돼요."연구 참여자 G
"꾸미고 하는 것보다 그냥 살 빠지면 (남편이) 되게 좋아해요. '오늘 예뻐 보이는데?' 그게 살 빠졌을 때 얘기에요. 그리고 '관리해야 되지 않겠어?' 출산하고도 세 달. 지금 50일 됐잖아요. 그런데도 '이제 다이어트 해야 되지 않겠어?' (남편이) 벌써 얘기를 며칠 전부터 하더라고요."연구 참여자 H
체중 감량을 위해 처방되는 식욕억제제가 실제로는 '비만 치료'보다 '미용 목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상당수가 부작용과 의존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을 복용한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은 비만이 아닌 상태에서 약을 시작했고, 10명 중 7명 이상이 불면증·두근거림·우울감 등 부작용을 겪었다.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의약품 남용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2~2025년 사이 경구용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만 19∼64세 성인 25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5%가 "비만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약을 복용했다고 답했다. 의사에게 비만을 진단받고 치료 목적으로 복용했다는 응답은 34.6%에 그쳤다.
첫 복용 당시 체질량지수(BMI)를 보면 이런 경향은 더 분명해진다. BMI 25 미만, 즉 비만이 아닌 상태에서 약을 시작한 비율이 54.1%였다. BMI 30 이상인 실제 비만 환자는 12.5%에 불과했다.
대한비만학회 지침은 체질량지수 25 이상이면서 식이·운동 치료에 실패한 경우에만 약물치료를 권고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살을 빨리 빼고 싶다'는 이유가 처방의 가장 큰 동기가 됐다. 비만 진단 없이 약을 복용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자 62.1%가 "빠른 체중 감량이 가능해서"라고 답했고, 31.4%는 "식사 조절이나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실제 복용자는 대부분 여성 직장인이었다. 조사 대상의 82.5%가 여성이었고, 연령대는 30대(32.7%)와 40대(35.0%)가 많았다. 대졸 이상이 75.9%, 임금근로자가 70.4%였다.
약을 먹는 이유로는 '체중 스트레스'가 압도적이었다. 응답자의 91.9%가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식욕억제제 복용 결정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마른 몸매를 선호한다"는 응답도 74.7%에 달했다.
"입 안에서만이 아니라 목까지 말라서 무조건 물을 많이 마시게 돼요. 하루 2리터를 마셔야 할 정도 입마름이 엄청 심했고. 저는 백화점 일을 하니까 되게 많이 걸어야 하는데. 걸을 때마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너무 심했고. 멀미 나듯이 토하고 싶다가 아니라. 머리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껴서 토하고 싶다. 토할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느꼈고. 약을 먹은 상태로 밥을 안 먹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면 손끝이 저리면서 저릿저릿한 걸 많이 느꼈고."연구 참여자 B
"약(경구용 식욕억제제) 먹으면 항상 그래요. 항상 현기증. 회사 가면 업무를 계속 보면 화장실 가는 빈도가 많아서인지 밥을 적게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핑 돌 때가 있고. 1번씩 핑 돌고."연구 참여자 E
"저는 오히려 다이어트약을 처음 접할 때보다도 요요가 더 많이 와서 살이 더 많이 쪘어요. 그래서 후회하긴 해요. 아예 처음에 접할 때보다. 차라리 안 했을 때가 더 낫지 않았나 생각을 진짜 많이 하거든요."연구 참여자 D
문제는 부작용이다. 응답자의 73.5%가 식욕억제제 복용 후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흔한 증상은 입마름(72.0%)이었다. 이어 두근거림(68.8%), 불면증(66.7%), 어지럼(38.6%), 신경과민(41.8%) 등이 뒤따랐다.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요요 현상'을 겪었다는 응답도 53.4%였다.
정신건강 문제도 적지 않았다.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25.4%, 불안이 22.8%, 성격 변화가 23.8%였다. 21.2%는 약물 의존성을 느꼈다고 답했고, 1.6%는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했다.
"기분이 좋지는 않고 좀 붕 뜬 거. 붕 뜬 게 있고. 하면 항상 좋은 쪽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거 해서 뭘 해? 약간 부정적인 경향이 있어요. 일주일 먹으면. 하루 정도는 상관 없어요. 다음 날까지 괜찮아요. 3일 정도 증상을 보이다가 일주일 되면 이빠이에요. 우울감이 엄청 많아져서. 이래서 사람이 획가닥 가겠다."연구 참여자 C
그럼에도 복용을 완전히 중단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작용을 겪은 뒤에도 54.0%는 일정 기간 중단했다가 다시 복용했다. 22.8%는 부작용이 나타났는데도 약을 계속 복용했다. 부작용이 생겼을 때 상담한 곳은 약을 처방한 의사가 69.8%였지만,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정보를 찾았다는 응답도 54.7%였다.
복용 기간 역시 권고 기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사 대상자의 45.9%는 3개월 이하 복용했지만 37.0%는 3개월 이상 1년 이하, 17.1%는 1년 넘게 복용했다. 식욕억제제는 일반적으로 4주 이내 단기 처방이 원칙이다.
처방을 받은 진료과는 내과·가정의학과가 49.4%로 가장 많았고, 비만클리닉 26.7%, 피부과·성형외과 14.8%였다. 응답자의 18.7%는 의사가 처방한 용량보다 많이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거의 공장형이라서. 앉으면 의사 선생님이 바로 말씀을 해주셔서 딱히 전문적인 느낌은 못 받았고. 개인별 맞춤 처방이 되는 건 아니라서. 정확한 상담은 기억 안 나는데. '(체중이) 안 빠질 수 없다. 이거 먹으면 (체중이) 안 빠질 수 없다. 무조건 빠진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연구 참여자 F
진료 과정에서도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약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응답이 10.9%였고, 과다 복용 위험성은 25.7%, 중독 증상은 31.1%, 의존성 대처 방법은 42.0%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체중 관리 과정도 체계적이지 않았다. 약 처방 후 체중이나 체지방을 매번 측정했다는 응답은 35.0%에 불과했고, 첫 진료 때만 측정했다는 경우가 24.1%, 아예 측정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11.3%였다.
실제 이용자들의 경험도 비슷했다. 한 연구 참여자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동료가 다이어트 약으로 7kg을 뺐다며 병원을 알려줘서 성형외과에서 처방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약을 먹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아 병원에서 수면제를 같이 처방해줬다"고 말했다.
약을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참여자는 "외식으로 많이 먹은 다음 날 아침에 약을 먹고 하루 종일 금식한다"고 했다.
약을 복용하지 않는 현재 상태에 대해 묻자 14.8%는 여전히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복용을 중단한 사람 가운데도 33.9%는 "체중이 다시 늘면 재복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사형 비만치료제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현재 사용 중이라는 응답은 5.1%였지만 "체중이 늘면 사용하겠다"는 응답이 27.6%였다.
연구진은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전, 시장 중심적인 보건의료 체계에서 의료서비스 공급과 이로 인한 무한경쟁적인 환경, 무엇보다도 외모를 강조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기에 부합하기 위한 끊임없는 개인의 노력 등이 어우러져 무분별한 의약품 오남용의 인식과 실태로 연결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