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태 여파로 올해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인력이 급감하면서 농촌 의료 안전망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읍·면 단위 보건지소 기능을 바꾸고 비대면 진료와 원격 협진을 확대하는 등 지역 의료 체계 재편에 착수했다.

1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의과 공보의 신규 편입 인원은 98명에 그쳤다. 지난해 250명에서 60% 이상 줄어든 규모다. 올해 복무가 끝나는 인원이 450명인 점을 고려하면 충원율은 22%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전체 의과 공보의 규모는 지난해 945명에서 올해 593명으로 37.2% 감소했다. 불과 10년 전인 2017년 2116명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의 이탈이 이어지던 2024년 3월, 전남 화순군 백아보건지소의 진료실이 공보의 차출로 불이 꺼져 있다./뉴스1

◇시작된 농어촌 의료 공백…올해 보건지소 82% '의사 無'

공보의는 의사 면허를 가진 병역의무자가 장교 신분으로 36개월 복무하며 농어촌 보건소·보건지소에서 진료하는 제도다. 민간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의사, 이른바 '마을 주치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감소가 이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복무기간이다. 현역병 복무기간은 18개월, 공보의는 36개월이다. 복무기간 격차가 커지면서 일반병 입대를 선택하는 의대생이 늘었다. 여기에 여성 의대생 비율 증가, 의대생 군 휴학 증가까지 겹쳤다.

결정적 계기는 2024~2025년 의정 갈등이었다. 전공의 수련 공백과 의대 교육 차질이 이어지면서 공보의 공급이 급격히 줄었다.

정부는 이런 영향으로 공보의 부족 현상이 최소 2031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농촌 의료 현장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보건지소 가운데 공보의가 없는 곳은 지난해 730개(59.5%)에서 올해 1023개(82.1%)로 급증했다. 내년에는 1083개(86.9%)에 달할 전망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의료 공백이 현실화했다.

충남 부여군은 지난해 11월 전체 보건지소 15곳 가운데 5곳의 운영을 중단했다. 은산·외산·홍산·임천·석성면 보건지소다. 민간 의사를 채용해 진료를 이어가려 했지만 의료계 파업이 해소되자 이들이 기존 병원으로 복귀했다.

여기에 4월이면 공보의 7명 가운데 4명이 전역해 3명만 남게 되면서 지자체는 보건지소 운영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연도별 의과 공보의 규모 현황./보건복지부

◇정부, 인력 효율화 '대수술'…의사 대신 간호사 진료 확대

복지부는 우선 보건지소 기능을 4가지 유형으로 재편해 인력 활용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전국 보건지소는 1326개, 보건진료소는 1894개다. 상당수 시설이 소규모로 흩어져 있어, 의료 효율이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공보의 하루 평균 진료 건수는 ▲보건지소 4.3건 ▲보건소 12.1건 ▲보건의료원 32.1건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복지부는 전국 읍·면 가운데 민간 의료기관이 없고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을 547곳으로 추렸다. 이 지역에는 보건지소 532곳이 있다.

이 가운데 139개 보건지소에는 공보의 159명을 우선 배치할 계획이다. 업무활동장려금 상한 인상 등 보상 강화도 병행한다. 현재 기본 90만원~최대 180만원인 장려금을 올해 최대 225만원, 2028년 최대 27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나머지 393곳은 기능을 바꾼다. 지자체가 지역 여건에 맞게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선택하거나 조합하는 방식이다. 유형은 통합형(151개), 진료소 전환형(42개), 순회진료형(200개), 건강증진형으로 나뉜다.

통합형은 보건진료전담공무원(간호사)이 의과 진료를 맡고, 치과·한의과 공보의 진료는 유지하는 방식이다. 진료소 전환형은 보건지소를 보건진료소로 전환해 간호사가 상시 진료하되, 치과·한의과 진료는 실시하지 않는다.

순회진료형은 보건소 공보의가 주 2~3회 보건지소를 방문 진료한다. 건강증진형은 민간 의료기관이 충분한 지역이 대상으로, 진료 대신 건강관리 기능 중심으로 전환한다.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은 현재 91종 의약품 처방과 예방접종, 응급 처치 등 일부 의료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정부는 이들의 임상 교육 강화와 처방 의약품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또 승진 최고직급 상향(현재 무보직 6급) 등 인사제도 정비도 추진해 보건진료직렬의 전문성과 자긍심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향후 의과 공보의 규모 전망./보건복지부

◇비대면 진료·AI 협진·시니어 의사 채용…대책 총동원 속 우려도

공보의 감소에 따른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비대면 진료와 원격 협진도 확대한다. 농어촌 고령자가 스마트 기기 사용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보건소 간호사와 직원이 비대면 진료를 안내하고 옆에서 보조하는 방식이다.

또, ▲의약품 택배 배송 지역 확대 ▲민간 병원과 원격 협진 확대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보조 시스템 도입 등도 추진한다. AI 진단 보조는 방문 간호 중 AI가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원격 협진으로 전문의를 연결하는 방식이 검토된다.

다만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진료 방식으로는 주요 이용층인 고령 환자를 충분히 관리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의료계에서 나온다. 고령 환자의 경우 증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화면만으로는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전문의는 "만성 질환자의 단순 재진에는 일정 부분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진료는 보고(시진) 듣고(청진) 만져보고(촉진) 두드려보는(타진) 과정이 기본인데, 비대면 진료에서는 이런 과정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초진 환자의 경우 증상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전북 남원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운영'이 시작된 가운데 한 고령 환자가 경로당(거점)에 설치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남원시

공보의 외 의사 확보 방안도 확대한다.

복지부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 지원 대상에 보건의료원을 포함하고, 60세 이상 시니어 의사 채용도 지속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의료원 등 지역책임의료기관의 순회·파견 진료도 활성화한다. 또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를 통해 양성된 의사를 지역 보건기관에 배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역 의료 구조 자체를 바꾼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 2029년까지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권역별 거점 중심으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모델은 권역거점형, 보건소 집중형 두 가지다.

권역거점형은 인구 5000~1만명 단위 보건지소를 진료 허브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외래진료(내과 중심), 만성질환 관리, 경증 응급처치, 기본 건강검진 등을 맡는다.

보건소 집중형은 의사를 보건소에 집중 배치해 지역 의료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는 모델이다. 기존 소규모 시설은 폐쇄하기보다 순회진료·방문진료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공보의 복무기간 단축 논의도…"24개월이면 지원 90%"

공보의 감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복무기간 단축도 논의되고 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복지부도 찬성하고 있으며, 국방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복무 기간 조정은 다른 병역 직군의 인력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단기간에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 장관도 "수의장교와 법무관 등 다른 전문 장교 인력과의 형평성 문제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며 "군 전체 자원을 고려하는 판단인 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게 국방부 입장"이라고 했다.

2023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에서 병역의무 미이행 의대생·전공의의 74.7%는 일반병 입대를 희망했다. 2024년 의료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공중보건의사 또는 군의관 복무 희망 비율은 29.5%에 그쳤다.

반면 복무기간을 24개월로 단축할 경우 군의관과 공보의 희망률은 각각 90% 이상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2026년 시도별 의과 공보의 전체 복무인원./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