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희소 유전 질환인 리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동물 실험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나타났으며, 일부 환자에서도 증상이 호전됐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 수가 적어 치료 효과가 확실하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실정에서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 뒤셀도르프대의 알레산드로 프리지오네(Alessandro Prigione) 교수 연구진은 "인산디에스테라제 5형(PDE5) 억제제인 실데나필이 리 증후군 환자의 세포로 만든 뇌 오가노이드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이상을 교정하고 신경 발달 경로를 회복시키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동물실험에서도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 교정
리 증후군은 중추신경계 손상을 일으키는 희소 유전 질환으로, 4만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1951년 영국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아치볼드 데니스 리(Archibald Denis Leigh) 박사가 처음 보고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인체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문제가 생기면서 나타난다. 환자의 75%가 호흡 곤란, 심장 기능 상실로 2~3세에 사망하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실정이다.
연구진은 리 증후군 환자의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MT-ATP6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약물을 찾았다. 이 유전자는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이 과정이 손상되면 산소가 축적되면서 오히려 세포가 손상된다.
이미 승인을 받은 약물 약 6000종을 탐색한 결과, PDE5 억제제로 알려진 화합물이 미토콘드리아를 정상으로 복구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DE5 억제제는 실데나필과, 타달라필(상품명 시알리스), 바데나필(레비트라)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약효 성분이다. 음경의 말초혈관에서 혈액이 빠지는 것을 막아 발기를 지속시킨다. 실험 결과 그중 실데나필의 치료 효과가 가장 두드러졌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오가노이드부터 동물, 인체까지 모두 효과
연구진은 먼저 세포에 약물을 시험했다. 우선 환자의 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로 역분화시켰다. iPS세포는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을 넣어 발생 초기의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든 것이다. iPS세포는 조건에 따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다.
연구진은 리 증후군 환자의 중추신경계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iPS세포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臟器)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라고 불린다. 실데나필을 환자 세포로 만든 뇌 오가노이드에 투여하자 신경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됐다. 리 증후군 환자에게 나타나는 신경세포 유형의 불균형도 부분적으로 교정됐다.
동물실험 결과는 더 확실했다. 실데나필은 리 증후군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쥐의 수명을 늘렸다. 비슷한 돌연변이를 가진 돼지는 원래 몇 주 안에 죽는데, 실데나필을 투여하자 7마리 중 2마리가 2개월 이상 생존했다. 1마리는 6개월까지 안정 상태를 유지했다.
마지막으로 실제 환자에게도 실데나필을 시험했다.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에 MT-ATP6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 6명에게 생후 9개월부터 38세 사이에 실데나필을 투여했다.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마르쿠스 슐케(Markus Schuelke) 샤리테 대학병원 교수는 "16세 환자는 7년 이상 실데나필을 복용 중"이라며 "여전히 혼자 걸을 수는 없지만 표준 임상 척도로 측정했을 때 증상이 호전됐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은 1년 반에서 7년 동안 실데나필을 복용했다. 한 명은 발진이 나타나 복용을 중단했지만, 나머지 4명은 운동 능력이 개선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2명은 언어 이해력 같은 인지 능력도 소폭 향상됐다.
◇올해 말부터 대규모 임상시험 시작
학계는 이번 결과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 밴더빌트대의 세포생물학자인 비비안 가마(Vivian Gama)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정말 흥미로운 논문"이라며 "여러 증거를 통해 실데나필이 가장 치명적인 소아 희소 질환 중 하나에 대해 정말 유망한 화합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 증후군 연구자인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나타난 효과가 미미해 보이며, 임상 데이터도 극소수 환자에게서 나왔다"며 "약물이 안전하다는 점은 긍정적인 소식이지만 치료 효과에 대한 증거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가마 교수 역시 인간 데이터 해석이 어렵다는 데 동의했지만, 희소 질환인 리 증후군 환자를 모집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연말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60~7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계획서 최종 확정과 윤리위원회 승인이 남아 있지만 연구진은 해당 절차 통과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실데나필이 발기부전은 물론 다른 질병 치료에서도 효능과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와 같은 원리로 폐 말초기관에 충분한 피를 공급해 혈압을 낮춘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비아그라를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로도 허가를 받아 레바티오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지오네 교수는 "더 많은 환자에서 연구 결과를 검증해야 하므로, 리 증후군 환자가 스스로 이 약물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며 "환자나 의사가 사용을 원한다면 기꺼이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Cell(2026),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6.02.008